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엔니오 모리꼬네

2023.08.07 10:30:00

 

‘와우와우와~ 왕왕왕~’ 코요테의 울음소리에서 착안해 영화 역사상 가장 회자하는 휘파람 소리를 서부극 <석양의 무법자>(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1966) 음악으로 창조해 낸 인물. ‘도레미파~ 솔라시도~ 시라솔파솔~’ 영화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토토가 마침내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감동적인 영화 <시네마천국>(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1990)의 멜로디로 수많은 관객을 울린 인물.

 

‘따라라라란~ 따라리라리라레리라라라~’ 서양인에게 적대적이었던 남미 원주민과 팬플룻 하나로 친구가 되게 만든 <미션>(감독 롤랑 조페, 1986)의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 낸 인물(‘가브리엘의 오보에’라는 이름의 이 곡은 훗날 사라 브라이트만이 가사를 붙여 부른 ‘넬라 판타지아’로 다시 인기를 끌었다). 아카데미·골든글로브·그래미를 석권한 거장이자 영화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아니 그 이름 자체가 바로 영화음악사의 한 장인 엔니오 모리꼬네(1928~2020)의 이야기다. 


수많은 영화에서 단 한 부분도 비슷하지 않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멜로디를 창조해 낸 영화음악의 대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을 다룬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그의 타계 이후 3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먼저 귀에 익숙한 수많은 음악으로만 기억하던 그를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커다란 스크린에서 만나는 감동이 밀려온다. 이어 위대한 뮤지션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엿보는 쾌감과 함께, 한 인간으로서 엔니오의 삶을 유년시절부터 156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서 찬찬히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여기에 지루할 틈 없이 얼굴을 내미는 여러 인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부극의 대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홍콩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왕가위 감독, 또 다른 영화음악계의 한 페이지를 열어가는 작곡가 한스 짐머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엔니오 모리꼬네에 대한 헌사가 영화 내내 이어진다. 


 

 

의사 꿈꿨던 엔니오에게 아버지가 쥐여준 트럼펫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어릴 적 꿈이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그런 엔니오 모리꼬네를 음악의 길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부친은 어린 엔니오에게 싸구려 트럼펫을 사 손에 쥐어 줬다. 취미로 음악을 해보라는 권유가 아니었다. 미군 부대를 돌며 트럼펫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부친은 일찌감치 아들을 트럼펫 연주자로 키워 가계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몸이 안 좋을 때면 대신 공연에 나서 연주를 했고, 일당을 받아오던 어린 엔니오의 마음속에는 굴욕감만 가득했다.


트럼펫을 연주하던 그가 음악가로, 또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에는 음악원에서 전공을 작곡으로 변경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0세기의 위대한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사사받기 위해서 강수를 던진다. 이미 수많은 제자로 더 이상 문하생을 받을 수 없던 상황이어서 엔니오는 다른 반으로 옮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끝까지 페트라시 교수에게서 작곡법을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뚝심이 통해 페트라시 교수의 반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페트라시 교수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춤곡 작곡만을 요구했다. 전통적인 교향곡 작곡법을 배우고 싶었던 엔니오는, 그럼에도 스승의 요구를 묵묵히 수행했고 그의 포기하지 않는 일면을 확인한 페트라시 교수는 마침내 그에게 대위법·화성학 등 최고의 작곡가가 될 수 있는 기술을 사사하기에 이른다. 이때 배웠던 기초는 훗날 그가 영화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곡들을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음악계의 흥행보증수표 되었지만…
<기생충>(감독 봉준호, 1999)이나 <오징어게임>(감독 황동혁, 넷플릭스, 2021)의 성공 덕분에 지금은 영화를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선입견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가 활동하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영화음악을 한다는 것은 ‘딴따라’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특히 순수음악을 전공했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방송국에서 책상·타자기 등을 타악기처럼 연주해 음향으로 만들어 내거나,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등 정통적인 장르의 음악에서 벗어난 도전적인 실험을 계속하자 음악원의 동료들과 그를 사랑했던 스승 페트라시마저 “엔니오의 작업은 순수음악이 아니다”라며 그의 작품을 평가절하했다. 자신의 뿌리마저 부정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야 했던 순간에 대해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화에서 담담하고 진솔하게 고백한다. 영화를 보며 그의 인생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서부영화의 전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만나면서 그는 영화음악계에서 가장 ‘핫한’ 작곡가로 승승장구한다. 그와 <황야의 무법자>(1966)부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까지 작업을 함께 하며, 한 해에 적게는 7~8편을, 많을 때는 20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소화해 내기에 이른다. 어느덧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은 영화음악계의 흥행보증수표로 통하게 된 것. 


특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작업 때의 유명한 일화 하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대본 구상을 함께했는데, 훗날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 설명이 너무 자세해서 프레임 단위로 영화가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다른 작품에 쓰려고 준비했던 곡을 이 영화에 썼고, 그 유명한 ‘데보라의 테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실제 현장에서 이 음악을 틀어 놓은 상태로 촬영을 진행했고,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조차 음악이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의 작업 무산이 유일한 아쉬움
40편도 아니고 무려 40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엔니오 모리꼬네에게도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렇다. SF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의 작업이 불발된 일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시계 태엽 오렌지>(1971) 음악을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맡기고 싶어 했다. 엔니오의 오랜 단짝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게 연락했지만,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엔니오 모리꼬네가 너무나도 바쁘다고 둘러댔다.

 

당시 엔니오 모리꼬네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차기작 <석양의 갱들>(1973)의 음악 작업 중이었지만, 바쁜 시기는 아니었다. 한 해에도 스무 편을 작업했던 그에게 오히려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의 협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말만 듣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았고, 결국 협업은 무산되었다. 너무나도 인기가 많았던 엔니오 모리꼬네를 독점하려고 했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질투심이 낳은, 영화음악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이다. 엔니오 모리꼬네 역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이후 말도 없이 포기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영화로 만들어진 데에는 여느 영화가 그러하듯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바로 <시네마천국>으로 엔니오 모리꼬네와 연을 맺었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게 젊은 제작자들이 찾아와 엔니오 모리꼬네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것.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엔니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수락할 때만 하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가서 물었더니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라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탄생 비화다.

 

한스 짐머, 클린트 이스트우드, 왕가위의 극찬
전술한 것처럼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 영화계나 음악계를 넘어 학창시절 동료,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스승 등 광범위한 영역의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은 극적인 면에서는 매우 단순했지만, 그 소박함과 공존하는 억누를 수 없는 천재성을 증언해 주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현재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제작 초반부터 방대한 음악자료를 모았다. 그의 음악이 항상 현존하는 것처럼, 엔니오 모리꼬네 역시 우리 곁에 현존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 _ 한스 짐머, 작곡가 
“그때도 새로웠고 지금 들어도 새로워요.” _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감독 
“음악이 갈 길을 결정한 사람이죠.” _ 브루스 스프링스틴, 싱어송라이터 
“엔니오의 음악은 눈에 보여요.” _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감독 
“사람들이 엔니오를 손꼽는 이유는 엔니오의 음악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_ 왕가위, 영화감독 
“엔니오의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어요.” _ 제임스 헷필드, 메탈리카 리드 보컬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겠죠.” _ 퀸시 존스, 작곡가 
“음악의 일인자라고 할 만해요.” _ 팻 메스니, 기타리스트 

이들의 찬사를 넘어선 헌사처럼,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남아있을 것이다. 200년 후에도, 영원히.

윤재희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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