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스클레피오스, 라오콘, 그리고 아폴론

2024.08.06 10:00:00

 

땅꾼자리: 뱀을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목동자리(Bootes)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알려진 무척 오래된 별자리로, 헤라클레스와 처녀자리 사이에 있다. 길쭉한 큰 연 모양의 별자리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아이스크림콘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2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저술한 <알마게스트(Almagest)>에 나오는 48개 별자리 중 하나이며, 국제천문연맹(IAU)이 정한 88개 별자리 중 열세 번째로 큰 별자리다. 목동자리는 봄부터 여름까지 밤하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BC 3000년경 이미 천체관측용 건축물을 갖추고 있었고, 수학의 발달로 복잡하고 세밀한 계산이 가능했던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천구 위의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따라 12궁을 만들었다. 춘분점을 기점으로 태양이 그리는 황도를 30도씩 12등분하여 12별자리의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 바빌로니아의 황도 12궁이 고대 그리스에 전승되어 그리스신화와 결합되었고, 마침내 서양의 고대 별자리인 황도 12궁(Zodiac)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별자리들이 차지하는 실제 공간이 정확히 30도씩이 아니기 때문에 12등분이 아니라 13등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찍이 바이킹이나 켈트족은 13궁으로 나누었다. 13궁으로 볼 경우, 황도대에 위치하고 있는 땅꾼자리가 황도 13궁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된다.


라살하그(Rasalhague)는 이 별자리의 알파별로, ‘뱀을 가진 자의 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태양보다 25배 더 밝은 별이며, 땅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지구에서 약 48.6광년 떨어져 있는 쌍성으로 땅꾼의 머리 부분이다. 


땅꾼자리는 ‘작은 유령 성운(Little Ghost Nebula)’, 암흑 성운 ‘버나드 68(Barnard 68)’, ‘파이프 성운(Pipe Nebula)’ 등 유명한 심해 천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유령 성운’으로 알려진 NGC 6369는 희미하게 죽어가는 별을 작고 유령 같은 구름이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파이프 성운은 성운의 어두운 부분이 마치 담배 파이프같이 생겼다 하여 파이프 성운이라고 불린다.

 

땅꾼자리에 얽힌 환상적인 신화들
이 별자리는 여러 가지 신화와 연관돼 있다. 첫째,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별자리라는 것이다. 오피우쿠스는 ‘뱀’과 ‘지니다’라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혼합된 명칭이다. 따라서 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별자리 신화에서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뱀이 칭칭 감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과 그의 아름다운 연인 코로니스의 아들이다. 어느 날 아폴론의 까마귀는 테살리아 공주 코로니스가 한 젊은이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일러바쳤다. 화가 난 아폴론은 활과 화살을 집어 들고 그들을 쏘아 죽였다.

 

코로니스는 슬퍼하면서 뱃속에 든 아폴론의 아기에 대해 고백했고, 아폴론은 뒤늦게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다. 그는 자신의 화를 못 이겨 애꿎은 까마귀에게 분풀이를 했으니, 새의 흰 깃털을 태워 영원히 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까마귀는 검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코로니스의 자궁에서 꺼내 현인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케이론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그에게서 의술도 배웠다. 이 전설의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가 뱀이 죽어가는 다른 뱀에게 약초를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불사의 비책을 터득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자신의 치유 기술을 점점 더욱 다듬고 발전시켜 마침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살리면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렸기 때문에, 아스클레피오스는 이 기술을 비밀로 간직하고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우연히 테세우스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아들 히폴리토스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를 되살리고 만다. 테세우스의 아내이자 히폴리토스의 젊은 계모인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고 유혹하려고 했다. 히폴리토스가 그녀를 거부하자 파이드라는 남편에게 그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무고한 후 자결해 버렸다.

 

히폴리토스는 아버지의 질책을 받고 전차를 몰고 해변을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바다 괴물을 본 말이 놀라는 바람에 전차에서 떨어져 죽었던 것이다. 그는 히폴리토스 외에도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되살렸다. 이에 분노한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는 제우스에게 탄원했고,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로 전 인류가 불사신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번개를 던져 그를 죽였다. 그래도 그의 의술만은 높이 평가하여,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 이제 아스클레피오스는 치유의 신이 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를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 즉 병을 고치는 의술의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고대 지중해 전역의 신전에서 숭배를 받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일반적으로 턱수염과 길고 곱슬머리를 한 자비로운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가 아픈 사람들의 꿈에 나와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가 지니고 다닌 뱀이 감긴 지팡이는 의학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히게이아(Hygeia)와 파나케이아(Panacea)이라는 두 딸이 있었다. 히게이아는 ‘위생(hygiene)’의 어원이기도 하다. 히게이아는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여신이다. 히게이아는 뱀과 잔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신은 왼손으로 레테(Lete: 망각의 강)의 물컵을 들고, 오른팔에 황금 뱀을 감고 있다.

 

뱀은 레테의 망각의 물을 마시고 새롭게 부활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잠든 사이, 히게이아가 찾아와 약초 달인 물을 그 잔에 담아 마시게 부어주며, 뱀은 건강한 기운을 뿜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준다고 믿었다. 뱀과 잔이 있는 이미지는 요즘도 의약 관련 기관의 로고로 많이 쓰이고 있다. 파나케이아 역시 ‘치료의 여신’이다. 그리스어로 ‘모든 병을 치료한다’, 혹은 만병통치약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와 그의 딸들은 오랫동안 의술의 수호성인이었다. 


한편 땅꾼자리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Laocoön)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트로이전쟁 당시 라오콘은 그리스군이 남기고 간 목마를 트로이 성안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자 그리스군의 편에 서 있던 포세이돈이 격노해 큰 바다뱀인 피톤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죽였다는 신화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아폴론과 델포이의 비단뱀 격투 설화다. 피톤(Python)은 그리스신화에서 그리스 델포이의 신전을 지배했던 왕뱀이다. 피톤은 대홍수가 끝난 후 진흙으로부터 기어 나온 검은색의 거대한 독사였다. 그는 대지의 모신인 가이아가 아비 없이 낳은 자식이었다. 가이아는 피톤에게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델포이 신전을 물려주고 신탁을 내리도록 허락했다.

 

피톤은 평소에는 땅속 깊이 몸을 숨기고 있다가 신관들이 기도나 공물을 바치면 기어 나와 신탁을 내렸다. 그러나 피톤은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에 의해 생명을 빼앗긴다. 아폴론은 태어나자마자 활과 화살을 가지고 신전으로 가서 단번에 왕뱀을 처치하고 델포이의 주인이 된다. 피톤은 껍질이 벗겨지고 불태워졌으며, 그 재는 세계의 중심을 가리키는 돌 옴파로스 밑에 묻혔다.


아폴론은 델포이 신전의 여사제들을 통해 신탁을 내렸다. 그들은 피톤의 이름에서 딴 피티아(Pythia)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피티아는 사원 지하 땅의 갈라진 틈새에서 나오는 달콤한 냄새의 연기를 흡입한 후 환각 상태에서 예언했다고 한다.

 

 

당시 델포이는 영적·문화적·경제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중심이었다. 각지에서 몰려온 왕과 귀족, 서민들이 무녀에게 사랑과 직업, 출산과 자손 등 개인사에서부터 전쟁, 국가의 번영과 몰락, 공공정책에 이르는 모든 것을 상담했고 그녀의 예언을 들었다. 피티아는 한낱 점쟁이가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고대 그리스의 권위 있는 공식 직책이었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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