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교사. 이제야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지만, 매해 달라지는 아이들과 학부모, 밀려드는 공문이 아직도 두렵다. 학교의 현실은 4년 동안 경험했던 교대 공부나 교생 활동과는 전혀 달랐다.
교실이라는 따뜻한 정원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줄 알았는데,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사막에서 씨앗부터 찾는 상황이었다. 신규 시절, 수업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이들과 소통하며 생기는 변수에 참 많이 당황했다. 수업과 생활지도만으로도 벅찬데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공문과 업무는 더 막막했다.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에게 당장 뛰어야 한다며 전쟁터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전혀 나이스 하지 않은 나이스 사용법은 눈치껏 체득했다. 인터넷 요금 지원이나 체험학습 비용 정산 같은 행정업무를 왜 교사가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했다. 기초적이지만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공문 작성법은 실수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신 부장님께 배웠다. 교장·교감선생님의 따뜻한 말씀과 조언으로 수정 기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사 커뮤니티와 선배·동료들의 도움과 응원이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모두가 바쁜 학교에서 매번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인수인계 자료를 찾아가며 늦은 밤까지 업무를 처리했다. 일이 익숙해지면 금세 또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교직에 대한 회의와 후회가 밀려들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는 교사의 희생으로 굴러간다. 학생들이 집에 가면 교사도 퇴근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꽤 많다. 수업이 끝나면, 방학이 되면 교사들이 마냥 노는 줄 안다. 나도 교사가 이렇게까지 바쁘고 힘든지 몰랐다. 담임을 맡은 해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여유롭게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을 때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을 살피며 음식이 어디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씹어 삼켰다. 안 먹겠다는 아이들과 더 먹겠다는 아이들의 아우성 속에서 위염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우리 애는 특별해서 혼내지 말고 칭찬만 해주어야 한다’, ‘남편이 화나서 학교에 찾아간다는 걸 겨우 말렸어요’ 등의 말을 한 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생활을 캐묻고, 졸업앨범에 수록된 교사의 사진을 돌려 보며,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더 이상 소수의 일이라 치부할 수 없다.
‘기분 상해죄’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사는 웃을 수 없다. 학생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법정 공방을 다퉈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원을 무마하기 위한 공개 사과, 담임 교체와 같은 임시방편은 피해 교사를 더욱 힘들게 한다.
갑자기 겪게 되는 교통사고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삭히고 수습해야 할 뿐이다.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고자 해도 민원의 소지가 없는지부터 걱정하게 된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하게 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스스로 검열한다. 학교가 두려운 교사가 늘어간다.
학교폭력 심의, 방과후돌봄 등 업무경계가 애매하고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일들이 점점 늘었고, 그에 따른 민원도 심각해졌다. 교사 개개인이 감내하고 버텨냈던 일들이 곪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악스러운 악성 민원, 아동학대와 관련된 고소·고발들이터져 나왔다. ‘교육공동체’라 불리는 학교구성원 모두가 힘겹다. 이제 학교는 평화로운 척조차 할 수 없다.
소위 직장인들에게 ‘금융치료’라 불리는 ‘월급’은 너무 적어서 고통을 치유해 줄 수 없다. 첫 월급은 정말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지금도 잠시 머물다 떠난다. 돈을 많이 벌고자 교직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사기업에 취직한 친구와 비교하니 근무시간은 비슷한데 임금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해가 갈수록 그 격차는 커졌다. 물론 경제적 측면으로만 직업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오래 일하고, 연금을 받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교원인사제도개선을 위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한 교사의 51.3%가 정년 전에 교직을 그만두겠다고 밝혔으며, 교권침해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명예퇴직이 가능한 때까지 무탈하게 근무하는 것도 힘든 시대에 정년퇴임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충분한 보상이 없어도, 몸과 마음이 망가져도 책임감으로 버티며 근무했다. 하지만 연이은 교권침해 사태는 보수적인 교사집단을 움직이게 했다. 그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더운 여름, 땀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리며 시위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픈 일들이 계속되었다. 뉴스 보기가 두려웠고, 충격과 공포로 모두가 앓았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뼈가 시리게 추운 겨울이 된 지금, 아직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수많은 교사가 죽고 고통받아도 가해자는 없다. 학교를 교육이 아닌 보육기관으로 바라보는 현 세태가 비통하다.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묵살하는 상황에서 교사는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공교육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폭력과 체벌을 허용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인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교사에게 정당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면, 피해는 교사뿐만 아니라 수업받을 권리를 가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MZ세대는 교직을 선호하지 않는다. 연금을 바라보며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젊음을 희생하지 않는다.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MZ세대에게 학교는 답답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지만, 헌신에 비하여 적은 임금은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없다.
그 결과 교사에 대한 선호와 교육대학의 인기가 추락했다. 교대생의 자퇴와 반수가 급증했다. 교사들의 병가·휴직·명예퇴직·의원면직이 줄을 잇는다. MZ세대 교사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의 교사들도 이직과 학교 탈출을 꿈꾼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부는 2024년 1월부터 장기간 동결됐던 담임수당을 50% 이상, 보직교사 수당을 2배 이상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파격적인 수치라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월 13만 원인 담임 수당은 7만 원, 월 7만 원인 보직교사 수당은 8만 원이 추가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적은 금액으로 생색내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담임이나 부장을 맡지 않는 교사와 교감·교장은 제외된다는 점에서 교사 전체를 고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무섭게 오르는 물가에 실질임금이 삭감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희생과 헌신을 보상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적인 대책과 교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처우개선이 없다면 교직 기피 현상은 단순한 수당 인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 변화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다. 수업 중에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버틴다. 학교 오는 것이 신난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학교는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하는 공간이다. 귀한 자녀들만큼이나 교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