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역사] 한여름 무더위 식혀줄 창덕궁 후원

2024.08.05 09:00:00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찾는 계곡이나 바다만큼 시원한 곳이 바로 창덕궁 후원이다. 이곳에는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 연못이 있어 무더위를 식혀줄 청량감이 있다. 

 

 

조선의 제2궁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상징적인 정궁이라면, 창덕궁은 많은 임금이 생활했던 제2궁이다. 정종이 개경으로 천도했으나, 태종이 즉위해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창덕궁을 지었다. 태종은 궁궐 건물들을 지은 후 후원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과 창덕궁 등이 불타자, 광해군은 경복궁 자리가 불길하다고 하여 창덕궁을 정비하고 정궁으로 사용했다. 인조반정 때 불탔으나 인조 25년(1647)에 다시 복원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까지 270여 년간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됐다.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敦化門)이다. 다른 궁궐의 문이 삼문(三門)인 것에 비해, 돈화문은 오문(五門)이다. 태종이 명나라 황제가 사는 궁궐인 자금성에서나 볼 수 있는 오문을 만든 것은 자주 국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삼문만 사용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문 앞에 월대를 쌓고 2층으로 된 문을 궁궐보다 높게 만들어 위엄을 나타낸다. 그러나 순종이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월대를 철거했다가 돈화문로를 포장하면서 복원했다. 가운데 문 앞에는 어도로 이용하기 위해 난간이 놓여 있다.
 

돈화문은 2층 집으로, 지금은 볼 수 없지만 2층 마루에 종이 매달려 있어 12지간의 시각을 백성들에게 알려주거나, 위급 시에 종을 치기도 했다. 실제로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훈련대장 이홍립은 반정군과 내통하고 종을 울리지 않아 결국 광해군이 쫓겨나고 조카인 능양군이 인조로 즉위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경복궁의 박석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창덕궁의 박석은 경복궁처럼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박석 사이로 흐르는 물이 아름답다. 품계석 사이에는 임금이 드나드는 어도가 박석보다 높게 나 있다.
 

박석 사이로 난 잔디는 품계석 뒤로 서 있던 관리들에게는 아주 좋은 쉼터이다. 왜냐하면 뜨거운 햇볕과 돌, 거기에 검은색 가죽신은 발을 더욱 따갑게 했다. 박석 사이의 잔디는 발의 따가움을 해소하는 청량제라고나 할까?

 

 

휴식의 공간인 후원

 

창덕궁 후원은 일제에 의해 비원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후원이라는 명칭 이외에 궁궐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원’, ‘금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와 같은 모습의 후원은 조선 16대 인조 때에 형성됐다. 이후 숙종, 영조, 정조를 거치며 후원은 계속 개보수됐다.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있고, 자연과 조화로움이 뛰어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창덕궁 후원은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산책하고 사색하며 노닐던 곳이다. 이곳은 인공적인 정교함이 깃든 다른 나라 정원과는 달리 자연미가 돋보인다. 물이 고여 있으면 연못을 만들고, 자연과 어울릴만한 장소에는 정자를 세웠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창덕궁 후원의 시작은 부용지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우주관에 의해 조성됐다.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한다.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으로 지붕이 돌출된 독특한 모양새이며, 맞은편에는 정조가 학문연구기관으로 쓴 규장각이 있었던 주합루가 있다.
 

부용지를 지나면 통돌을 깎아 만든 불로문(不老門)이 있다. 불로문은 통돌을 깎아 가운데가 빈 사각형 모양이다. 늙지 않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특히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의 소망을 불로문으로 나타낸 것이니, 장수하고 싶은 마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동일한 것 같다.
 

불로문을 지나니 정사각형 모양의 연못인 애련정이, 애련정을 지나니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바로 연경당이다. 순조 때 효명세자(추존 문조)가 아버지를 위해 당시의 양반집과 똑같이 지었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순조는 이곳에서 양반의 평복을 입고 음식도 일반인처럼 만들어 먹으면서 왕이 아닌 일반인의 생활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연경당을 지나면 존덕정(尊德亭)이 있다. 학문을 숭상한 임금인 정조는 존덕정을 자주 들렀다. 존덕정은 겹지붕에, 겹기둥으로 만들어져 있다. 즉, 본 건물을 세우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서 지붕이 두 개이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서 이채롭다.(사진에서 보면 안 기둥은 한 개의 큰 기둥으로 되어있고 바깥 기둥은 가는 세 기둥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청나라의 양식으로 생각되며 건물에 위압감이 들 정도로 무게가 느껴진다. 이곳에는 정조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는 ‘세상의 모든 시냇물을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이라는 호(號:사람이 본이름이나 자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를 현판으로 걸어 스스로 지어 부르고, 그 서문을 새겨 이 존덕정에 걸어 놓게 한 것이다. 

‘뭇 개울들은 달을 받아 빛나지만 달은 오직 하나이다. 짐은 바로 그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하다.’

 

정조는 자신을 반대하는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친위대인 장용영의 위용을 뽐내며 신하들에게 강력한 충성을 요구했다. 1798년에 정조는 존덕정에 자신의 위상을 밝히는 ‘만천에 비치는 밝은 달’이 자신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은 것이다.
 

존덕정을 지나면 한반도 모양의 연못인 반도지에 관람정이 있다. 관람정은 창덕궁의 후원에서 가장 잘 정돈된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관람정이나 반도지에 관한 기록은 1903년 이전에는 없으므로 그 이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관람정’의 이름처럼 이곳에서 보이는 연못의 모습은 아름답다. 관람정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선자정(扇子亭), 바로 부채꼴 모양이다. 반도지 쪽으로 기둥이 4개가 있고, 현관 쪽으로 기둥이 2개 있어 부채를 쫙 편 모양이다. 이러한 형태는 관람정이 연못에 떠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 반도지를 거꾸로 된 한반도라고 하지만, 임금의 동선인 존덕정에서 바라보면 바로 된 한반도이다.
 

창덕궁 후원은 계절과 관계없이 방문해도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는 곳이다. 무더위에 시원한 바람과 풍광이 있는 창덕궁 후원을 방문하심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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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보기) 조상들의 더위를 나는 법

 

우리 조상들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24년 63세 때 고상하면서도 우아하게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시로 쓴 ‘소서팔사(消暑八事)’를 실천하였다. ‘소서팔사’란 선비의 지혜로 더위를 잠시 잊자는 ‘망서(忘暑)’를 말한다. 
 

第一事, ‘松壇弧矢(송단호시)’

첫 번째가 ‘솔밭 둑에서 활쏘기’

​第二事, ‘槐陰鞦韆(괴음추천)’

두 번째가 ‘느티나무(회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第參事, ‘虛閣投壺(허각투호)’

세 번째가 ‘텅빈 정자에서 투호놀이하기’

第四事, ‘淸簟奕棊(청점혁기)’

네 번째가 ‘서늘한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第五事, ‘西池賞荷(서지상하)’

다섯 번째가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第六事, ‘東林聽蟬(동림청선)’

여섯 번째가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듣기’

​第七事, ‘雨日射韻(우일사운)’

일곱 번째가 ‘비오는 날 한시짓기’

​第八事, ‘月夜濯足(월야탁족)’

여덟 번째가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민병덕 매헌윤봉길기념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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