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재발견=창의성의 원천, 학습의 과정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Homo ludens)라지만, 교육장면에서는 이를 잘 반영해 오지 못하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놀지 말고, 공부해라” 채근하고, 자녀들도 공부할 때는 놀 때처럼 흥미·자발성·주도성을 보이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는 놀이중심교육을 하다가도, 초·중등학교에 가면 놀이에서 멀어지는 교육을 한다.
그러나 최근에 놀이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경제학자 최배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특성에 빗대어 놀이를 강조한다. 산업사회는 노동시간이 생산성과 소득을 결정짓는 요소였기에 놀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렇지만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일률적이고 사무적인 일을 대신 해주는 디지털 경제시대에는 많은 시간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 얼마나 창의성을 발휘하는가가 중요하다. 상상력과 창의성의 원천인 놀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도, 둘을 구분 짓지도 말라고 이르는 이유다.
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도 <열두 발자국(2018)>에서 실리콘 밸리에서의 진지한 놀이(serious play)를 소개했다. 인간은 놀이하는 동안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며, 이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회의 중간에 직원들이 커피를 손에 든 채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녹음하여 정리한 후에 15분 동안 공유하는 오픈 스페이스 테크놀로지(Open space technology) 기법도 같은 맥락이다. 회의시간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람들도 자유시간(브레이크타임)에는 자발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는 사실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최근에 뇌 과학자들은 게임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한다.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의 이경민 교수팀은 뇌신경과학 관점에서 게임이 치매환자의 인지기능을 상당 부분 향상시켰다고 보고하였다. 게임하는 과정에서 뇌신경 세포들 사이의 연결망, 즉 시냅스(synapse)가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또 게임할 때 분비되는 중독성 물질인 도파민(dopamine)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데이트할 때도 도파민 분비량이 평소보다 30~50% 증가하지만, 그 정도는 중독 범위에 들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다. 그래서 게임은 적절하게 통제하기만 하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뇌의 기능을 활성화해 준다.
게임에 관한 뇌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놀이(게임)과정과 학습과정의 유사성이 밝혀지고 있다. 인간은 학습과정에서 감각능력·주의력·기억력·시공간지각능력 및 사회성과 정서 능력집행 기능 등 다양한 인지기능을 동원한다. 그런데 인간은 게임을 하는 동안 인지기능을 작동하는데, 이때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한다. 특히 학습활동은 곧 인지활동을 의미하는데, 게임에 몰두할 때 플레이어는 다양한 인지기능이 작동한다. 그중에서도 집행기능은 논리적·전략적 사고와 관련성이 높은 인지기능으로 전두엽에서 관장한다.
게이미피케이션과 공부 향유하기
최근에 어렵거나 하기 싫어하는 대상에 게임 요소를 접목하여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 주목을 끌고 있다. 학교에서도 학업 스트레스를 받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수업에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도 전통놀이(게임)를 활용하여 학습하도록 안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공부란 다른 학습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한 차원 거듭난 지식구조를 함께 구축하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학습친밀공간이다. 학생들이 서로 친숙한 가운데 상호작용하면서 공부의 목표도 세우고, 실행 방법을 찾아 협력적으로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와 공부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강조한다.
수업 중에 학생들이 놀이나 게임을 통해 학습하도록 안내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긍정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곧 인생을 즐기는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긍정적 경험을 처리하고 음미하며 강화하는 ‘향유능력’을 갖고 있다는 관점이 대두되었다. 향유하기(savoring)는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내고, 깊이 음미하며 강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경우 성적 지상주의, 대학 입시 경쟁 등으로 공부(학습)는 가장 고민거리이고 스트레스 요인이다. ‘지금’의 재미나 즐거움을 주는 놀이는 접어두고,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끈기 있게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놀이와 공부는 타협할 수 없는 대립적인 개념이 되었고,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라는 명제는 설 자리를 잃었다. 많은 학생에게 공부는 불쾌한 감정을 가져다주고,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되어 공부 상처라는 개념도 등장하였다.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학업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심리·사회적 문제(우울증·학교폭력 등)를 완화하려면, 학교생활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과정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경험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평생학습자로 성장할 수 있다. 또 공부와 놀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경험을 자주 해야 삶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키울 수 있다. 롤프 엔셀(<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은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놀이와 일을 구분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라 하지 않았는가.
윷놀이 수업(학습)전략
글쓴이는 대학에서 플립러닝을 하는 중에 윷놀이를 하면서 학습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그것을 윷놀이 게임학습(LPG: Learning by Putting Game)이라 이름 붙였다.
• 1단계 _ 윷놀이 준비 활동
: 윷놀이 도구 준비하기 + 문제카드와 정답카드 만들기 + 정답 기록지 만들기
• 2단계 _ 윷놀이 수업 전 활동
: 수업주제(목표)와 자율학습 안내하기 → 학습 모둠 정하기 → LPG 준비 학습하기
• 3단계 _ 윷놀이 수업 중 활동
: 윷놀이 규칙 안내하기(정하기) → 정답 기록과 점수 계산하기
• 4단계 _ 윷놀이 수업 후 활동
: 문제와 정답 보충하기 + 학습성찰하기
윷놀이 수업은 준비물도 간단하다. 윷은 문방구에서 적은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고, 말판은 학생들과 직접 만들면 흥미로워한다. 윷을 놀 때 소음이나 튕겨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깔판도 필요하지만, 여의찮다면 그냥 해도 무방하다. 윷 대신에 주사위로 해도 되지만 흥미를 유발하고, 감각적 경험을 하는 데는 나무로 만든 윷이 더 좋다.
윷놀이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학생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면, 학습 주도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 호에서는 글쓴이가 대학 수업에서 실천하고 있는 윷놀이 수업의 과정과 효과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