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위한 마음 챙김 철학] 치미는 화를 어찌해야 할까? 

2024.05.07 10:00:00

“나는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 할까?”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65)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스스로 되뇌던 말이 있다. 

 

“나는 오늘도 만나게 될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탐욕스럽고, 야망의 노예가 된 수많은 사람을.”

 

선생님의 하루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싶다. 교사의 일상은 감정 노동의 연속이다. 성적 1점을 더 받겠다며 억지 논리를 펴는 학생들,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학부모,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동료 등등, 하루에도 감정의 날을 서게 만드는 일들이 몇 번씩 벌어진다. 애써 참고 삭히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퇴근해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터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 상황이 내일도, 또 다음 날도 계속 이어질 듯싶다. 해가 바뀌면 교사는 언제나 미숙한 학생들, 불안한 학부모, 거듭되는 업무에 지친 동료들과 다시 만나야 한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 할까? 내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있을까? 화와 막막함이 끓어오른다. 이 격한 가슴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화는 ‘일시적 광기’다”
이런 답답함에 가슴 치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를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는 우리같이 분노와 화를 주체하지 못할 상황을 수없이 겪었을 듯싶다. 그의 가르침에는 몸소 겪으며 깨달은 화와 분노에 대한 처방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세네카는 화를 ‘일시적 광기’라고 말한다. 화가 났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할 말, 못할 말 있는 데로 쏟아내며, 상대에게 서슴없이 감정의 칼을 휘두른다. 그 결과는 어떻던가? 속이 후련하며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던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후회와 자책으로 마음이 더 안 좋아질 뿐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이들도 있겠다. 상대는 내가 던지는 모욕을 받아 마땅한 자이며, 나는 결연하게 할 말 했을 따름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세네카는 차분하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미친 사람은 자기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화에 휘둘리는 이들도 그렇다. 그들은 자기가 화를 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 한다. 이러면서 그들은 문제를 크게 키운다. 자신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상대를 응징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이들 눈에 그들은 속 좁고 허세 가득한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잠깐만 기다려 보자” 
세네카는 화가 올라올 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충고한다. 분노가 솟구칠 때, 미루기만큼 좋은 처방은 없다. 화를 꼭 지금 터뜨릴 필요는 없다. “진실은 시간을 두고 살펴볼수록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그러니 조금 더 살펴보고 내가 진짜 화를 낼 만한지를 따져보자. 세네카는 이렇게도 말한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감정이 널뛰는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생각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니 자극과 반응 사이에 거리를 두자. 지금 당장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그 자리를 피하거나, 일단은 감정을 다독이며 조용히 견뎌보자. 

 

“과거 말고 미래를 보라”
최고의 격투기 선수는 화난다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어서 가장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주먹을 날린다. 그는 경기의 목적이 이기는 데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의 약 올림과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를 낼 때는 ‘성을 내는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가다듬어야 한다. 세네카의 말을 들어보자. 


“구부러진 창을 똑바로 펴기 위해 열을 가하고 비틀림을 바로잡으려고 쐐기를 박는 것처럼, 우리는 삐뚤어진 마음에 고통을 주어 몸과 정신을 바로잡는다.”

 

화가 나서 하는 앙갚음은 최악이다. 그 순간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모욕당한 상대는 나에게 앙심을 품을 터다. 나에게 달려들지 모를 적이 세상에 또 한 명 늘어난 꼴이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 좋을 리는 없다. 그래서 세네카는 화를 낼 때는 “과거 말고 미래를 보라”라고 조언한다. 복수를 꿈꾸지 말며, 상대를 더 낫게 하거나 세상을 좋게 하는 방향으로 화를 이끌라는 의미다. 상대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가, 그냥 치솟는 감정대로 상대를 치받도록 자신을 내버려두는가? 


교사는 당연히 ‘교육을 위해’ 엄하게 질책할 뿐,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세네카가 “꾸짖되 화를 내지는 마라. 자신이 고쳐야 할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는가?”라고 가르치는 이유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는가?”
세네카의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현장에서 실천하기란 무척 어렵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화병이 나서 미칠 것 같다. 그래도 세네카는 운동으로 몸을 가꾸듯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꾸준히 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화와 분노가 안기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화는 자신의 무력하고 지친 마음을 드러낼 뿐이다. 병들어 피부가 곪았을 때는 누가 스치기만 해도 신음 소리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지질한 상대가 아무리 자신을 성가시게 해도 모욕이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성숙한 어른에게 상처가 되는지 떠올려 보라. 우리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지도록 열심히 정신을 가꾸어야 한다. 세네카는 우리 마음을 물이 쉴 새 없이 새어 들어오는 선박에 빗댄다. 배를 지키려면 바닥의 물을 끊임없이 퍼내야 한다. 왜 배가 이 모양이냐고 화를 내 봐야 소용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슴에 찾아드는 삿된 감정들을 주의 깊게 살피며 덜어내고 또 덜어내야 한다. 


세네카는 병들었으면서 동시에 건강할 수 없듯, 화를 내면서 동시에 선한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치미는 화를 다스리며 애써 마음을 다독이라. 이러는 가운데 나는 더 훌륭하고 좋은 성품을 갖추게 될 터다. 이는 마치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며 근육을 가꾸는 일과 같다. 쉽지는 않아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화가 치솟을 때는 이렇게 되물어 보라. “나라고 저런 잘못을 한 적이 없을까?” 누구에게나 사춘기가 있었고, 치기를 자랑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지나온 인생은 후회투성이이기 마련이다. 분노로 흉해진 상대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옛 표정이 어떤지를 떠올리며 감정을 가다듬어 보라.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흉측한 모습 그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일상은 쉽지 않다. 그러나…”
로마 시대 존경받던 정치가 소(小) 카토(기원전 95~45년)는 어느 날 로마의 목욕탕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상대는 흥분해서 그에게 다짜고짜 손찌검을 날렸다. 시비가 벌어지자 카토는 곧바로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를 피했다. 화가 가라앉은 후, 상대방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카토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괜찮아요. 저에게는 맞은 기억조차 없습니다.” 카토가 한 말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자리 잡을 곳이 없다. 온갖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선생님의 마음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꾸준히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세네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당신 마음의 악한 면 중에서 무엇을 고쳤습니까? 어떤 나쁜 마음에 맞서며 어느 점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졌습니까?”

 

선생님의 일상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때만 근육은 자라난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매일 부딪히는 화낼 만한 상황을 내 마음을 튼실하게 가꿀 기회로 생각하며, 앞의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며, 감정을 다스려 보자. 어느 순간 인자하고 인품 깊은 선생님의 표정이 내 얼굴에 찾아들 것이다.

안광복 서울중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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