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수업 중 인터폰도, 잠시 내려와 보라던 불호령도 이제는 수업권을 보장받으며 나만의 공간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업무 간소화, 비대면 결재….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권 중에서 가장 편하게 선택한 것은 메신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메신저가 아니라는 겁니다.
혹시 ‘결재 바랍니다.’ ‘검토 바랍니다.’ 이 메시지면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나요? 결재권자들은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결재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는 합니다. 어떤 계획으로 업무가 진행될지 개요도 협의가 되지 않은 채로 말이지요. 이렇게 되다 보면 당연히 결재권자인 관리자분들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는 그냥 결재해주면 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서로 오해만 쌓이는 지름길입니다.
일일이 협의하는 건 업무 간소화와 전결 규정에 맞지 않지만, 최종 책임자인 관리자분들과 큰 틀은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후에는 직속 부장님과 협의하며 전결 규정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말이지요.
메신저만으로 의사표현하지 않기
‘그 좋은 시절 교장 한 번 못하고. 이 좋은 시절 교사 한 번 못하고.’ 이런 말도 있지요? 예전에 교장 선생님은 정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시던 분들도 많았지요. 당시에는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 일인데 왜 그렇게 내려와 보라고 하셨던 걸까요? 저 역시도 관리자분들과 힘들었을 때도 있습니다.
초임 시절 저의 실수로 직속 부장님들과 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다 같이 교장실에서 고개 숙이고 있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선생님’이라고 한 것이 잘못이었지요. 교장 선생님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거였어요. 그럼 너도 선생이고 나도 선생이면 맞먹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학교장의 ‘기강’을 잡고 싶으셨던 교장 선생님. 갓 발령받은 24살 신규 선생님께 지금 그렇게 하셨으면 바로 ‘갑질’ 신고당하셨겠지만요. 그 무렵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외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시 시간을 내 협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라포를 형성할 수 있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직의 선배님인 관리자분들을 그 자체로 인정해 드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승진하는 일은 어느 조직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신 것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해드리는 것도 필요하지요. 그렇게 인정을 해드리면 됩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선배 교사 대 후배 교사로 생활하며 나의 업무를 충실히 마무리하면 크게 갈등할 일이 적어집니다. 때로는 도움이 필요한 경우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말씀드릴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가 반 아이 중에 심부름을 잘하는 아이를 계속 시키듯, 학교 업무라는 게 잘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혼자 다 끌어안지 말고 매너 있게 거절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저와 의견이 다른 분들도 계실 겁니다. 관리자분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다만 대부분의 인생 선배 관리자분들은 도와주려 하고 지지해주려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 도움을 받기조차 거부하고 완전히 차단해버릴 필요는 없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로 지키는 공동체’ 중요해
내가 근무하는 곳에 계신 관리자분이 멘토로 삼을 만한 분이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겁니다. 저는 제가 모시고 싶은 관리자분을 따라 학교를 온 만큼 더없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근무지에서 업무 외에도 인생에 걸쳐 존경할 만한 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만약 근무지에서 도저히 못 찾겠다 한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멋진 관리자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근무하지는 못했지만, 수십 권의 책을 쓰시고 멘토 역할을 해주고 계신, 김성효 교감 선생님,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여러 선생님께 생명을 불어넣고 계시는 엄명자 교장 선생님을 제 마음속에 관리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모르셔도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나만의 관리자의 모습인 것이지요.
결국 관리자란, 내가 어떤 분을 어떻게 모시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같은 직종에서 토닥토닥하며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공동체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