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공부였다. 경제·금융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재미를 느껴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까지 졸업했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의 말을 접하고 경제·금융교육에 눈을 돌렸다. 개념만 강조하느라 배우는 학생들도, 가르치는 교사들도 재미없는 수업.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교육의 현주소였기 때문이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말에 지금까지 공부했던 걸 교육 쪽으로 연구해보고 싶어졌어요. 학생도 교사도 재미있는 수업이 뭘까? 고민했죠. 이왕이면 같은 고민을 가진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천상희 경북 성암초 교사는 2015년 ‘경제금융교육연구회’를 만들고 7년째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대구·경북 지역 교사들의 모임이었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전국 단위로 연구회를 확장했다. 10일 현재 2567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연구+공부하는 교사들의 경제·금융 놀이터’를 표방한다. ‘경제·금융교육 연구’라는 큰 틀에서 가치투자, 학생 창업, 재무 설계, 교단 일기, 지역 모임 등 흥미와 관심사에 따른 다양한 소모임도 운영한다.
천 교사는 “혼자 하면 작심삼일이 되기 쉽지만, 여럿이 모이면 ‘넛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연구회의 핵심 활동은 교실 경제 활동 연구다. ‘금융으로 교실을 잇다(금교잇)’라고 이름 붙였다. 학생들이 경제 주체가 돼 학급 안에서 활동하고, 다른 지역의 학급과 무역 활동도 하는 체험 중심 프로그램이다. 각 학급을 하나의 국가로 보고, 자체 화폐도 정한다.
천 교사는 “나라마다 화폐의 가치가 다르므로 ‘달러’ 같은 국제통화인 ‘잇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면서 “연구회 선생님들이 맡은 학급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덕분에 교실 밖으로 수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교실 안에서만 진행하던 경제 활동을 전국 단위로 확장했어요.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사업을 벌이고 다른 지역 친구들에게 판매도 합니다. 수출인 셈이죠. 수출 가능한 물품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주문을 받고 포장해 택배로 발송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뭘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던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능력을 돌아보고 사업을 구상하더군요.”
놀이와 활동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이유는 간단했다. 쉽고 재미있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길 바랐다. 현행 초등 교육과정에서 경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건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에서다. 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사, 기업과 시장 등 개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학생들의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천 교사는 담임했던 6학년 학생의 일기를 소개했다.
“엄마를 따라 부동산에 간 적이 있대요. 마트 가서 물건을 살 때처럼 집도 사면 되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어렵게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부동산 단계를 배울 때 청약, 등기, 매매 활동 등을 해보고 나서 그제야 엄마가 왜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겪었는지 알게 됐다고 썼더군요. 저도 결혼을 준비하면서 처음 전세 거래를 해봤다는 게 떠올랐어요. 더 일찍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무섭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천 교사는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교직 생활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교육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헬스를 좋아하는 동료 교사가 교육으로 연계해 학생들과 운동을 즐기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교사들끼리 모임을 결성한 사례도 소개했다.
천 교사는 “후배 교사를 만나면 반드시 취미생활을 찾아보라고 권한다”면서 “교직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 선순환을 경험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금교잇 활동을 확장하고 싶어요. 단순히 덩치만 키우는 것 이상으로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 안에서 선생님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더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판을 깔아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