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여행] 강원도 고성에서 만나는 이야기

2023.12.11 09:00:59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자연에는 겨울의 쓸쓸함이 더해가고 있으나 도시에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스키장에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계절이다. 시기로만 보면 한 해를 마감하고 또 한 해의 시작을 대비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겹치는 시기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과 어울리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강원도 고성이다. 겨울 바다로 가는 설렘이 있으나, 통일전망대가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고, 남북의 분단을 상징하는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이 있는데 여기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있으니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예단할 수 없다.

 

 

# DMZ 박물관
 

고성의 DMZ 박물관은 이름뿐 아니라 박물관 위치 자체가 DMZ, 곧 비무장지대 가까이에 있다.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는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 출입을 위한 민통선 출입신고소를 거쳐야 한다.

 

먼저 DMZ의 의미를 살펴보자. DMZ는 가끔 38선과 혼동되기도 한다. 38선은 북위 38도를 가리킨다. 광복 직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할 때 편의적으로 나눈 선이다. 이 선이 무너진 것은 70여 년 전, 1950년 6월 25일이다. 곧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때이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전쟁이 정전에 들어갔다. 이때 우여곡절 끝에 남과 북이 경계로 정한 선이 바로 휴전선이다. 이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각각 2km 거리를 비무장지대로 설정했다. 당시 보통의 총과 포의 사거리를 염두에 둔 거리로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한 영역이다. 
 

비무장지대는 처음, 그 면적이 900㎢ 정도였다. 그러나 남과 북이 그 영역을 잠식하며 지금은 약 570㎢ 정도로 줄어들었다. DMZ 남쪽 10km 정도를 민간인통제선, 다시 그 남쪽에 접경지역으로 설정해서 일정한 범위에서 제약이 있었다. 다만, 최근 접경지역과 민간인통제선이 없어지거나 축소되는 추세이긴 하다.
 

DMZ 박물관은 모두 다섯 개의 주제로 전시실이 있다. 각 전시실의 이름은 숫자가 아닌 제목으로 이뤄져 있으니 ▲축복받지 못한 탄생 ▲냉전의 유산은 이어지다 ▲공감/분단과 통일의 역사 ▲그러나 디엠지는 살아있다 ▲다시 꿈꾸는 디엠지다.
 

DMZ 박물관의 전시를 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야외 전시장을 보면 소리와 빛으로 대북 심리전을 펼치던 시설, 그리고 철책처럼 분단과 정전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이미 허물어진 베를린장벽, 그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이 있다. 복잡해 보이는 이들 전시물을 조금 정리해 보면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절실하게 이해한 뒤에 비로소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고 교류와 평화로 나아가라는 의미는 아닐까. 언젠가 DMZ, 그리고 이 박물관이 역사의 유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최북단 역, 제진역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DMZ의 의미는 두 개다. 분단의 상징 그리고 남과 북의 접경이다. 인근에 있는 제진역도 그러한 의미가 있다. 고성에 있는 제진역은 원래 동해북부선의 기차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지금은 남한 최북단 역이 되었다.

 

제진역을 포함하는 동해북부선은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동해안을 잇는 중간 정도에 있는 철도이다. 동해안을 끼고 있는 철도는 부산에서 포항까지를 동해남부선, 포항에서 강릉까지를 동해중부선, 강릉에서 안변까지를 동해북부선, 안변에서 나진까지를 평라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를 넘어서면 러시아다. 지금 제진역에는 기차는 다니지 않으며 관광 목적으로 잠시 들어갈 수 있다.

 

 

#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그리고 크리스마스실
 

고성의 화진포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동해에서나 볼 수 있는 석호, 그리고 시원한 바다가 있다. 더 나아가 여기에는 역사안보전시관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근현대의 조금은 특별한 역사가 있다. 
 

먼저 화진포의 역사안보전시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이 지역은 38선과 휴전선이 교차한 곳이다. 1945년 생겨난 38선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이었다. 그래서 1948년, 북한에 정부가 수립한 뒤 잠시 김일성 등이 여기에 있던 별장 건물에 머물렀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이 생겼을 때는 수복지역, 곧 남한에 속했다. 여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잠시 머물고, 자유당 시절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인 박마리아도 여기에 머물렀다. 그래서 각각의 건물을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기붕 별장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아야 할 역사를 가진 곳이 바로 한때 김일성 별장으로 불렀던 화진포의 성이다. 지금은 몇 번의 개축을 통해 본래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명확한 서양식 건물이다. 이 건물을 처음 지은 것은 1938년으로 독일 건축가인 베버가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베버에게 건물을 짓도록 요청한 인물은 셔우드 홀이다. 처음에는 셔우드 홀의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다.
 

캐나다 사람인 셔우드 홀은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아버지인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연 윌리엄 홀이다. 어머니인 로제타 홀 역시 동대문 부인병원, 경성 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한 인물이다. 곧 선교사였으며 근대 한국의 중요한 의료사를 담당한 가족이었다. 1893년, 한국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도 캐나다에서 의학 공부를 한 뒤 귀국해 부모의 의료 사업을 이었다. 주로 황해도 해주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해주 구세요양원을 운영했다. 그런 셔우드 홀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193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것이다. 예전만큼의 관심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면 도안이며 그 의미를 짚은 기사가 나온다. 참고로 크리스마스실은 1904년 덴마크에서 처음 발행됐다. 아시아로 보면 필리핀에서 1910년 처음으로 발행되었고 일본에는 1924년 발행됐다.

 

셔우드 홀이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도안을 두고 조선총독부와 신경전을 벌인 것이다. 셔우드 홀은 크리스마스실의 첫 도안으로 ‘거북선’을 생각했다. 그는 영국인이 넬슨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보통의 한국인도 모두 이순신 장군을 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있는 거북선을 도안으로 삼는다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봤다. 무엇보다 거북선의 모습이 단단히 무장한 모습과 포탄으로 적을 물리치는 것이 결핵균을 물리치는 느낌을 주니 크리스마스실의 도안으로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셔우드 홀의 계획을 조선총독부가 허락할 리는 없었다. 결국 수정한 끝에 숭례문이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 도안이 되었다. 셔우드 홀로서는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숭례문과 도성이 갖는 성을 지키는 이미지가 결핵을 막는다는 느낌과 비슷하니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여겨 위안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1932년, 우리나라 첫 크리스마스실 도안은 숭례문이 됐다.

 

어렵게 크리스마스실을 만든 셔우드 홀은 이후 한국인의 건강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타협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1940년에는 끝이 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며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감금하거나 벌금을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셔우드 홀 역시 사소한 일로 트집이 잡혀 재판까지 갔다.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셔우드 홀은 1940년 11월 부산항을 떠났다. 이때 셔우드 홀은 이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우리 가족 다섯 명 중 네 명은 조선에서 태어났다. 나는 가족에게 조선의 국기인 태극기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목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다. 조선의 진정한 국기에 만세를.‘

 

셔우드 홀은 1991년 밴쿠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다음 해, 아버지가 묻혀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가 발행하던 크리스마스실은 광복 이후인 1949년부터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다. 
 

화진포에는 의외의 역사가 남아있다. 생각해 보면 셔우드 홀 가족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곳은 서울 말고도 평양과 해주가 된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들 공간을 함께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광일 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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