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진심 그리고 나만의 키워드

2023.09.04 09:00:34

최근 교직 에세이를 출간했다. 많은 분이 칭찬의 말씀과 함께 책을 쓰기 시작한 동기를 물었다. 처음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바로 ‘교사들의 웃음’이었다. 책의 가제는 ‘학교에서 떼인 웃음 찾아드립니다’였다. 많은 교사가 학교에서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현실이 늘 가슴 아팠다.

 

나 또한 힘든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주변에는 웃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맨날 웃으세요?’, ‘선생님의 웃음 비결이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척박한 학교 속에서 억지로 웃을 거리를 만들어 웃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이 마침내 책이 되었다.

 

책이 나온 후 나의 에너지와 웃음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선생님의 에너지가 대단해요.’, ‘선생님과 동 학년 하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게 된다. 나는 절대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며, 분위기 메이커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이런 질문과 칭찬을 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바로 ‘진심’이다.

 

되돌아보니 모든 일에 진심이었다. 그 진심들이 나를 웃는 교사, 에너지 많은 교사로 만들어 주었다. 이쯤 되면 ‘너만 진심이 아니야! 나도 진심이라고!’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지금부터 ‘진심의 방법론’을 나누고자 한다.

 

#. 주변인들을 유명인으로 만들기

 

내 주변인들은 다 유명인이다. 눈웃음이 예쁘면 바로 이효리, 청순하면 한지민, 키가 크면 조인성으로 거침없이 프레임을 씌워준다. 그리고 우리는 메신저에서 은밀하게 서로의 별명을 불러준다. 매우 현실적인 분들이나 부끄러움이 많은 분은 나의 이런 시도를 강력히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내가 자꾸 도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순순히 본인의 별명을 받아들인다. 남들이 보면 기겁할지도 모르지만 깔깔대며 서로의 별명을 불러주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행복하다. 상대방의 특징을 찾아내서 유명인과 매칭시키는 일은 내게 게임과 같다. 바로 별명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다. 그러면 내내 고민한다. 마침내 기가 막힌 매칭 결과가 나오면 마치 킬러 문제를 풀어낸 듯 속이 뻥 뚫린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다.

 

#. 상대방의 마음 읽어주기 

 

“부장님 한 학기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2학기에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후배 교사로부터 쪽지가 왔다. 나의 답장은 다음과 같다.

“00쌤 고생 많았어요. 그러나 열심 금지!”

누군가가 보면 지금 제정신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교장실에 불려갈지도 모름)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그 후배에게는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 ‘열심 금지’는 독이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열심 금지’는 약이 될 수 있다. 6학년 담임을 하면서 많은 업무를 치열하게 해내고 있는 그 후배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히 아니라 휴식이었다. 그래서 그만 열심히 하라고 브레이크 걸어 주었다. 나 또한 브레이크 걸어 주는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브레이크는 나태, 태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완급 조절 장치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마침 후배에게 답장이 왔다.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더 열심히 하고 싶네요.”

 

#. 먹을 것은 무조건 나누기

 

부자들은 ‘현금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음식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어색한 사이도 밥 한번 먹고 나면 가까워진다. 음식이 사람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우리 교실에는 음식이 많다.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많이 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음식 흐름’이다. 내가 먼저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고 나면 또 어디선가 음식이 들어온다. 때로는 과자로 음료수로 다양한 간식이 나를 통해 흐른다.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작은 음료수 한 병이면 충분하다. 놀라운 것은 내가 준비한 작은 음료수가 더 큰 간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음식 흐름은 복리다! 이 마법의 공식을 모두가 꼭 경험하길 바란다. 음식 흐름이 풍성한 나는 학교 속 부자다.

 

#. 어색할 땐 충청도 사람이 되기

 

“선생님도 어색한 상황이 있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했다. “네, 물론이죠! 저도 사람입니다.”

누구나 처음 보는 사람들, 나이 차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어느 날부터인가 백종원 아저씨처럼 말끝을 길게 끌기 시작했다. “괜찮아~유~. 하하하.” “그렇~쥬. 흐흐흐.”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한 동료 선생님께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혹시 고향이 충청도에요?” “아니요.” “자꾸 ‘~~해유’해서 충청도 사람인 줄 알았어요.”

‘우리 힘내요!’보다는 ‘우리 힘내유~’하면 더 정겨운 느낌이 든다. 충청도식 말랑말랑한 화법은 어색함 퇴치(?)에도 효과가 있지만 많은 사람을 웃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청도 사람 행세는 의도치 않게 나를 정이 많고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 작은 것에도 감사 표현하기

 

“감사합니다.” 하루 중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꼭 표현한다. 감사의 효과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감사일기 쓰기’ 같은 처방이 내려지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쑥스럽다는 이유로 감사하기에 인색하다. 그런데 사실 ‘감사하기’만큼 쉬운 일도 없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무료라는 사실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큰 힘이 들지 않는다. 감사 표현을 많이 하다 보니 진짜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 내가 먼저 감사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감사를 표현하게 된다. 그러면 그 집단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내가 많이 웃는 비결이다.

 

위에서 말한 내용을 정리해보니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가 된다. 바로 ‘칭찬, 배려, 나눔, 유머, 감사’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 단어들을 의식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년간의 경험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밖에서 보면 교실 속의 교사들은 섬처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진심은 서로의 연결을 인식하게 해주는 열쇠가 분명하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진심 어린 교사는 누구든지 각자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진심을 통해 각자의 키워드를 찾아내길 바란다. 어쩌면 사소한 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키워드들이 우리의 교직 생활을 행복하게 연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깊어지는 진심, 다양한 키워드가 교사 행복의 원동력이 되길 기대하며.

유영미 경기 안산석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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