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오는 날이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가 집에 와서 그러는데요”하고 운을 떼는 순간 교사는 이미 직감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자기 입장으로 풀어 놓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학부모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을요. 교실에서는 분명히 두 아이의 말을 똑같이 들어 주었는데도 "선생님이 제 말은 안 들어 주셨어요”라는 한마디가 가정에 전해지면 상황은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합니다.
이런 일은 교실 풍경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학부모는 아이의 입을 통해 한 단계 건너서 듣습니다. 그러니 교사의 말이나 행동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막연하게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전한 짧은 한 문장이 학부모의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장면으로 부풀려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아이는 자기에게 불편했던 부분을 더 또렷이 기억하기 마련이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대화는 들어주기에서 시작
이때 교사는 곧바로 사실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아니에요, 저는 두 아이 말을 똑같이 들어 주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교사로서는 어떤 아이의 편도 들지 않았으니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학부모가 이때 전화한 것이 사실 여부를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편향된 상태에서 추궁하듯이 묻기 시작한다면 교사는‘어떤 말을 해도 안 듣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을 때 분하고 억울해서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이런 경우 이야기를 먼저 들어 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할 말을 정확하게 찾아서 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그렇게 말해서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겠어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이렇게 일부러 한 박자 늦추어 응답하는 식입니다. 학부모도 한층 차분해지고, 교사 역시 다음 말을 더 또렷하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한마디는 무작정 다독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다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후 객관적인 사실을 차분하게 풀어가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세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한마디로 마무리하지 않고 육하원칙에 따라 짚어 가야 합니다.
구체적‧객관적 설명 돼야
주변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진술했는지, 교사가 어떤 순서로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 두면 학부모도 자연스럽게 상황의 전체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추상적인 해명은 의심을 부르지만, 구체적인 장면은 대화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는 결국 학생을 잘 지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를 함께 의논하는 자리라는 것을 떠올리면 대화의 결이 달라집니다. "오늘 일은 이러이러했고요. 앞으로 지윤이가 친구들과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한 번 이야기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시선을 아이의 앞날로 옮겨 오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모든 학부모가 곧바로 마음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아이의 말을 더 믿고 싶어 합니다. 이때도 교사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대화는 결국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이자, 한 사람의 소중한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집에 가서 전한 한 마디는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 그날 아이가 느낀 감정의 한 조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조각을 손에 쥐고 달려오는 학부모에게 교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좋은 응답은 전체 그림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말 뒤편에 어떤 하루가 있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아 주는 것, 그 자리에 학부모를 초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화입니다.
김성효
전북 문창초 교감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