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밤하늘의 별이 된 모자, 칼리스토와 아르카스

2024.06.04 10:00:00

 

발전된 과학 기술, 특히 망원경 기술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천체에 대해 나날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눈으로 관찰하는 우리 위의 밤하늘은 고대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맴도는 별들은 수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 별들을 지도 삼아 길을 떠나고 항해를 했다. 그리고 그 형상에 따라 상상력을 발휘해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밤하늘의 별이 된 모자, 칼리스토와 아르카스에 얽힌 큰곰자리(Ursa Major), 작은곰자리(Ursa Minor)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본다.
 

큰곰자리는 북반구에서 가장 큰 별자리이며, 밤하늘에서 세 번째로 큰 별자리다. 큰곰자리는 아주 오래된 별자리 중 하나로,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의 별자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별자리는 북반구의 두 번째 사분면, 천구의 적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극에 매우 가깝다.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반구 지역에서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 큰곰자리에는 북두칠성(Big Dipper)이 포함돼 있다. 북두칠성은 밤하늘에서 쉽게 눈에 띄는 별자리로, 여러 시대에 걸쳐 나그네와 선원들이 길을 찾는 데 중요한 도구였다. 북두칠성의 국자 끝에 있는 큰곰자리의 두베(Dubhe)와 메라크(Merak)는 북극성을 찾기 위한 포인터로 사용된다.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그리고 북두칠성
이 별자리는 유럽 문화권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 뿌리 깊은 역사와 의미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서는 국자 부분을 곰으로, 꼬리 부분에 있는 세 개의 별을 곰을 쫓는 세 명의 사냥꾼이라고 본다. 사냥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되는데, 가을쯤 마침내 화살이 곰을 꿰뚫어 상처 입은 곰의 피가 땅에 쏟아져 나뭇잎의 색이 변한다고 상상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쟁기’로 알려진 한편, 독일인과 루마니아인을 비롯한 슬라브인들은 ‘거대한 마차’라고 일컬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관’으로 인식되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기간 중, 글을 읽을 줄 몰랐고 항해 도구도 사용할 수 없었던 많은 노예가 지도나 나침반이 없어도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별자리 덕분이었다. 미국 민요 ‘Follow the Drinking Gourd’라는 노래는 도망 노예가 북두칠성을 지도 삼아 북쪽의 자유 주와 캐나다로 도주하는 이야기다. 우리말로 ‘표주박’을 뜻하는 노래 제목의 ‘gourd’는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민담에 따르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 조직원이 노예들을 안내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9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백인과 자유 흑인들의 조직으로서, 노예제를 반대하여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다. 노예사냥꾼의 눈을 피해 탈출 노예들을 숨겨주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 속에서 탈출로를 찾았던 사람들에게는 북두칠성이 그야말로 생명수를 담은 표주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큰곰자리(Ursa Major)와 작은곰자리(Ursa Minor)는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둘 다 손잡이가 달린 냄비 모양을 하고 있으며 7개의 별이 있다. 두 별자리 모두 북반구에서는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냄비 손잡이는 다르게 구부러져 있으며, 작은곰자리 크기가 확실히 더 작다. 작은곰자리는 북극성을 포함한 7개의 주요 별이 있는 잘 알려진 별자리다. 작은곰자리의 알파별인 북극성(Polaris)은 이 별자리의 손잡이 끝에 있는 노란색 초거성으로 지구에서 433광년 떨어져 있으며 질량은 태양의 약 6배이다.


바람개비 은하(M101), 올빼미 성운(M97), 시가 은하(M82) 등 풍요로운 볼거리가 큰곰자리에 위치해 있다. 바람개비 은하(Pinwheel Galaxy)는 그 웅장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우리은하와 상대적으로 가까워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시가 은하(Cigar Galaxy)는 밝은 푸른 원반, 갈가리 찢긴 거미줄로 구성된 구름 같은 이미지, 그리고 그 중심 지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타는 듯한 수소 기둥이 시선을 끈다.

 

큰곰자리 방향으로 북쪽 봄 하늘 높은 곳에 나타나는 시가 은하는 원반의 비스듬한 기울기에 의해 생성된 타원형 모양 때문에 시가 은하라고 일컫는다. 올빼미 성운(Owl Nebula)은 영국의 아마추어 천문학자 로스 백작이 이 성운을 그린 스케치에서 올빼미를 닮았다고 기록한 것으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형 망원경으로 보면 성운 가운데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이 보이는데 이것이 올빼미의 눈처럼 보인다. 이 부분은 덜 이온화된 성운의 가스로 덮여 있다.


바람둥이 신 제우스와 칼리스토 이야기
그리스신화에서 큰곰자리는 제우스(Zeus)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님프이자 사냥꾼인 칼리스토(Callisto)의 별자리다. 칼리스토는 아르카디아의 왕 뤼카온의 딸이고, 달의 여신이며 사냥과 순결의 여신인 디아나의 시녀였는데, 님프 중 가장 아름다워 디아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에게 반한 주피터가 디아나 여신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 유혹한다.

 

 

나중에 칼리스토가 임신한 것을 알아채고 노발대발한 디아나는 순결의 의무를 저버린 님프를 그녀의 무리에서 쫓아낸다. 그 후 칼리스토는 홀로 제우스의 아들 아르카스(Arcas)를 낳는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항상 남편의 여성 편력에 골머리를 앓았고 그의 연인들과 자식들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곤 했다. 이번에도 질투심에 불탄 헤라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어 숲을 배회하며 여생을 보내게 만든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늠름한 사냥꾼이 된 아르카스는 숲에서 곰 한 마리를 만나는데, 바로 곰으로 변신한 가엾은 칼리스토였다.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아르카스가 곰을 향해 창을 던지려고 하자, 제우스는 재빨리 칼리스토의 꼬리를 잡고 하늘로 들어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이때 아들 아르카스도 같이 별자리로 올려주었는데, 이것이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별자리 신화다.

 

미술사에 빛나는 수많은 거장이 칼리스토와 제우스 그리고 아르카스의 슬픈 이야기를 명화로 남겼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양식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역동적인 구성과 화려한 색채로, 종교적·신화적 주제와 역사화·초상화를 그렸다. ‘주피터와 칼리스토’ 역시 그가 좋아한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써, 루벤스의 특징인 관능적인 누드 묘사가 압권이다.

 

사선 구도로 두 여인이 화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왼쪽 아래 구석에 화살통이 놓여 있고, 이 통 위에 오른손을 짚고 비스듬히 몸을 젖힌 칼리스토가 붉은 천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고개를 약간 숙인 상태로 눈을 치켜떠 맞은 편 여자를 쳐다본다. 디아나로 변신한 제우스는 한쪽 어깨와 가슴을 드러낸 채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진다. 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이들을 보고 있고, 어두운 나무숲이 뒷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멀리 풍경과 저녁노을 진 하늘이 보이고, 석양빛의 불그스레함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는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다. 화려하고 풍부한 색상과 질감 표현에 중점을 둔 베네치아 화파의 지도자로서, ‘작은 별들 가운데 있는 태양’이라고 불릴 만큼 화가로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티치아노의 천재성은 초상화·풍경화·역사화·종교화 등 모든 회화 장르에서 나타났다. 티치아노는 화가인 동시에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티치아노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주문을 받아 ‘포에지(Poesie)’ 연작을 그렸다. ‘포에지’는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의 시집 <변성(Metamorphoses)>에 나오는 신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일곱 가지 주제로 구성된 ‘포에지’ 연작은 티치아노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디아나와 칼리스토>는 그중 하나다. 디아나의 명령에 따라 동료 님프들에 의해 옷이 벗겨져 칼리스토의 수태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디아나와 님프들의 누드가 연출하는 격렬한 몸짓과 다양한 포즈가 매우 육감적이다. 만지면 그 촉감이 느껴질 것 같은 여성의 피부는 티치아노 특유의 세련된 기술과 풍요로운 색상으로 표현되어 관람자의 관음증적 시선을 끈다.

 

다음 작품들은 곰으로 변신한 칼리스토가 숲에서 아들 아르카스와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변성>에서 칼리스토의 변신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의 팔 위로 털이 덮인다. 그녀의 손톱은 발톱이 된다. 그녀의 입술은 흉측한 턱으로 자란다. 말 대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겉모습은 곰이지만 사실은 여자인 그녀는 이제 비극적인 운명에 의해 사냥꾼의 사냥감이 된 것이다.

 

곰 한 마리가 왼쪽의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덤불에서 나온다. 주피터와 칼리스토의 아들 아르카스가 활을 당긴다. 아르카스의 금발이 산들바람에 상쾌하게 흩날리고, 활과 화살, 화살통에 햇빛이 비쳐 황금색으로 반짝거린다. 이 화사한 풍경은 곧 펼쳐질 비극적인 사건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바위투성이의 해안선 근처에 고대 영웅의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갑옷을 입은 아르카스가 곰에게 창을 겨누고 있다. 암곰 칼리스토는 몇 년 동안 숲을 배회하다가 이제 성인이 된 아들 아르카스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화가는 어미 곰이 아들을 알아보는 순간을 웅크린 곰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