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게자리(Cancer) 

2024.11.06 10:00:00

히드라와 원팀이 되어 헤라클레스에 대항한 거대한 괴물게 
게자리는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에 속했고, 현대 천문학에서 정립한 88개 별자리에도 포함된다. 황도 12궁의 넷째 자리로 거해궁이라고도 하며, 늦겨울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황도 12궁 별자리들은 대부분 밝은 별들을 갖고 있지만, 네 번째 별자리인 게자리와 열두 번째 물고기자리는 어두운 별들로만 구성돼 있다. 특히 게자리는 밝고 화려한 별들이 많은 겨울 별자리 속에 있어 더욱 초라하게 빛난다.

 

가장 밝은 별이 4등성으로 황도 12궁 중에서 제일 어둡기 때문에 동서양 문화권 모두 불길한 별자리로 취급했다. 동양에서는 무덤이라는 뜻의 ‘귀수’ 혹은 상여라는 의미의 ‘여귀’라고 일컬었으며, 서양에서는 ‘암’을 뜻하는 ‘캔서(Cancer)’라고 부른다. 암세포가 게 다리같이 생긴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점성술에서 게자리는 지하세계의 입구를 상징하여 불행과 어둠의 동의어로 불리기도 했다. 게자리는 바다뱀자리인 히드라 옆에 있는데, 이는 그리스신화에서 게가 히드라의 은신처 옆 지하세상의 문을 지키는 것과도 일치한다. 


게자리는 어둡고 음침한 별자리지만, 밤하늘에서 아주 유명한 프레세페성단(Praesepe Cluster)이 있다. 이 성단은 벌집성단(Beehive Cluster)이라고도 불리며, 게자리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지구에서 약 590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성단은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산개성단 중 하나다. 면적은 보름달 크기의 3배 정도로, 게자리가 하늘 높이 있을 때 관찰할 수 있다.

 

갈릴레오가 1609년에 망원경으로 관찰한 최초의 천체 중 하나였는데, 그는 이 성단에서 40개의 별을 발견했다. 황소자리의 플레이아데스성단(Pleiades Cluster)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이 성단은 별들이 촘촘히 모여 있어 갈릴레오는 벌집성단이라고 이름 붙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 성단을 마차를 타고 있는 유령이나 악마로 상상하기도 했다. 


또한 게자리에는 산개성단 M67(Messier 67)도 있다. 우리은하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산개성단 중 하나이며, 그 나이는 약 40억 년으로 추정된다. M67은 게자리의 남쪽 발톱 부분에 있는 별무리와 그를 둘러싼 성운으로, 약 500개의 별이 있는 풍부한 성단이다.

 

헤라의 저주
이탈리아 고대 도시 파에스툼에서 발견된 도자기에 그려진 <아들을 죽이는 헤라클레스> 그림은 현재 마드리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중앙에 광기에 빠진 헤라클레스가 아들들을 죽이는 장면이, 오른쪽에서는 그의 아내 메가라가 공포에 질려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뒷배경에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인 알크메네와 그의 조카 이올라오스가 등장한다. 왼쪽에는 광기를 상징하는 여신 마니아(Manía)가 있다.

 

 

메가라는 그리스신화에서 테베의 공주이자 헤라클레스의 첫 번째 아내이다. 테베왕은 외적을 몰아내고 테베를 방어해 준 헤라클레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의 딸 메가라와 결혼시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를 미워한 헤라가 그를 일시적인 광기에 휩싸이도록 만들었고, 제정신이 나간 헤라클레스는 자기 아이들을 화살로 쏘거나 불 속에 던져 죽였다. 


헤라는 왜 헤라클레스를 그토록 증오하고 저주했을까? 제우스가 알크메네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인 헤라클레스가 영웅적인 능력까지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보다 제우스의 혼외자식들 능력이나 됨됨이가 훨씬 뛰어났다. 헤파이스토스는 손재주는 뛰어났지만 다리가 불편한 추남이었고, 전쟁의 신 아레스는 불같이 성급한 성격으로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제우스와 인간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헤라클레스는 힘이 세고 용맹했으며, 레토 여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폴론 역시 팔방미인형 ‘엄친아’였고, 메티스 여신의 딸인 전쟁의 신 아테나는 아레스와는 달리 지혜가 있었다. 


헤라는 헤라클레스의 양어머니이며, 비록 헤라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헤라클레스는 그녀의 젖도 먹고 자랐다. 제우스는 헤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아기의 이름도 ‘헤라의 영광’을 뜻하는 헤라클레스라고 지었고, 헤라클레스 역시 헤라를 신으로 모시며 공경했다. 어쨌든 헤라와 헤라클레스는 모자지간인 것이다. 헤라와 헤라클레스, 둘의 관계는 참으로 미묘한 셈이다.


어머니인 헤라가 아들인 헤라클레스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고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점에서, 헤라는 ‘어머니는 어머니이되 파괴적인 어머니’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어머니는 자녀를 양육하고 보살피는 따뜻하고 자애로운 존재이지만, 모든 어머니가 숭고한 모성을 가진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신화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자녀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 하고 통제하는 어머니, 자녀를 질식시키고 파괴하는 끔찍한 어머니들이 있지 않은가. 


히드라를 물리치는 헤라클레스
자기 아이들을 죽이는 비극을 겪은 헤라클레스는 자책감과 절망에 빠진다. 델포이 신전에서 죄를 씻는 방법에 대해 신탁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스 왕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에우리스테스의 명을 받아 12가지 과업을 해결해야만 했는데, 그 두 번째 임무가 히드라를 죽이는 것이었다.

 

이때 헤라는 히드라를 돕기 위해 히드라와 같은 늪지대에 사는 거대한 게 카르키노스(Carcinus)를 보내 헤라클레스의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을 집게발로 물어뜯게 했다. 표면상으로는 가족을 살해한 헤라클레스를 단죄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나, 사실 그를 미치게 한 것은 바로 헤라 자신이 아니던가. 발꿈치를 물린 헤라클레스는 격분하여 카르키노스의 한쪽 발을 짓밟아 부러뜨리고 죽여 버렸다. 헤라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죽은 충성스러운 게를 불쌍히 여겨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주었고, 다리 한쪽을 잃었기에 게자리 역시 다리가 한쪽밖에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은 그림의 주요 소재로 사용됐는데, 두 번째 과업인 히드라와 싸우는 장면 또한 자주 그려졌다. 헤라클레스는 물뱀 괴수 히드라와 30일 동안이나 사투를 벌였다. 16세기 네덜란드 판화가 코르넬리스 코르트(Cornelis Cort)는 이 장면을 동판화로 남겼는데, 헤라클레스는 계속 새로 돋는 히드라의 머리를 쉴 새 없이 자르는 한편, 왼쪽 발로 게를 밟아 죽이고 있다. 화면 한쪽에서는 이올라우스가 잘려진 히드라의 머리를 불로 지져 새 머리가 자라지 못하게 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17세기 에스파냐의 화가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의 그림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몽둥이를 들고 히드라를 내리치고 있다. 오른발로는 게를 밟아 죽이고 있다. 오른쪽 구석에 횃불을 든 사람은 이올라오스이다. 이올라오스는 헤라클레스의 조카이자 동반자로 그와 함께 수많은 모험을 하며 그를 돕는다. 


17세기 볼로냐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도 레니는 이상적인 고전주의 화풍으로 신화·종교 주제의 그림을 그린 당대의 거장이었다. 레니는 우아하고 이상적인 여성, 온화하고 섬세한 색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 등 라파엘로의 고전주의적 양식이었지만, 격렬한 구성과 극적인 명암대비를 특성으로 하는 카라바조의 바로크 회화도 연구하고 받아들였다.

 

그중 <레르네의 히드라를 죽이는 헤라클레스>는 만토바 공작 페르디난도 곤차가가 빌라 파보리타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네 점의 시리즈 중 하나다. 네 개의 그림은 네수스에 의한 데이아네이라의 납치, 장작더미 위에서 타죽는 헤라클레스 등 모두 헤라클라스가 주제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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