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2] 수업 중 몰래 녹음 막을 길 없나

2023.11.07 10:30:00

증거는 재판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굳이 재판을 언급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증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학교를 예로 들면 학교폭력·학교안전사고·교육활동 침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양측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을 때일수록 증거가 결정적 역할을 하다 보니 요즘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통해 자발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많아져 사회 전반적으로 증거수집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동의 없는 녹음
최근 유명 작가가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가르치던 특수학급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자 작가 측은 당시 상황이 담긴 녹취내용을 공개하였는데, 이를 두고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녹음이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학교에서의 ‘동의 없는 녹음’과 관련한 문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변호사님,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하면 불법 아닌가요?”  

 

필자 역시 학교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였을 정도로 학교는 상당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더욱이 교사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학교생활 전반을 녹음하는 것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축시키고 상호 간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상대방과의 대화 혹은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제3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타인 간의 대화’라는 부분인데 자신이 대화의 직접 당사자라면 ‘타인 간의 대화’로 볼 수 없으므로 이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다. 그리고 이때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셋이서 대화할 때 그중 한 사람이 나머지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 이는 녹음자와의 관계에서 ‘타인 간의 대화’라고 볼 수 없으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대법원2006.10.12. 선고 2006도4981 판결). 따라서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였는지 판단하려면 녹음자가 대화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인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자신이 참여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면 그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따라서 학부모가 아이에게 녹음기를 부착하여 상시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무작위로 녹음하는 것은 보호자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에 해당하므로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아이에게 녹음기를 부착시킨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의 아동학대 증거 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녹음하였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형사 고소 등에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형사절차에서 증거자료로도 사용할 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수집한 자료를 증거로 인정한 하급심 판례가 있기는 하다(대구지방법원 2019.1.24. 선고 2018노1809 판결).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아이(생후 10개월)의 언어능력이 온전히 발달하지 않아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 당시 녹음하는 것 외에는 증거를 수집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을 특별히 인정받은 경우이다.

 

‘우리 학교에, 우리 교실에 적합한’ 해결방안 모색
동의 없는 녹음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형사법적 측면의 것이고, 민사상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다른 사람의 음성을 함부로 녹음하는 것을 「헌법」으로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 보고,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행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형사처벌 여부와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경우’란 사회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 평가되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로 볼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결국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행위 중 녹음자가 대화의 직접 당사자일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 설령 이것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예외적인 상황에 따라 위법성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법상 교육현장의 동의 없는 녹음을 원천 차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이러한 한계를 비판적으로 보더라도, 다양한 관계가 얽혀있는 학교의 특성에 비춰볼 때 모든 것을 법적 제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학교는 교육목표와 구성원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하여 현행 제도와 환경 내에서 구성원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적합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 규칙 개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동의 없는 녹음에 관한 내용을 학교 규칙에 명시하여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부분 학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참고하여 학교 규칙을 개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수업에 부적합한 물품을 사용하는 학생에게 주의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은 동의 없는 녹음과 관련하여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다만 이 고시는 규칙 개정에 참고사항일 뿐 반드시 문구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학교가 자체적으로 적합한 내용으로 변경하여 개정하여도 무방하다.


더불어 교사가 안심하고 학생생활지도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합한 지도 예시 등을 통해 그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규칙의 내용이 모호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켜 구성원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교내에서의 동의 없는 녹음이 어떤 상황에서 제한될 수 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제한하는지 등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명시하는 것이 좋겠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규범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하고 학생의 권리침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교육활동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길
다음은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여 적절한 조치를 하는 방법이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의하면 ‘교육활동 중인 교원의 영상·화상·음성 등을 촬영·녹화·녹음·합성하여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는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행위이므로(제2조 제5호), 학교는 교원의 음성 등을 동의 없이 녹음한 행위를 발견하면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여 교육활동 침해학생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또한 교원은 교육활동 중 휴대전화 등 수업에 부적합한 물품을 사용하는 학생에 대해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는데 만약 학생이 이에 불응하여 교원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이 또한 별개의 교육활동 침해행위(제2조 제4호)로 볼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조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학교는 학생·학부모·교사 등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고, 이러한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기타 사회적 요인 등으로 인한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기에 동의 없는 녹음 문제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더욱 특수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의 없는 녹음에 관한 지금의 「민·형사법」상 제재가 사회 전반의 합의가 반영된 것이라면, 학교 규칙이나 교권보호제도를 활용한 조치는 교육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녹음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동의 없는 녹음 문제는 학교 내 구성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와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교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여 학교 규칙과 교권보호제도를 활용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당국은 이러한 방안을 제도 및 시스템으로 뒷받침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이 학교 내 동의 없는 녹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며, 교권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황성욱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 / 전 서울강서양천교육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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