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의 교단춘추] AI·DT시대,  교사의 역량 및 역할에 대한 오해와 이해

2025.01.07 10:00:00

 

이 글은 한국교원교육학회 2024년 동계 연차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토론원고를 발전시킨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할 때 국가가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이어서 미래 교육을 위해 교사가 갖춰야 할 역량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차적인 역량을 추가로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AI·DT시대 학습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제3의 관점을 추가하고자 한다.

 

AI 및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교육의 변화
가. 사고력 약화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 필요
현행 디지털교과서는 학생이 요청하면 바로 답을 주는 접근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는 사고의 과정이 생략되거나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박남기, 2024). 비영리교육기관인 칸아카데미는 GPT-4 기반 AI 튜터인 ‘칸미고(Khanmigo)’를 출시했다. 칸미고는 즉문즉답을 내놓는 방식의 기존 챗GPT와 달리 학습을 돕는 교사나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GPT-4를 기반으로 보다 정교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수학문제에 대한 즉답을 요구하는 학생에게 칸미고는 스스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하면서 문제풀이 과정에 필요한 사고와 학습을 제안한다. 살 칸 CEO에 따르면 칸미고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주는 좋은 교사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한다(https://www.etnews.com/20230324000109). 우리의 디지털교과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있어야만 사고력 및 해결력 약화 우려를 줄여줄 것이다.


나. AI·DT ‘활용할 경우’의 교수법 예시 필요
교육학술정보원이 제시하고 있는 ‘AI 및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위한 교수·학습방법 예시’의 경우 ‘AI 및 디지털교과서 활용’이 목적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Technology를 사용하기 위한 교수자의 고민이 담긴 수업설계’도 유사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교수자는 새로운 기계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수업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교육)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이들을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부합하는 수업설계를 하는 것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표현을 ‘AI 및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할 경우의 교수·학습법 예시’라고 바꾸고 수업 진행 중에 다양한 기계(AI 및 디지털교과서 등)를 활용하고자 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교육적으로 더 바람직한 모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기계 활용 수업을 아날로그식 수업과 병행하려면 어떠한 부분을 더 고려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한다면 현실 적용 가능성과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 아날로그식 교육의 강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교수법 모델 제시 필요
교육학술정보원이 제시한 모델은 주로 디지털교과서 활용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디지털기기 활용 교수법 모델을 제시할 때, 가능하면 상당한 시간은 디지털기기 없이 생각하고 이를 글과 말로 표현하는 데 활용하도록 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결합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제시한 시범 수업모델과 동영상을 보면, 인공지능이라는 기계 사용에 초점을 맞춘 탓에 학생들 책상에 노트가 보이지 않는다.

 

손은 제2의 뇌라고 한다. 수업시간에는 기계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뇌를 적극 사용하는 연습, 손을 활용하도록 하는 방식, 학생이 오감을 직접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포함시키는 수업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디지털 기계만을 사용할 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제반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줄여줄 것이다. 이는 교사와 학부모의 기계 위주 수업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디지털교과서 활용도 제고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미래 교육을 위한 교사의 역량
AI·디지털 시대 교육을 위해 교원이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교육부는 ‘교실혁명을 위한 교원역량 체계’에서 기본·교육실천·발전 등의 3개 영역에 걸쳐 7개의 역량(기본-사람중심의 하이터치 하이테크교육; 교육실천-AIDT를 활용한 교육맥락분석, 수업·평가설계 및 자료 개발, 수업실행, 교육평가 성찰; 발전-전문성 개발)이 그것이다(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24: 28). 여러 연구자(박가영 외, 2023; 이동국 외, 2022; 허희옥 외, 2024)도 관련 역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AI 활용에 필요한 기초역량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에 제시된 역량 앞에 AI·디지털 활용이라는 수식어가 들어 있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AI·디지털 시대에 교사가 갖춰야 할 교육에 필요한 일차적 역량, 즉 디지털기기 기초역량 및 활용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존에 제시되고 있는 일차적 역량과 더불어 부차적인 역량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자료에는 아직까지 약 50%의 확률로 오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Kabir, Udo-Imeh, Kou, and Zhang, 2024). 물론 프로그래밍이라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LLM(거대언어모형)의 특성상 오류를 제거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수업 준비, 자료 제작, 연구, 학생 평가 등에 생성 AI를 널리 사용하게 될 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부차적 역량의 하나는 인내력과 집요한 검토역량이다. 


그 이외에도 활용자가 갖춰야 할 의존성과 중독성 통제 역량 등 부차적인 역량이 많다(박남기, 2024). 교사 대상 설문·면담 그리고 참여 관찰을 통해 교사 자신의 활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극복을 위해 필요한 역량, 학생 지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AI·디지털 시대 학습과정에서 교사의 역할
아시아교육협회(https://educomasia.org/htht/)에서는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의 기본모델’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AI 보조교사 ‘하이테크’는 학생이 효과적으로 지식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학습을 지원하는 한편, 교사는 ‘하이터치’ 학습을 통하여 적용·분석·평가·창조 등 고차원적 학습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연결을 통하여 학생의 사회적·정서적 역량을 키워줍니다.

 

이 기본모델에서 ‘하이터치’는 기계를 통한 지식교육을 바탕으로 교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고급역량 강화를 의미한다. 이 기본모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즉 학습의 토대 형성이다. 박남기(2017)는 <최고의 교수법>에서 아들러의 ‘삶의 틀’과 원동연의 ‘수용성 틀’을 토대로, 교사가 하는 하이터치의 의미를 고급역량 강화의 차원이 아니라, 기계가 할 수 없는 ‘학습 기본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들러는 삶의 틀(life style)을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한다. 첫째는 자기개념으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 둘째는 세계상으로 세상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 셋째는 자기이상으로 내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어떤 모습이 그것이다. 학생 교육과 ‘삶의 틀’ 관계는 곡식 기르기와 논밭 지력(地力)의 관계와 같다.

 

곡식을 심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밭의 지력을 튼실하게 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골라 심고, 최고의 농법으로 기른다고 하더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농부들은 곡식을 심기 전에 논밭에 퇴비를 주고, 쟁기질하는 등의 노력을 먼저 기울인다. 학생 교육과 관련해서도 좋은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다양한 교수법을 동원해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해도 삶의 틀이 깨져 있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그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들러가 삶의 틀을 강조하는 것처럼 원동연은 5가지 수용성 요소(틀)를 강조한다. 그가 밝힌 인간의 능력을 구성하고 있는 5가지 수용성 요소는 지력·심력·체력·자기관리능력·인간관계능력이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의 본질적 요소들을 골고루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수용성 틀’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카이스트, 2015: 210-211). 수용성 틀이란 학습과 성장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틀(요소)을 의미한다. 


AI·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학습과 관련해 교사의 핵심 역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갖춰야 할 학습의 토대를 형성해 주고, 그들이 기본 지식을 습득하도록 도우며, 이를 바탕으로 고급 역량을 길러주는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다만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교육을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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