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사색의 습관, 격물치지(格物致知) 학습법

2024.12.30 13:29:10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이는 학생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이자 공통된 질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학습법이 세간에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과 개성이 각자 다르듯이 공부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 성인(聖人)들이나 천재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여기선 개략적이나마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공부와 사색의 조화, 전통적인 격물치지(格物致知) 학습법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당시 최고의 현자로 불리던 소크라테스는 일명 ‘산파술’의 교육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받고 순간에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그의 완전학습을 위한 교육 방식인 산파술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그게 무엇인가?(What?)”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는 선입견, 편견, 자기의 생각, 현재의 잘못된 앎을 검토하게 하면서 무지 자각, 즉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게 한다. 그런 후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생각의 각도를 조금씩 틀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균형적 사고, 구체적 사고,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고 연습하도록 하여 결국 ‘온전한 앎’에 다가갈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는 학습법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성군 세종대왕은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 중에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100번 넘게 읽었다고 전한다. 이른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의 전통적 공부법의 실천이다. 이는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연 경연에서 교재로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성군 정조대왕은 《대학연의》를 보충해 주석을 단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항상 책상 위에 놓고서 매년 1회 이상 통독을 했고 두 번 필사했다고 한다. 《대학연의》는 총 43권 12책으로 이중 절반 가까이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선의 두 성군의 두뇌는 격물치지를 통해서 단련되었다고 본다. 청나라의 위대한 황제인 강희제를 비롯한 중국의 황제들도 모두 이런 격물치지 비법으로 두뇌를 단련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격물치지란 무엇인가? 이는 동서양의 인문학 거두들이 공부한 학습법으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완전하게 앎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서 우주와 만물의 원리를 이성적으로 사색하고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원리와 상통한다. 실학자 정약용은 “격물치지 없는 독서는 백 번, 천 번 읽어도 전혀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독서 중에 의미를 깨닫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 뿌리를 알고, 그 글자가 쓰인 문장이 완벽하게 이해될 때까지 치열하게 연구하고 사색할 것을 권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할 수 있다. 격물치지 공부법은 고대 서양에서, 그리고 조선시대와 중국의 역대 황제 시절에만 통용되는 고전학습의 비법이 아니냐고 말이다. 결코 아니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일군 1등 공신인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 성공의 비결로 격물치지를 내세웠다. 그는 퇴임 시에 현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게 붓글씨로 쓴 격물치지 액자를 선물했고, 삼성전자의 전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삼성전자는 격물치지를 통해 혁신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이 된 LG그룹 구자경 전 회장도 입사 초년생들에게 “여러분에게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의 덕목을 당부합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지식이 쌓이고 여기에 남다른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해질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이 생깁니다”라고 당부했다.

 

역사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 문명의 부흥,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태동, 아인슈타인이 우주와 시공간의 이치를 파고들어 탄생시킨 상대성 이론, 라이프니츠를 이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이 수와 논리와 기계의 이치를 탐구하여 창조해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컴퓨터의 개념(원리)과 구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이 인터넷의 이치를 탐구하여 만들어 낸 구글 등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격물치지의 찬란한 증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초중등학교에서는 어떻게 격물치지 학습법을 체득하고 습관화함으로써 평생교육의 기초를 닦을 수 있을까? 공부도 무엇보다 사색을 기반으로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즉,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 어려서부터 이를 몸에 배도록 체질화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서 전통적인 격물치지 학습법에 다가설 수 있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이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이타적인 삶의 목표를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이 낳은 석학이자 세계은행 총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의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용 교수는 “세상을 향한 너의 꿈은 무엇인가?”를 외치며 어린 시절부터 의지를 키웠다고 한다.

 

둘째, 책을 읽고 치열하게 사색하도록 해야 한다. 《논어》에서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고 했다. 읽고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공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살아갈 지식의 기반을 쌓게 될 것이다.

 

셋째, 자기의 생각을 글로써 작성하여 토론하고 발표하며 결과물을 남기게 해야 한다. 지금은 ‘만인저작시대’라 불린다. 이로써 생각이 정리되고 현장에서 몸소 체험함으로써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해져 세상을 변화시킬 역량이 축적될 것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3단계를 거치면서 개인적인 성찰과 수양을 거쳐 자기 성장을 이루고 나아가 모든 우주 만물과 현상에 대하여 치열하게 탐구하고 사색함으로써 격물치지 학습법을 점차 완성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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