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교장 백승환)가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 한국은 물론 일본 사회 또한 들썩이는 분위기다. 이는 아사히신문이 호외를 발행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1947년 자발적으로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인 교토국제고의 기적적인 승전보에 윤석열 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교토국제고는 23일 효고현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여름 고시엔 본선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에 연장 접전 끝에 2-1로 이겼다. 고시엔 구장은 한신 타이거즈 구장으로 일본 고교야구팀 3441개 팀 가운데 49개 각 현 대표님이 출전, 모두가 한 번 등판하기 원하는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로써 교토국제고는 개교 이래 첫 우승이자 교토부 대표로는 6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여 지역의 관심을 받았으며, 한신고시엔구장 건설 100주년에 열린 대회에서 얻은 우승이라 의미가 더 남달랐다.
이에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자 현지 마이니치,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은 이 학교가 야구부 창설 25년 만에 전국 정상에 서기까지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교토국제고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직면했던 1999년 야구부를 만들어 일본 국제학교 중에는 처음으로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했다. 당시는 학교 명칭이 '교토한국학원'이었다.
교토국제고는 야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부원 12명으로 출발, 그해 여름 지역대회에 출전했다가 전년 여름 고시엔에서 본선 결승까지 올랐던 강호 교토 세이쇼고교에 0-34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필자는 1993년 처음 민족교육을 위해 일본에 파견되어 재일동포들의 교육현장에서 한일관계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23일 10시부터 NHK 방송을 시청하였다.
이날 경기에서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승리 직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 됐다. 일본 전역에서 응원에 참가한 교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이 아닌 일본 땅에서 한국어 교가를 불렀고, 이를 듣는다는 것은 가슴이 떨리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는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토국제고는 앞서 2021년 처음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해 4강에 올랐으나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22년 여름 고시엔에도 본선에 나갔으나 1차전에서 석패했고, 지난해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교토국제학원이 운영하는 교토국제고는 중·고교생을 모두 합해 학생 수가 160명 가량인 소규모 한국계 학교다.
1958년 한국정부 인가를 받고, 이후 2003년 일본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으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재적 학생의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30%가량이다.
박경수 전 교장은 4강 진출의 감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며, 올해 초 교토국제고 교장에서 퇴임하면서 "5~10년 안에 야구부가 일본 정상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빨리 결승 기회를 얻어낼 줄은 몰랐다”라며 , "야구부가 살아야 학교가 산다"는 신념으로 학교를 경영 신조로 삼았었다.
교육부 공무원 출신인 박 전 교장은 정년을 앞둔 2017년 교토국제고 교장에 취임했다. 과거 주(駐)오사카 총영사관 근무 때 교토국제고 이사회 등 관계자들을 만났던 인연이 학교장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야구부가 살아야 학교가 살아난다’며, 야구부 숙소 화장실·목욕탕부터 벽지 하나까지 새로 교체했다. 빠듯한 학교 예산을 쪼개서 배트·글러브 등 훈련 장비도 넉넉히 마련했다.
당시 학생 수가 70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적어서, 일본에서 인기인 고교 야구를 잘 하면 학생 모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1999년 만들어진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결국 2021년 사상 첫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입성 및 4강 진출이란 ‘기적’을 썼고, 올해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하였는데 그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나 박 교장은 겸손하게 2008년부터 함께한 고마키 노리츠구(41) 감독에게 돌렸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학생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이 가운데 한국어 교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처음 대회에 나갔을 때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일본인 코치, 감독이 "응원가를 만들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경수 전 교장은 "교가는 건들면 안 된다"는 의지를 표했다.
혐한을 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어 교가를 지키낸 것은 다름아닌 학생들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 교가 그대로 나가자는 학생들의 의견에 학교장도 동의, 결정함으로 한국어 교가 논란은 잦아 들었다. 교토국제고가 6번째 고시엔대회에 나가자 응원해 주는 팀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교토국제고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선 가장 먼저 교가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이를 외우고 평소 교정에서도 부르길 즐긴다고 한다. 박 전 교장은 “야구부원들은 훈련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마다 (교가를) 흥얼거린다”고 학교 분위기를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