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두 가지 상반된 뉴스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습니다. 둘 다 AI에 대한 이야기인데 하나는 해외 미디어에 소개된 국내 뉴스, 다른 하나는 국내 미디어에 소개된 외국 뉴스입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을 ‘딥페이크 공화국’이라고 했습니다(2024.3.7.). 딥페이크는 AI의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영상물이나 이미지를 사실처럼 창조해 내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실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그 첨단 기술을 한국에서는 중·고등학생들마저 척척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랑스러워하고 자축할 일은 아니지요. 한국이 ‘딥페이크물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한겨레21, 2024.10.01.). ‘한국은 전 세계에 확산한 딥페이크 음란물의 약 절반을 공급하는 국가’라며 ‘한국의 딥페이크 음란물 사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짚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딥페이크 범죄 피의자의 80% 이상이 10대’라는 통계입니다(여성신문, 2024.10.8.). 즉 한국에서는 그 위력적인 AI 기술을 쉽게 배워서 못된 짓을 하는 후진 사람들이 많다는 참으로 창피한 뉴스입니다.
다른 뉴스는 ‘노벨상 휩쓰는 AI … 화학상에 ‘구글 딥마인드’ 주역들’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입니다(조선일보, 2024.10.9.). 외국 전문가들이 AI 특유의 거대한 정보량을 빠르게 처리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활용해 ‘2억 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우리만의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는 공로를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뒤진 것은 맞지만, 그나마 한국이 앞서간다는 컴퓨터와 정보화 분야에서마저 밀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하지만 더 큰 아픔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AI 기술을 생산하면서 인류에 혜택을 주는 일을 하고, 다른 누구는 AI 기술을 소비하면서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선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후진 일을 하는 후자라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고, 슬픔이 밀려오고, 화도 솟구칩니다.
타오르는 화에 기름을 붓는 기사가 동일 지면에 실렸습니다. 구글 주역들이 노벨상을 휩쓸었다는 뉴스와 삼성전자를 위기로 내건 요인을 분석한 기사가 한날에 나란히 게재되었습니다. ‘공대 기피, 교육질 저하, 인재 유출 20년간 누적 … 삼성 덮쳤다’라고 합니다(조선일보, 2014.10.9.).
맞습니다. 그 분석이 정확합니다. 딱 20년 전은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막 귀국한 시점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 공대 교수들은 미적분도 모르는 학생들이 공대에 입학하고 있다고 걱정하며, 저하되는 고등학교 교육 수준을 심하게 탓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 공대에는 구구단마저 계산기에 두드리는 학생도 있는데 미적분 모르는 게 그리 큰 문제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저는 구글이 설립된 시점에는 미국 공대에 교수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공대 기피는 이미 고질화된 문제였습니다. 특히 대학원은 외국 유학생이 없으면 운영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공대 인재 유출이 심해서 인재를 해외에서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얹어주면서 수입해야 했던 것입니다. 학부생들은 외국인 TA가 하는 영어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하고, 심지어 데모까지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구글은 세계 최고 첨단산업을 이루어냈고, 전 세계 대상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심지어 노벨상까지 받는 명예마저 얻었습니다. ‘공대 기피, 인재 유출, 교육질 저하’ 등 삼중고를 극복하고 ‘최고 기업, 최고 수익, 최고 명예’라는 삼관왕의 영광을 이루어냈습니다. 상황 탓하고 남 탓해서 이루어낸 성과가 아닙니다.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먼저 보는 혜안이 있었고, 그 무엇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도전정신이 있었으며, 그 과정을 즐기는 인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도 남 탓하지 맙시다. ‘공대 기피’는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탓하는 거고, ‘교육질 저하’는 교육기관을 탓하는 것이며, ‘인재 유출’은 사회적 인적자원 유통 시스템을 탓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남 탓해서 고쳐지는 거 본 적 있나요? 구글처럼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혁신(革新)이란 남 탓하고 남을 타도하는 혁명이 아니고, 낡은 관습을 버리는 혁구습(革舊習)과 자신을 새롭게 하는 지신(持身)의 앞뒤 글자 하나씩을 따온 개념으로 풀이합니다.
성공이 빛 좋은 개살구일 때가 있습니다.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만 하면 성공했다고 자부해도 되지만,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되어 있다면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근에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명문대 학생들에 대한 뉴스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교육목표는 명문대 입학이 아니던가요. 명문대에 합격하면 집안의 경사만이 아니라 모교와 동네에서도 현수막을 대문짝만하게 내걸 정도로 자랑하는 대성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명문대생이 300명씩이나 연합동아리를 구성해서 고급 호텔과 클럽을 돌면서 마약을 투약하고 집단 성관계도 했다고 합니다(YTN, 2024.8.12.). 공부 잘하고 인재로 인정받은 학생들이지만, 이들이 앞으로 무슨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세상에 기여하겠습니까.
그러니 공부 기피하고, 교육질이 낮고, 인재 유출에 절망을 보며, 그 대신 공부 잘하고, 진도 앞서가고, 인재끼리 모인 곳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빗나간 셈입니다. 교육의 목표가 달라져야 ‘딥페이크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고, 노벨상을 휩쓰는 ‘딥마인드 인재대국’이 될 것입니다.
아, 칼럼을 여기까지 쓰고 하루 밤 자고 나니, 이 모든 어두운 뉴스를 한방에 상쇄하는 속보를 접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것입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정신이 돋보였답니다. 한국에도 구글과 버금가는 딥마인드가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한강 키즈’들이 쏟아져 나올까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트라우마 후유증에 시달리며 장애를 앓는 현상을 PTSD(Disorder)라고 하지요. 트라우마 시련을 겪으면서 더 큰 존재로 성장하게 될 땐 PTSG(Growth)라고 합니다. 여태껏 우리 사회가 줄 이은 트라우마로 한없이 작아지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드디어 오늘부로 대한민국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딥마인드 인재대국’으로 성장했다고 공표해도 되겠습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었음 알려줍니다.
성장이 이번 한 차례에 멈추지 않고 모멘텀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교육의 방향을 제대로 세웁시다. 이제 교육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방법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입시에서 벗어나야 하고, 인성교육을 해야 하고,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하고, 꿈을 지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갖고 되겠어”하며 당장 급한 마음에 외면합니다. 하지만 20년 동안 서서히 멀어진 교육의 방향을 하루아침에 바로 잡는 마법 같은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그거마저 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요원할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서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방법을 제대로 실천해 봅시다. 성심껏 한다면 10년이면 변화가 보일 것입니다. 20년이면 인재대국이 될 것입니다. 내일 또 어떤 낭보를 접할지 마음이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