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체험학습은 학교 앞 공원으로 가겠습니다”

2024.07.04 10:00:00

 

수학여행을 떠나는 서울행 전세버스 안은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수다로 가득합니다. 출발 전날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설렘은 새벽같이 학교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에서도, 한껏 차려입은 빳빳한 새 옷에서도 느껴집니다. 초등학교에서 제일 고학년인 6학년 정도 되면 학교를 따라오는 학부모들이 거의 없지만, 이날만큼은 무사히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녀를 배웅하러 삼삼오오 모인 부모들이 떠나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는 동안 담임교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최근에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여러 건의 교통사고, 전세버스 주차사고로 학생을 잃고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강원도의 선생님들. 불행한 여러 가지 사고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혹시나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풀지나 않았을지, 전세버스가 무리하게 앞지르기하는 다른 차와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에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지만,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01 _ 엉망진창, 좌충우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생긴 일
“내릴 때 좌우를 살피고, 우측으로 밀착하세요.”
한참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 내리기 한참 전부터 반복된 잔소리를 다시 시작합니다. 교사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학생들은 주위를 둘러보기 바쁩니다. 열기를 뿜는 고속버스 사이에서 한 명이라도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알 리 없겠지요. 스물다섯 명의 학생이 비좁은 전세버스들 사이로 빼곡히 줄지어 가는데, 하필 떨어뜨린 기념품 장난감은 왜 버스 밑으로 굴러 들어가는지…. “김수영(가명)! 조심해!” 작은 공을 줍는다고 기습적으로 버스 아래로 몸을 비집어 넣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갑니다. 

 

겨우 공을 주워주고 나니 한 여학생이 울먹이며 다가옵니다. “선생님, 핸드폰이 안 보여요.” 예정되었던 출발 시각이 다 되어갔기에 버스기사님께 늦을 수도 있지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신신당부한 뒤 분실물 센터를 향해 뛰어갑니다. 


맞은편에서 버스 탑승 시각에 늦었다고 먹다 만 떡볶이를 들고 두 학생이 달려옵니다. 흔들리던 떡볶이 국물은 원심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옆 친구에게 날아갔고, 멈춰 서서 떡볶이 국물을 닦는 두 학생 앞에 쌩쌩 달리던 차가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며 급정거를 합니다. 핸드폰을 찾으러 가는 길이 급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두 학생에게 달려가 괜찮은지 살펴보고, 버스 정차 위치를 알려주면서 조심해서 가라고 주의를 줍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학생들을 챙기는 게 저뿐만은 아니었겠지요. 휴게소 이용 안전수칙을 수십 번 알려 줬지만, 학교 밖을 나와 신난 학생들에게 안전수칙이 생각날 리가 없습니다. 휴게소 이용 안전수칙뿐인가요.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시설의 예절과 안전, 교통안전, 다양하게 예상되는 각종 문제상황에 대한 안전교육을 수학여행 출발 전부터 수도 없이 교육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체험학습을 나오면 새로운 환경에 시선을 뺏겨 버리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이럴 때 머리카락이라도 뽑아 쓸 수 있는 분신술을 배워놓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교육대학교에서는 왜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은 걸까요.
 
#02 _ 아이들에겐 놀이동산, 교사들에겐 걱정동산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체험학습은 놀이동산이지만, 교사에게 가장 걱정되는 장소 또한 놀이동산입니다. 놀이기구 취향이 맞거나, 원래 친했던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주고 자유체험을 하게 됩니다. 반마다 대여섯 개씩의 소그룹이 생기는데, 교사가 다 보살필 수가 없으니 시간마다 인증샷을 찍어서 전송하라고 말해둡니다. 시간마다 날아오는 아이들의 사진에는 웃음과 장난기가 묻어납니다.

 

흐뭇하게 감상만 하기도 잠시, 사진이 오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곧장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확인합니다. 이렇게 넓은 놀이동산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을 어찌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혹시라도 사고가 난다면, 담임교사인 저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부디 안전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놀이동산을 종으로 횡으로 다니며 만나는 학생들의 표정과 안전을 확인합니다.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않았지만, 마치는 시간쯤 되면 몸이 녹초가 될 수밖에요. 


이런 과정을 2박 3일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부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며 겨우 마음을 놓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요. 저녁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임에도 전세버스가 내리는 곳에서는 자녀의 귀가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마지막 한 명의 학생까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에게는 여행이 아닌 2박 3일의 업무가 끝난 셈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밤새 불침번을 선 탓에 피로가 몰려들어 쓰러지듯 잠을 청합니다. 불안과 걱정을 떨치고 누워있으니 지난 3일간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가 새삼 느껴졌습니다. 
 
#03 _ 기진맥진 체험활동 후 날아오는 ‘민원’ 문자 
“선생님 수학여행 때 우리 아이가 휴게소에서 차에 치일 뻔했다던데, 그때 뭐하고 계셨나요?”
다음날, 수학여행 기행문 쓰기 수업을 준비하던 중 학부모님의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 너머 날 선 학부모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아찔했던 순간 아이를 가장 걱정했던 것은 담임교사인 저였는데, 제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떡볶이 맛을 음미하느라 안전수칙을 잊어버린 학생의 탓일까요? 휴게소에서 화장실만 다녀오고 다른 것은 절대 하지 말라고 두 번, 세 번 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라며 열심히 가르치고 가르쳤는데 비난하는 듯한 문자 한 통에 의욕을 잃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의 최선이, 최선이 아니었다면, 과연 무엇이 최선이었을까요? 수많은 생각 끝에 자책하는 마음으로 학부모께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합니다. 저의 변명 아닌 변명 끝에 결국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이 나오고서야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아이들한테 더 신경 써 주세요”라며 마뜩잖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습니다. 

 

띠링, 문자 소리에 또 다른 민원일까 싶어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2박 3일간의 일정 속에서 학생 이름을 크게 부르고 주의를 준 것, 위험해 보여서 학생 손목을 잡았던 것 등, 혹시나 트집 잡힐만한 행동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수학여행에서 버스 밑으로 들어간 인형을 주우려 했다는데 왜 혼을 내셨나요? 우리 아이가 선생님이 무서워서 학교 가기 싫다고 하네요.”, “다른 반 아이들도 있는데 우리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치셔서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민원이 들어온다면 자존심이 상하지만 우선 학부모께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실제로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게 되면 아동학대를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들어왔습니다. 경찰서·법원 등에 정당한 생활지도였다는 것을 증명하며,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백분율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 우리나라의 경제체제의 특징, 논설문 쓰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사과만 하면 되는데, 왜 이리 슬픈 마음이 드는 건지. 소진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내일 있을 국어수업에 사용할 자료를 만듭니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며 기도하는 수밖에
세상에는 위험천만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좁은 횡단보도에 일반 시민과 엉켜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짧은 시간 안에 건너편 도로로 이동하는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를 돌아보다 발을 헛디디는 것, 주차하는 버스 뒤로 지나가는 것, 공사 중인 인도를 피해 아슬아슬 도로 옆을 지나가는 것. 그러한 위험들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적당한 체험학습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사가 모든 사고를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사고를 예방하고자 학생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가르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안전교육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에게 꾸중을 할 수도, 친구와 심한 몸 장난을 치며 산만하게 행동하는 학생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줄 수도, 친구를 때린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교육활동이 아동학대 고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임교사 한 명이 인솔하기에 버거운 많은 수의 학생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떠나며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밖에요. 교사도 바라지 않던 불의의 사고가 생기면,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도 서게 됩니다.

 

긴 생각의 끝에 목에 맨 공무원증을 매만지며, 내년도의 체험학습은 학교 앞 작은 공원에서 하자고 계획서를 작성합니다. 사랑하는 학생들을 계속 만나며 교단에 서기 위해 저는 다음 체험학습을 학교 앞 공원으로 가겠습니다.

차유라 부산 화명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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