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자리는 황도 12궁 별자리 중 하나로, 서쪽의 게자리와 동쪽의 처녀자리 사이에 있다. 봄철 초저녁 하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레오(Leo)’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사자자리는 별자리 이름과 그 형상이 아주 그럴듯하게 잘 들어맞는 별자리다. 사자가 동물의 왕다운 위용으로 밤하늘에 서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페르시아·시리아·인도·바빌로니아 등의 고대 국가에서도 모두 이 별자리를 사자의 명칭으로 불렀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자신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하늘로 올려 사자자리(Leo)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자자리의 낫(Sickle)은 농기구인 낫, 혹은 뒤집힌 물음표처럼 보이며 사자의 머리와 어깨를 나타낸다. 사자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1등성인 레굴루스(Regulus)를 비롯해 모두 1~4등성으로 아주 밝다. 알파별 레굴루스는 ‘작은 왕’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레굴루스는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쌍으로 구성된 네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레굴루스를 하늘의 네 수호자로 불린 ‘네 개의 황제별’ 중에서도 우두머리 별로 여겼다. 서양 점성술에서는 레굴루스 아래에서 태어난 이는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얻는다고 믿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이 별자리는 헌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동서양 모두 황제의 별자리로 취급했다고 할 수 있다. 데네볼라(Denebola)는 사자자리에서 두 번째로 밝은 베타별로, 그 이름은 ‘사자의 꼬리’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데네볼라는 목동자리의 알파별 ‘아크투르스’, 처녀자리 알파별 ‘스피카’와 함께 봄의 대삼각형을 이룬다.
사자자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국자모양으로 친숙한 북두칠성(큰곰자리)은 다른 별들을 찾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사자자리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북두칠성의 손잡이에서 이어지는 두 별 메그레즈(Megrez)와 페크다(Phecda)를 연결하는 가상의 선을 연장하여 계속 나아가면 사자자리의 레굴루스에 이르게 된다. 사실 사자자리 자체가 1등성 레굴루스를 갖고 있어, 봄철 남쪽 밤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매년 11월 중순 밤하늘에 사자자리와 함께 볼 수 있는 유성우가 있어, ‘사자자리 유성우’라고 불린다. 물론 사자자리에서 날아오는 유성은 아니다. 33년 주기를 갖는 템펠-터틀 혜성(55P/Tempel-Tuttle)이 태양 가까이 지나가면서 궤도상에 많은 잔해를 남긴다. 사자자리 유성우는 그 잔해 속을 지구가 지날 때 그것이 지구 중력에 끌려 지구 표면으로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의 사자자리 유성우는 2001년 11월, 템펠-터틀 혜성이 1998년 태양 근처를 지나가면서 남긴 잔해 속을 지구가 공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시간당 5,000개 이상의 많은 유성이 떨어지기도 했다. 머리털자리는 원래 사자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취급되다가 17세기 정도에 완전히 독립된 별자리로 나뉘었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첫 번째 임무 _ 네메아 사자 퇴치하기
사자자리의 주인공은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다. 고대 신화에 의하면, 이 사자는 그리스의 네메아 골짜기에 살았는데, 그 인근 마을과 멀리는 티린스와 미케네 지방에까지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을 죽였다. 그것의 부모형제는 모두 끔찍한 괴물들이었다. 아버지는 눈에서 번갯불과 불꽃을 내뿜는 100개의 용머리와 거대한 뱀 하반신을 가진 괴물 티폰, 어머니는 여성의 상반신과 뱀 하반신을 가진 에키드나이며, 키마이라·히드라·케르베로스 같은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괴수들이 그의 형제다.
헤라클레스의 괴력과 수많은 모험을 보여주는 ‘12과업’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네메아 사자 물리치기, 괴물뱀 히드라 죽이기, 케리네이아의 황금뿔 암사슴과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생포하기,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 청소하기, 스팀팔로스의 청동 괴물새 퇴치하기, 크레타의 황소 잡기, 디오메데스 왕의 식인 암말 데려오기,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 빼앗아 오기, 게리온의 소 훔치기,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따오기, 지옥의 개 케르베로스 생포하기 등 12가지가 헤라클레스가 해야 했던 노역이었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첫 번째가 바로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네메아의 사자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입구가 두 개인 동굴로 이리저리 도망쳐 버렸고, 그 가죽은 어떤 칼·화살·창으로도 뚫리지 않아 도무지 처치할 수가 없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동굴 입구 하나를 바위로 막고, 자신의 올리브나무 몽둥이로 사자 머리를 세게 가격한 후 목을 졸라 죽였다. 사자를 죽인 후 가죽을 벗기려 했지만, 어떤 도구로도 도저히 찢을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사자 발톱을 사용해 겨우 벗겨내 갑옷으로 입고 다녔다. 신화 덕분에 헤라클레스는 많은 예술작품에서 가죽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헤라클레스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신화였고, 그리스의 도기 그림이나 대리석·청동조각, 루벤스나 수르바란 같은 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수없이 재현되었다.
‘파르네세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미술가였던 리시포스(Lysippos)의 청동상을 아테네의 조각가 글리콘(Glykon)이 대리석 버전으로 모사한 것이다. 원본은 소실되었다. 1546년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탕에서 발견되었는데, 후에 파르네세 궁 안뜰로 옮겨져 오랫동안 보관돼 있었기 때문에 ‘파르네세 헤라클레스(Farnese Hercules)’로 불린다. 현재는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3.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와 과도한 근육 덩어리의 조각상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헤라클레스라는 신화적 영웅의 이미지가 잘 형상화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으로 덮인 몽둥이에 왼팔을 두른 채 몸을 기대고 있다. 12과업 중 11번째 노역인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따온 후 쉬는 중이다. 등 뒤로 돌린 헤라클레스의 오른손에는 사과 세 개가 쥐어져 있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강건한 육체와 대조적인, 힘이 없이 처진 표정은 그가 노역에 지쳤음을 보여준다. 제아무리 헤라클레스라도 인간적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헤라는 태초의 여신 가이아가 제우스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한 황금 사과나무를 정원에 심고 헤스페리데스 자매와 용 라돈에게 지키게 했다. 헤스페리데스 세 자매는 아틀라스의 딸들이었고, 라돈은 한 개 빼고는 결코 잠들지 않은 99개의 눈을 가진 아주 강력하고 무서운 괴물이었다. 사과를 따러 가는 여정에서, 헤라클레스는 바위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구해준 보답으로 아틀라스를 이용해 사과를 따오게 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아틀라스는 타이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에서 패해 대양에서 영원히 하늘을 들고 서 있는 처벌을 받은 거인이다. 그의 말대로,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에게 자신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을 테니 사과를 따다 달라고 부탁한다. 아틀라스가 사과를 따오자 헤라클레스는 그를 속인 후 황금 과일을 가지고 도망친다. 열한 번째 노역이었으니 이때쯤 저런 피로한 모습이 나올 만하지 않은가.
네메아의 사자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은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장면을 그림에 담아냈다. 수르바란은 가톨릭교회의 세력이 지배적이었고 반종교개혁적인 세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수호자로서, 주로 수도사·수녀·순교자를 그린 종교적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들은 숭고하고 명상적인 가톨릭의 영적 신비주의를 강하게 보여준다.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헤라클레스’는 종교화가 아닌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것이지만,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를 통해 그의 종교화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나타나 있다. 레슬링하는 헤라클레스와 사자의 모습이 매우 단순명료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배경 역시 별다른 특징이 없고 어둡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형태와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대비법)는 수르바란의 특징인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무드를 창출해낸다.
네메아 사자와 헤라클레스의 싸움 주제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울퉁불퉁 근육질 육체를 가진 헤라클레스의 발밑에 턱이 벌어진 호랑이가 깔려 있고, 옆에는 인간의 두개골이 뒹굴고 있다. 루벤스는 북유럽의 사실주의 화풍의 전통 속에서 성장한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이었지만, 이탈리아 장기체류로 전성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두 가지 미술양식을 이상적으로 결합해 17세기 바로크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루벤스는 통통하고 육감적인 여성 누드로 유명하다.
19세기에는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의 모습에서 유래한, 풍만한 여성을 지칭하는 ‘루베네스크(Rubenesque)’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동시에 그는 건장한 근육형 남성 누드에도 관심이 많았다. 루벤스는 성서나 신화 속 영웅·왕·지도자 등 강력한 남성을 주제로 하여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과 용맹성을 보여주는 남성 누드를 많이 그렸다. 이런 점에서 적이나 괴물과 싸우는 힘센 영웅 헤라클레스는 루벤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모델이었다. 로마에 머물 당시에는 유명한 고대 조각 중 하나인 파르네세 헤라클레스를 모사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좁은 동굴 안에 사나운 사자의 발톱을 피해 가며 목을 졸라 죽일 때까지 격렬하게 씨름하는 모습을 담았다. 루벤스는 인간과 광포한 짐승의 레슬링 경기를 묘사함에 있어 아주 창의적이고 드라마틱한 포즈를 찾아낸 듯하다. 몸을 약간 구부린 채 왼팔로 사자의 머리를 조여 부수는 헤라클레스의 안정적인 자세를 통해 초영웅적인 힘의 우세를 실감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