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발전은 역설적이다. 인류는 초기의 수렵채집 시대를 거쳐 농경사회를 지나고 산업화 사회를 넘어 지식정보, 디지털 시대로 살아오며 문명의 진보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문명의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의 불행은 다양해지고 깊어지는 현상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은 이제 인류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기보다는 불행을 낳고 위기를 남긴다. 한 미래학자에 의하면 2030년이 되면 3일 만에 지식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 한다. 이렇게 지식의 총량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이 놀라운 과학·기술의 시대에 왜 세상은 끊임없이 위기로 비틀거릴까?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던가? 예전이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 라다크라는 곳은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인 고도 35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이다. 이곳 주민들은 최초의 거주자인 아리안족과 기원전 500년경 티베트 사람들, 그리고 티베트에서 이주해 온 몽고 유목민들과 합류하는데 오늘날 라다크 사람들은 바로 이 세 부족의 후손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티베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서 종종 리틀 티베트라 불리기도 한다. 라다크는 ‘산길의 땅’이란 뜻이다. 이곳에서는 1년 중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불과 넉 달에 불과하다. 라다크의 여름은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폭염에 시달리고, 8개월가량 계속되는 겨울은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추위 때문에 동토의 땅이 된다. 황량한 계곡 사이로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비는 내리는 일이 거의 없어 그 존재조차 모를 정도다. 라다크 사람들은 대부분 고원의 사막지대 이곳저곳에서 소규모 정착지에 모여 사는 자영농들이며 주로 산 위에 있는 눈과 얼음이 녹아 계곡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의 관점에서 이런 환경적 악조건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문명화된 다른 곳에 비해 차별화된 행복을 영위하는가? 첫째, 라다크 사람들은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라다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전염성 강한 웃음에 이내 감염되고 만다. 저자는 라다크 사람들과 그들의 가치관,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행복을 향한 인간의 잠재력은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둘째, 모든 것을 재활용하는 생활 자세이다. 그들의 ‘검약’ 정신은 그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비료로 쓴다. 외부 세계에 의존하는 것이라곤 소금과 차 그리고 요리 기구나 공구 같은 몇 가지 금속 제품들뿐이다. 단순한 연장을 사용하므로 일하는데 시간관념이 무척 여유롭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여가 시간을 향유한다. 예컨대 “내일 낮에 찾아올게” “저녁쯤 찾아올게”하는 식이다.
셋째, 최우선의 삶의 가치는 ‘공존’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심한 욕은 ‘숀 찬’, 즉 ‘화 잘 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살아간다. 라다크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주변의 환경과 분리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서적인 면에 덜 의존적이며 사랑과 우정은 격정적이거나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자연-친화적인 삶의 주인공들이다. 생태적 개발 모델로서의 잠재력과 전통문화 수호에 성공하고 있는 라다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좋은 예가 된다.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과 생태(자연)환경의 파괴 결과를 전 세계는 지난 3년에 걸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통해 끔찍하고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삶의 중요성은 물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행복관을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자신들의 천부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경애심이다. 이는 삶에 있어 다른 방식, 물질적 풍요나 기술의 진보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명 혜택을 누리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다시 근본적인 관심사로 돌아가 보자. 라다크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소유하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온갖 물질에 혼을 다 빼앗겨 살다 보니 우리는 진정한 주인의 삶이 아닌 노예의 삶을 살고 있음에 다름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인간은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인디언들처럼 앞으로 열심히 가다가도 어느 순간에 쉬면서 자신의 영혼이 뒤따라오도록 우리의 영혼을 챙기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우리가 가진 재산이 우리들에게 주는 것보다 빼앗아 가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라는 말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의 지위나 재산의 소유에 있지 않고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있다. 왜냐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추동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현대는 일상적인 삶이 어느 정도 진보가 불가피하다. 즉, 지속적인 물질적 성장과 발전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삶이 그렇게 매일매일 힘들고 숨 가쁘게 계속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현대 문화를 외부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다른 삶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는 근본부터 다른 원칙에 기초를 둔 곳이 존재한다. 라다크가 바로 그런 곳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하고 또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야말로 깊이 이를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