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 이는 많은 청소년에게 궁금한 질문이다. 시험을 위한, 시험에 의한, 시험의 나라에서 태어나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최고의 목표이자 성공의 척도인 대한민국에서 보면 이보다 당연한 것도 없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마디로 효율(效率)이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넣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도 더 효율적으로 한 학생이 점수를 더 잘 받기 마련이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세계적인 대기업, 성공한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열심히 그리고 집중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일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바로 효율이다. 즉,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일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인가? 여기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재미와 열정 그리고 주인의식이 그것이다. 재미를 느껴야 열정을 가질 수 있고 주인의식이 있어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몰입해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란 없다. 예컨대 과거 ‘개그 콘서트’나 ‘코미디 열전’ 같은 남을 웃기는 것으로 유명한 TV 프로그램도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면 출연자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반복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재미있어 보이는 일도 사실은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으로 다듬어진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대부분 공부 잘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재미를 즐기고 있다. 억지로 공부해서는 효율과 성취감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혁신기업 구글(Google)의 라즐라 전(前) 부사장은 “지금 이 시대의 혁신은 개인이 아닌 그룹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겸손, 협업, 융통성 그리고 배우고 또 재학습하는 것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그런 소프트한 능력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이 사실은 변함없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프트한 능력’을 키우려면 스스로 자기 생각을 자주 꺼내서 정리하고 필요 없는 고집과 선입견을 버리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공간을 여유 있게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부를 잘하는 방법으로 제시하기에 손색이 없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식은 자기에게도 상대에게도 선물이 된다.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바야흐로 ‘나누는 것이 힘’인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오늘날은 지식과 정보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 머릿속의 지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쓸모없는 것이 된다. 곧 상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먹기 좋게 따끈따끈할 때 꺼내서 함께 나누어야 모두가 즐길 수 있다. 자기 지식과 정보를 보기 좋게 정리한 식탁에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나누면 자신도 상대가 준비한 식탁에 초대받을 수 있다. 소위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의 자연의 원리가 적용된다.
그렇다면 지식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자기가 가진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하다. 더 많이 나눌 수 있고 자기에게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유 방법을 찾아내고 익히는 것이 바로 효율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이룬 것을 남에게 주면 더 큰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나누고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또래학습을 선호한다. 실제로 학생에 따라서는 친구나 동급생들에게 자기가 잘하는 과목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또래학습’을 선호한다.
이러한 지식의 선순환을 보자. 오늘날 인터넷에서 지식의 나눔을 보라. 자기가 어렵게 만든 소스 코드를 전부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자기도 인터넷에 공유된 내용을 보고 많은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보가 있기에 초보자 누구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이런 지식의 선순환이 결국은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창출하고 인류에게 유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를 주고 열을 얻을 수 있는 나누는 힘이다. ‘나누면 복이 오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는 예로부터의 ‘배워서 남 주자’는 구호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 시대에 다시금 부활해야 할 교육의 복음(福音)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