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고비, 나는 무능한 교사일까?”
떠드는 아이는 수업을 힘들게 한다. 반항하는 친구는 하루 종일 선생님을 심란하게 한다. 무기력한 학생은 이보다 더 어렵다. 악평이 무관심보다 차라리 낫다고 하지 않던가. 뭘 하든 반응이 없는, 언제나 스마트폰만 찾는 아이들, ‘최소성취보장제’ 덕분에 이런 친구들은 선생님들의 최고 관심 학생이 되곤 한다. 그들은 언제나 모든 일에 심드렁하기에 성적이 바닥에 다다랐을 터. 그래도 교사는 아이들을 일깨워야 한다. 이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도 겨우 나오는 판인데, 이 아이들에게 공부 의욕을 어떻게 불어넣는단 말인가.
장마와 더위가 찾아드는 6월은, 선생님에게 무기력과의 싸움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무관심·짜증·신경질 섞인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면 자괴감이 밀려든다. “나에게 선생님이 맞는 직업일까? 나는 무능한 교사 아닐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고민에 휩싸이신다면, 경영 사상가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의 동기이론을 살펴보셨으면 좋겠다.
“PBL, 효과 만점인 영혼의 MSG”
다니엘 핑크는 줄기차게 ‘동기 3.0’을 이야기한다. ‘동기 1.0’은 먹고 자는 일 같은 생존욕구를 뜻한다. ‘동기 2.0’은 처벌은 피하고 보상은 누리려는 욕망이다. 동기 2.0은 우리 생활에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특별하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 정도다. 나는 이를 ‘PBL’로 풀어 설명하려 한다.
PBL이란 점수(Point)·등급(Badge)·등수(Leaderboard)를 줄인 말이다.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집단 밖으로 밀려나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평가에 예민하다. 내가 뒤처져 쓸모없다고 여겨지지는 않는지, 다른 이들이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않는지 등등을 신경 쓰느라 늘 날이 서 있다. PBL은 이런 불안감을 흔들어 깨우는 장치다.
“고객님, 포인트 3천 점이 있고요, 지금 골드 등급입니다. 구입 액수로는 1,500등 정도인데요, 1,000등 안에 드시면 플래티넘 등급으로 올라갈 거예요.”
판촉전화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데도 등급이 낮고 순위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면 조급해진다. 아이들이 빠져드는 게임은 PBL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몇 포인트를 올렸는지, 속한 티어(tier)가 높은지 낮은지, 한 수준 높은 집단에 속하려면 얼마나 등수를 올려야 하는지를 줄기차게 확인시켜 준다. 이 점에서는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점수 매기기와 등급을 산출하고 성적 줄 세우기는 교육의 일상적인 활동 아니던가. 교원능력개발평가와 성과급도 PBL을 이용하여 일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 할 만하다.
여러 곳에서 널리 쓰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확실하게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니엘 핑크라면 PBL에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 듯싶다. 왜 그럴까? PBL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기부 기재 때문에 엄청나게 책을 읽은 학생에게 독서가 즐거울 리 없다. 석차와 성과로 인정받으려 아득바득하는 사람이, 배움이 주는 보람을 오롯이 누릴 리도 없다.
우리 학생들의 학습량이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데도, 책 보는 인구는 왜 이토록 적은지 생각해 보라. 먹기 싫은 나쁜 음식도 MSG를 뿌리면 먹을 만해진다. 그러나 MSG가 건강에 이롭지는 않다. PBL도 마찬가지다. 이는 하기 싫은 활동을 하게 하는 ‘영혼의 MSG’일 뿐이다. 이쯤 되면 다니엘 핑크가 권하는 동기 3.0이 이해될 듯싶다. 이는 ‘더 유능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타고난 욕구’를 일컫는다.
“몰입, 그리고 X-I 이론”
다니엘 핑크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flow)’을 끌어들여 ‘동기 3.0’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를 잃어버릴 만큼 무엇에 빠져든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고개 들어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 경험을 떠올려 보라. 가슴이 뿌듯한 보람으로 가득했을 터다. 이럴 때는 평소에 자신을 따라다니던 걱정 근심도 자리 잡을 곳이 없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연예인 ‘덕질(?)’을 하는 이유도 몰입감에서 찾을 수 있겠다. 헛헛하고 불편한 마음도 게임이나 연예인에 빠져있을 때만큼은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몰입의 경험들이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런 일이 잦아질수록 세상과는 멀어지며, 불안감도 커지는 탓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몰입을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니엘 핑크는 자신이 펼치는 동기에 대한 설명을 ‘X-I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는 ‘외재적(eXtrinsic)’ 동기와 ‘내재적(Intrinsic)’ 동기를 줄인 말이다. 외재적 동기는 PBL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게 만드는 힘이다. 반면 내재적 동기는 자신을 더 좋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다. 다니엘 핑크는 우리 모두에게는 내재적 동기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상대하기 어려운 학생도, “내가 너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이 있어. 들어볼래?”라고 말하면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때는 눈가에 푸르게 피었던 반항기도 한풀 꺾인다. 누구라도 가슴 속에 자신이 더 낫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픈 갈망이 있다는 의미다.
다니엘 핑크는 상대에게 ‘자기다워지려는 모습’을 칭찬해 주라고 충고한다. 성과 말고 노력하는 모습 자체를 바라보고 격려하라는 의미다. 나아가 바람직하게 거듭나려는 노력이 지루하고 힘들다는 사실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괴로운 마음을 읽어주고 알아주기만 해도 한결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애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찬찬히 들려주어야 한다.
“내가 나다운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과 씨름해 본 선생님이라면 이 ‘지당한 말씀’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지를 잘 안다. 그래서 다니엘 핑크는 ‘점근선 이론’을 들려준다. 점근선은 끝없이 목표한 선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코 맞닿지 않는 곡선이다. 선생님의 노력 또한 그렇다. 우리는 완벽한 수업, 완전한 생활지도를 위해 애쓰지만, 이는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노력 속에서 더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그다운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윈스턴 처칠이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던 장면은 그의 전체 인생으로 볼 때 매우 짧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가 ‘검은 개(black dog)’라고 불렀던 우울감에 줄곧 시달렸다. 로마 황제 가운데 가장 높은 인품을 갖춘 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스파시아누스는 또 어떤가. 그조차도 화에 휩싸여 노예의 눈을 뽑아버리게 한 후,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위대한 인물도 이러한 데, 평범한 우리가 줄기차게 노력하여 스스로를 바람직하게 바뀌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다니엘 핑크는 우리에게 바라는 수준을 현실에 맞추라고 조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사흘째 되는 날에 자신이 그 일의 거장(巨匠)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3,000일째 되는 날에는 거장이 될 것이다.”
이 말은 무력한 학생들 탓에 매일 좌절을 곱씹는 선생님들에게도 깊이 다가가는 위로이기도 하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 내일의 노력만으로 180도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는 경우는 없다. 선생님은 아이를 싹 틔우는 햇살처럼 오래도록 한결같이 비추어 주어야 한다. 무력한 학생을 일으켜 세우기에 앞서, 선생님이 먼저 힘든 상황을 끈기 있게 버티는 튼실한 정신의 근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다.
“버티고만 있어도 나아가는 것이다”
링컨은 ‘노예제도를 없앤 사람’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이겨낸 대통령’이다. 누군가의 부모님은 ‘자녀들을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내신 분’으로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니엘 핑크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나는, 나의 교사로서의 삶을 어떻게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야구에서는 3할만 넘겨도 뛰어난 타자다. 이는 열 번 나와서 일곱 번 죽는 수치다. 삶에서도 당연히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다. 이를 받아들일 때 선생님도 무기력한 학생들을 대할 때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프로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은 날에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다니엘 핑크가 들려주는, 동기이론의 핵심이다. 학생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가 나아지지 않더라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우리는 의미 있는 성장을 하는 셈이다. 버티는 일이 곧 조금씩 나아가는 길임을 생각하며 힘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