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풍경] 사하라의 이슬을 찾아서, 색채의 나라 모로코를 걷다

2025.01.07 10:00:00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개론서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내다 문득 어느 날, 지형학 개론서에서 마주친 ‘사막에서도 밤에는 이슬이 내린다’라는 문구에 마음이 멈추었다. 건조한 사막에서도 기온 변화로 이슬이 내린다는 사실이 마치 먹구름 속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고, 그때부터 언젠가 반드시 사하라 사막 여행을 하리라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2020년 2월,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힘든 시기에 모로코로 향했다.

 

다채로운 색채만큼 매력적인 ‘붉은 도시’, 마라케시(Marrakech)

첫발을 디딘 곳은 모로코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마라케시였다. ‘신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붉은 벽돌 건물들로 가득해 ‘붉은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늦은 밤 도착한 제마 엘프나 광장은 야시장의 활기로 가득했다. 유명한 보드게임 ‘마라케시’의 양탄자들을 팔고 있는 상인들도 많이 보였다. 광장을 통과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마라케시 옛 시가지인 메디나 속 미로 같은 골목을 한 시간 넘게 헤매고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로코 호텔에서는 웰컴 티로 모로칸 티와 작은 다과를 제공한다. 골목을 헤매며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달달한 모로칸 티가 녹여주었다. 본토에서 처음 맛본 모로칸 티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마라케시에서는 특히 마조렐 정원이 인상적이었는데,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자크 마조렐이 조성하고 이브 생로랑이 사랑했다는 이곳은 코발트블루로 잘 알려진 ‘마조렐 블루’의 독특한 색감과 다양한 건조기후 식물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공간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 마조렐 블루 색상의 건물들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눈을 시원하게, 즐겁게 해 주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일몰과 일출을, 메르주가(Merzouga)
모로코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사하라 사막이었다. 마라케시에서 10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도착한 메르주가의 게스트하우스 ‘알리네집’은 한국에서도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알리 삼촌은 먼 길을 온 우리에게 따뜻한 모로칸 티와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다음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발끝까지 피부를 보호하는 젤라바를 입고 히잡을 터번처럼 둘러쓴 채 사막으로 향했다. 2m가 넘는 낙타에 올라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는데, 키가 큰 낙타의 등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먼저 낙타의 다리를 세게 쳐서 무릎을 굽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낙타를 타고 30분도 되지 않아 동서남북 모두 모래사막뿐인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특히 초승달 모양의 사구 ‘바르한’이 줄지어 있는 경관은 지리교사로서 가슴 뛰는 경관이었다. 구글 지도로 확인해 보니, 내가 보고 있는 이 경관이 사하라 사막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사하라 사막의 장대한 규모를 가히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를 사하라 사막으로 인도해 준, 베르베르족 가이드 핫산은 낙타 몰기, 베르베르족 전통음식 요리, 사진촬영까지 모든 면에서 능숙했다. 낙타를 타고 2시간여를 지나 도착한 사막 한가운데 천막에서 먹은 점심은 특별했다.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이 그토록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막 한 가운데서 화장실을 찾는 우리에게 핫산은 유쾌하게 웃으며 저 멀리 지평선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명이 전혀 없는 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모래썰매를 타기 위해 낙타에서 내려 바르한을 걸어 올랐다. 낙타 없이 큰 바르한에 직접 걸어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는데, 걸음마다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콘크리트 바닥을 걷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었다. 사구를 보다 수월하게 걷기 위해서는 사구의 능선, 즉 가장 뾰족하게 솟아 있는 부분을 따라 걸으면 된다. 사구에는 모래의 안식각을 따라 능선이 형성되는데, 이 능선 부분은 상대적으로 단단하여 다른 부분보다 훨씬 걷기가 수월하다. 

 

 

사구에 올라 그토록 그리던 사하라 사막의 사구 위에 누워 보았다. 모래의 차가운 감촉이 무척 기분 좋았다. 문명과 떨어져, 주위에는 그저 모래와 하늘뿐. 자연과 나, 둘만 남겨진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마침내 도착한 가장 높은 사구 정상에서 본 일몰은 황홀 그 자체였다. 수백 개의 모래 언덕 너머로 지는 해는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전기 없는 사막에서의 밤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촛불 아래서 베르베르족 전통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베르베르족 친구들의 전통 타악기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강산에 씨의 ‘와그라노’가 떠오르는 후킹 있는 멜로디와 캠프파이어의 정취는 사하라 사막의 특별한 밤을 만들어 주었다. 40도가 넘는 일교차 때문에 밤은 무척 추웠고, 담요 9겹을 덮고도 잠을 설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하라에서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그렇지만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사구 위에서 맞이한 일출은 이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로코 언니와의 강렬한 추억, 가죽 냄새 가득한 ‘페스(Fes)’
천년의 도시 페스에서는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호텔 여사장님은 우리의 실수로 하루 일찍 도착했음에도 호쾌하게 웃으며 ‘알라딘’의 자스민이 살았을 것 같은 가장 좋은 방을 내어주었다. 덕분에 사하라 사막과 기나긴 이동의 여독을 풀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사장님은 갑자기 우리에게 모로코에 와서 춤을 춰 보았냐며, 로비에 흐르는 음악을 모로코 전통음악으로 바꾸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멋진 모로코 언니인 여사장님이 내미는 손길에 어느새 나도 함께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겪다 이혼한 뒤, 혼자 호텔을 운영하며 새로운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모로코의 결혼식은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춤추며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본인의 결혼식 사진에서 남편의 모습만을 지워버린 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나 모로코까지 여행할 수 있는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


9세기에 세워진 페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곳이자, 천연가죽 염색으로 유명한 고대도시이다. 무두장에 가까워질수록 양가죽·소가죽·염료의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총 한 달여가 걸리는 전통방식의 가죽염색은 지금도 수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비둘기와 소의 배설물을 사용해 가죽을 늘리고 염색을 해 나가기 때문에 더욱 냄새가 강렬한 듯하다. 길거리에서는 가죽공방의 호객 행위가 심했고, 유독 페스에서는 동양인 여성 여행자 2명인 우리를 향한 캣콜링이 심했지만,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가르치던 전통 무두장의 경관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푸른 빛 가득한 스머프 마을, ‘쉐프샤우엔(Chefchaouen)’
‘모로코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쉐프샤우엔은 ‘두 개의 봉우리’라는 뜻처럼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 ‘스머프 마을’이라는 별명처럼 마을 전체가 쨍한 파란 색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을 온통 덮고 있는 파란 색은 과거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하늘과 가까이 있고 싶은 종교적 의미로 칠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지금도 매년 파란 염료로 집을 다시 칠하며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고, 덕분에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의 살뜰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쉐프샤우엔에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의 현지인 집에서 묵었다. 마을 곳곳을 구경하면서도, 숙소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도, 모로코 사람들의 색채 감각과 예술 감각 그리고 인테리어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 ‘카사블랑카(Casablanca)’
카사블랑카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인데, 도시의 이름처럼 하얀 건물이 많았다. 모로코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이곳은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지점과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했고, 1912년부터 1956년까지 이어진 프랑스와 스페인의 분할통치 영향으로 유러피안 레스토랑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인다이닝을 즐기고, 특산품인 아르간 오일을 구매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동양인 여성 둘이서 북아프리카 무슬림 국가를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더구나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에 빠지기 직전이라 더욱 긴장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평생 꿈꾸던 사하라 사막의 일몰과 일출, 도시마다 특색 있는 색채와 문화, 그리고 현지인들과의 특별한 만남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모로코인들의 뛰어난 색채 감각과 예술성 그리고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도 피어나는 자유와 희망의 씨앗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박주은 대전 복수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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