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교실] 교실 속 nobody와 somebody

2024.06.24 09:00:13

‘고마워교실’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고마워’를 많이 말하고 듣는 교실이랍니다. ‘고마워교실’에서는 도대체 어떤 ‘고마움’이 가득 차 있길래 ‘고마워’를 많이 말하고 많이 듣게 되는 걸까요?

 

조건 없는 고마움

 

사랑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입니다.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의 ‘사람사전’을 보면 사랑에 대한 신선한 정의가 나옵니다. 사랑은 같이 있어 주는 것, 같이 걸어주는 것,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 같이 울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모든 문장에서 ‘주다’라는 개념을 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같이 있는 것, 같이 우는 것이랍니다. ‘준다’는 개념을 빼야만 사랑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득이 있을 때 보상이 주어질 때 고맙다,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고마움은 ‘~해줘서 고마워’라는 조건이 달린 고마움이 아닙니다. 조건 없는 고마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특정한 조건 때문에 고마운 것이라면, 그 조건을 충족하지 않을 때는 고마움이 사라집니다. 뭔가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은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그냥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은 우리를 평온하게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고마워!”는 조건도 없고 이유도 없이 그냥 고마운 것으로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존재함에 대한 고마움을 받는 학생은 교실의 한 구성원으로서 nobody가 아니라 Somebody로 존재하게 됩니다.

 

Nobody

 

‘nobody(노바디)’의 뜻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교실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존재할까요? 교실에서 학생들은 노바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하며, 친구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물리적이며 폭력적이라도 친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서슴지 않고 행동합니다. 타인에게 무례하게 굴고 자신이 마치 대단한 권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행동하면서 노바디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한 애를 씁니다. 아이나 성인이나 할 것 없이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누군가와의 실제적인 갈등 문제라기보다 타인에 대한 경멸의 문제, 자신의 존재 증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단단하게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지속적으로 용인되고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또한 경멸감, 굴욕감, 모욕감 같은 부정적 감정은 결국 다른 이들의 삶의 에너지까지 갉아먹고 부정성을 전이시킵니다. 타인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노바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섬바디 ‘존재하는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Somebody

 

교실의 학생들 모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Somebody(썸바디)’로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요? 이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인류학자 김현경 박사의 책 ‘사람, 장소, 환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나라에 관광 온 외국인을 환대하거나, 일시적으로 방문 온 손님에게 하는 환대가 아니라 그 공간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 전하는 환대입니다.

 

교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구성원으로서 들어가고, 거기에서 서로 자유롭게 생각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할 수 없다면, 장소와 사람은 있으나 환대가 부족한 곳입니다. 사이버 공간이든 물리적인 교실이든 교사와 학생이 있고, 그사이에 진실한 환대가 존재할 때만 살아 움직입니다. 진실한 환대는 그 존재에 대한 인정,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이 갖추어질 때 만들어집니다.

 

‘고마워교실’의 ‘고마워’는 어떤 조건이나 보상에 대한 고마움이 아닙니다. 학생이 존재함에 대한 고마움, 친구가 존재함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말입니다.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존재 그 자체로서의 ‘고마움’을 알 때 모든 학생이 썸바디로서 존재감, 평온함, 자긍심, 행복감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양경윤 경남 전안초 수석교사, ‘고마워교실’ 저자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