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굳이 철학자 데카르트를 소환하지 않고도 이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위한 인간의 특권이다. 문제는 그것이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고자 대책 없는 철없는 아이처럼 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명분상으로는 자기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든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든, 아니면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갈망하는 것이든 무한 상념으로 돌입함을 제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정초에 잠시 해답 없는 넋두리를 펼치고자 한다.
인간의 무한 상념은 그것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의미 있는가로 귀착될 수 있다. 좁게는 개인과 국가의 성장과 행복을 구가하고자 하며 넓게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요즘 잠 못 드는 밤이 늘고 있다. 왜냐면 세상살이가 온통 갈수록 거칠고 투박해지며 동시대 타인들과 일상에서의 행복조차 감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대의 교육자로서 피할 수 없는 직업적 자문인가 한다.
이 시대의 비애! 누군들 비에 젖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삶이 있으랴. 무한 상념은 시작된다. 순탄한 삶과 평화로운 삶은 어디서 구가할 수 있으랴. 일상에서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체험하며 살 수 없으랴. 눈 앞에 펼쳐지는 온갖 군상들을 초월하여 한결같은 자세로 균형을 잡고 살 수 없으랴. 지금, 이 순간 삶의 쾌락에만 탐닉하기보다 미래 지향의 희망의 행진으로 나아갈 수 없으랴.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조차 상처 없는 순결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으랴. 쏟아지는 정보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여백을 추구하며 의연하게 자기를 지키며 살 수 없으랴.
현세(現世)를 사는 현명한 지혜는 무엇인가. 흔들리지 않는 양심과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 ‘자기 사랑’을 넘어 ‘지구 사랑’으로 승화되어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 수는 없는가. 과연 그러한 용기와 행동을 우리 내면의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작게 가진 것에 만족하고 ‘Simplicity is beautiful’의 미니멀주의(Minimalism)를 펼치는 삶은 이 시대엔 고통스럽기만 한 것인가. 지나친 물질적, 출세 지향적 욕망을 억제하며 절제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무한 상념은 어린아이 응석처럼 계속된다. 태양은 내일도 다시 떠오르리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오늘의 온갖 상처와 궤적을 잊을 수 없으랴. 갈등의 이 시대에 내 이웃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포용하고 화해하는 삶은 불가능한 것인가. 결과에 감사하고 그것이 자신의 역량에 합당함으로 만족하고 살 수는 없으랴. 인권이 무너지고 차별받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고 달래며 그들의 부서진 마음(heartbroken)을 온전하게 하는 세상은 누가 만들 것인가. 평소 여백과 사색의 시간으로 삶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는가.
무한 상념은 대책 없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상(現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적인가, 동지인가, 이분법적 사고만으로 세상의 가치를 판별하고 보복하며 그들만의 삶의 잔치로 전락한 좁쌀 정치를 멈출 수는 없는 것인가. 즐겁고 행복하게, 사회적 통합의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가.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미움과 불신, 혐오를 드러내며 오만하게 살아가는 강자들을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분노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삶의 희망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밑바닥 사람들, 그들과 살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것인가.
권위와 기득권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권만을 추구하고 약자들을 탈취하며 지배하려는 자들에게 나눔과 배려, 협력의 공동체를 세우자고 설득하는 것은 도를 넘는 것인가. 지도층의 독단과 아집, 일상적인 거짓말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의 힘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물질적 풍요 아래서 일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와 낭비로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할 수는 없는가. 성소수자, 독거노인, 학교 밖 청소년 등 인권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세상은 나날이 불확실한 모습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세상살이라면 그저 슬프고 참담할 뿐이다. 우리 세상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미래의 우리 삶은 보다 가치 지향적이고 평화롭게,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어야 한다. 하지만 가랑비에도 쉽게 흠뻑 젖어 옷이 무거운 사람들, 바람에 흔들려 줄기와 가지가 앙상한 사람들을 관심과 사랑의 손길로 보듬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2023년은 약자를 우선하는 사회로 전환하자. 그들이 개개인의 역량을 드러내고 나아가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만큼 더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고 키워가는 공동체를 만들자. 새해 정초에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며 철없는 아이가 졸라대고 떼를 쓰듯 해답 없는 무한 상념(想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