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적자생존’이라고 하면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게 된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은 번창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원리는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되어 주기도 한다.
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사회는 학교와 교사에게 그 필요를 증명하라 요구한다. 이에 점차 보육과 교육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학부모는 다양한 요구가 담긴 민원을 학교로 쏟아낸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학교와 교사는 어떻게 생존을 모색해야 할까. 교원들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이런 거창한 ‘적자생존’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야(기록해야) 생존한다’라는 교원들의 농담에 관한 내용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교원들은 후배들에게 ‘방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은 기록하는 것’임을 말해주곤 한다. 이번 호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작성한 기록들이 실제 민원 대응과정에서, 수사·재판과 같은 법적인 절차에서 얼마나 신뢰성 있는 증거로 취급될 수 있을지,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좋을지 알아보자.
반복적으로 작성한 문서는 증거 가치가 높다
경찰·검찰의 수사를 받는다고 하면 대부분 취조실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따라 답변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이런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만들어진 신문조서는 재판에 제출되는데, 이렇게 경찰과 검찰이 작성한 조서조차 함부로 증거로 쓸 수 없다. 적법한 절차와 방식을 거쳐서 작성된 것이어야 하고,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해야 비로소 증거로 쓸 수 있는 것이다(「형사소송법」 제312조).
특정한 문서가 재판과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 중 하나가 ‘상업장부·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이다(「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 이러한 문서들은 일상적인 업무과정에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작성되며, 기재할 내용이 생겼을 경우 즉시 작성되기 때문에 허위 내용이 적힐 여지가 거의 없기에 증거로서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인정해 준다.
이는 학교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생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하며,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입력해야 한다. 학생의 생활과 지도방법, 특이사항 등을 그때그때 작성하고, 그 내용들이 보존된다면 이는 위와 같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에 해당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증거로서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공문서로 작성된 때에는 증거 가치가 높다
공문서를 위조하여 사용하려는 경우 공문서위조죄 등으로 처벌되며, 공무원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되어서 허위문서를 작성하여 사용하려고 한다면 허위공문서작성 등으로 처벌된다(「형법」 제225조 내지 제227조). 물론 사문서를 위조하는 때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지만, 공문서위조 등은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훨씬 무겁게 처벌한다.
이러한 차이를 둔 것은 공문서가 공무원에 의해 공적으로 작성된 문서인 만큼 사람들에게 높은 신뢰를 주는 문서이고, 그러한 신뢰를 깨는 행동에 대해서는 엄벌하여야 한다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 법에서도 공문서의 신뢰성을 존중하는 규정이 있다. 「민사소송법」에서는 문서의 작성방식과 취지에 의하여 공무원이 직무상 작성한 것으로 인정한 때에는 이를 진정한 공문서로 추정한다고 한다(「민사소송법」 제356조 제1항).
학교 역시 다수의 공문서가 작성되는 기관이고, 나이스라는 도구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교원 개인이 작성해서 보관하는 문서는 작성된 시점이 명확하지 않고, 추후 수정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그 신뢰성이 온전하지 않다. 그러나 공문서로서의 형식을 갖추고, 이에 대해 상급자의 결재를 받아둔다면 작성일이 명확하고, 수정할 수도 없는 내용이 되며, 학교의 기록물로서 보존된다. 따라서 그만큼 증거로서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관련 사례(서울북부지방법원 2013.4.26. 선고 2012가단6674 판결 참조)
위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면 교원의 기록은 그때그때 기계적으로 작성되거나 혹은 공문서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 사례에서는 어떻게 활용되었을지 살펴보자. 관련된 판례를 각색하여 준비해 보았다.
피해학생 V, 가해학생 A와 B는 중학생이다. 본래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A와 B는 점차 V에게 빵을 사 오라고 하는 등의 심부름을 시키는 등 권력적인 관계로 변질되었고, V를 때리는 등의 행동들을 하였다. 이에 V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어 다른 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피해학생 V는 가해학생 A·B의 가해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하였고, 학교와 교육청에게는 A·B의 가해행위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A·B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위 사례에서 법원은 여러 학생이 소수의 학생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따돌림과 같은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학교폭력에 비해서 학교가 보다 적극적인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안에서 학교의 사전적 조치와 사후적 조치가 적당하였는지를 검토했다. 학교의 조치에 대한 적절성 증거로 V에 대한 담임교사의 상담일지가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특히 판결문은 그 상담일지의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두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법원에서는 담임교사의 상담일지를 통해 해당 학생에 대한 지도가 이전부터 충실히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학교 차원에서의 대응 역시 학교폭력예방을 위하여 학생과 교사에 대한 교육을 다수 진행했던 점, 교내외 순찰 및 감시활동을 하였던 점, 캠페인활동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검토되었다.
또 해당 사건에 관해 학교폭력 관련 법령에 따라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관련 자료들도 제출되었다. 이러한 학교의 다양한 사전적·사후적 활동들은 공문 형식으로 보존되던 자료로 제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학교와 교육청은 해당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충분한 조치를 하였음을 주장하였고, 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던 사례이다.
상담일지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작성하면 좋을까
앞서 설명한 담임교사 상담일지의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작성된 날짜가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학기 초부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꾸준히 작성되었다. 또 문제상황만 작성된 것이 아니라 교사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담고 있으며, 간혹 그에 대한 교사의 감정이나 평가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작성할 내용의 분량도 요점만 확인되면 충분하므로 길게 작성할 필요가 없다.
작성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을 것이다. 해당 사례에서는 교사가 수기로 작성한 상담일지가 제출된 것으로 보이는데, 편의에 따라 태블릿을 이용하는 등 전자적 방식으로 기록해도 무관하다. 다만 전자적 방식은 작성과 보존이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수정이나 변조의 가능성도 높다는 특징은 있다. 가장 공식적인 방법을 추천하자면 나이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기재를 위한 ‘행동특성 누가기록’ 부분에 저장하는 방법이 좋아 보인다.
특별한 민원이 있다면 내부결재를 남겨 두는 것을 고려해 보자
특별한 문제행동을 보인 학생이 아니어서 학기 초부터 꾸준히 기록해 둔 내용이 없는 학생인데, 나중에야 상담과정에서 부적응이나 교우관계의 어려움을 듣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부적응은 가정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매우 복합적인 면이 있고, 교사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어렵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특히 이런 일들은 한번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반복적인 어려움을 호소할 가능성이 크고, 그때에는 학생지도를 방치했다는 등의 이유로 심각한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학급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적극적인 대응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문제를 인지하게 된 경위(부모님의 연락, 학생에 대한 관찰 결과 등), 문제의 내용(학교부적응, 교우관계 갈등 등), 해결을 위한 방법(갈등관계인 학생과 부모님과의 상담, 부적응 학생에 대한 추가상담 계획, 외부기관 연계 등)과 같은 내용들을 간략하게라도 정리하여 기안문을 만들고, 관련된 자료가 있다면 이를 첨부하여 학교에 보고하고, 내부결재를 받아둔다.
이렇게 한다면 학생지도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공문서 형식으로 남게 되고, 해당 어려움을 학교 내부에서 공유했으며, 관리자에게 보고하였다는 부분까지 확인되므로 향후 민원 등에 대한 대응에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