2021년 교육부는 초중고생들의 미래 선호하는 직업 순위를 발표했다. 중등에서는 거의 15년째 변함 없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초등에서는 1~3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교사다. 이처럼 교사에 대한 압도적 선호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교사의 전문성과 도덕성에 대한 기준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교육학적인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인간적인 특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에 필자는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의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하는 낙관적인 관점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나라처럼 동질적인 문화공동체에서 획일화된 척도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경우, 무엇보다도 교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다양한 관점을 이용하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동일한 기준에 의해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에 집중한다. 개인(소수)보다는 집단(다수)을 먼저 생각하고 집단의 이익 즉 공익(公益)을 우선하는 의사결정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코로나19의 K-방역을 보라. 이런 문화에서는 공동체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즉 ‘다름’을 ‘틀림’이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훌륭한 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여기엔 낙천적인 성격이 기본이라 믿는다. 그러나 좋은 리더십은 낙천적인 성격보다는 낙관적인 성격이 우선이다. 이는 인간의 수명에서도 차이를 유발한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낙천적인 사람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모든 것이 ‘잘될 거야’라고 말하고 믿는 낙관적인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리더십의 발휘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낙천적인 사람보다 낙관적인 사람이 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즉 낙관적인 성격이 건강이나 사회적 성공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국 리더십의 본질은 리더의 관점과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일반 조직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리더의 수보다 부하 직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리더는 한두 사람이지만 부하 직원은 수십 명이다. 이 말은 부하 직원의 인원이 많은 만큼 관점 또한 부하 직원의 수만큼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리더십의 출발이다. 따라서 훌륭한 리더, 성공하는 리더는 그런 관점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기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 왜냐면 ‘다양하다’와 대척되는 ‘똑같다’를 중시하는 동질적인 문화에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리더인 교사는 학생들에 비해 훨씬 적다. 그래서 일찍이 지역별 혁신학교는 이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학급의 학생수를 20~25명으로 맞춰 추진해 왔다. 기존의 특목고라 불리는 과학고, 영재고는 학급당 20명 규모를 유지해 왔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는 대다수의 일반교에서는 좋은 교사가 되기 쉽지 않다. 왜냐면 좋은 교사는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낙관적인 관점으로 학생수 만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교사는 획일적 단결을 외치면서 같은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낙관적인 관점과 태도로 다양성에 기반해 학생들과 조화를 이루는 민주시민의 문화를 만드는 리더십에 지향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성공하는 학교가 그렇듯이 교사가 단지 있는 둥 마는 둥 존재하는 것(exist)이 아니라 바람직한 영향력으로 학생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존재하는(present) 리더십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