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역량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함양할 수 있는 경제교육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민의 합리적 경제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 또는 학교 차원의 경제교육 체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KDI 경제교육·정보센터의 경제교육 담당자들은 2023년과 2025년에 각각 싱가포르와 핀란드를 방문해 두 나라의 경제교육 사례를 조사했다.
학교에서 현장까지, 핀란드 경제교육
먼저 핀란드부터 살펴보겠다. 핀란드는 초·중등 국가 핵심 교육과정을 통해 모든 지역에 공통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교육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는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교육 방향을 구체화한다. 경제교육도 초·중등 국가 핵심 교육과정에 통합되어 있으며,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경제와 금융 개념을 이해하고 실생활과 연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운영한다.
핀란드 에스포 지역의 타피올라(Tapiolan lukio) 고등학교를 방문해 ‘공통 경제’ 과목의 수업을 참관했다. 이 고등학교에서 ‘공통 경제’는 사회교과의 필수 과목이다. 학생들의 진로와 관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심화 경제’ 과목도 개설되어 있다. 수업은 핀란드의 인공위성 개발 회사가 대규모 자금을 받은 일, 노동법 조항을 수정하는 일 등 최신 경제 이슈에 대한 교사의 언급으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교사에게 질문했고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졌다. 교과서의 경제 개념이 현실의 사례와 연결되어 학생들의 학습동기가 한층 높아진 듯 보였다. 수업은 ‘FORUM 2’라는 경제 교과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모둠별 모의 창업활동이 함께 이루어졌다. 교사는 모둠활동이 성적에 반영된다고 설명하면서 학생 간의 협력과 상호 책임 분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제 수행과 평가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수업 후에는 2~3학년 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중 몇몇 학생은 ‘공통 경제’ 과목 수강 후 ‘심화 경제’ 과목을 선택했고, 또 다른 몇몇 학생은 창업 게임과 같은 교내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실제로 창업 경험이 있는 학생도 한 명 있었다. 학생들은 “경제 수업에서 창업 게임과 투자 모의실험 등의 활동을 경험해 보면서 협업 능력과 창의성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수업에 관해 묻자, 창업자·정치인·외교관 등 다양한 전문가를 초청하여 궁금한 내용을 물어본 경험을 꼽았다. 전문가 초청은 진로와 직업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전문가 초청은 담당 교사가 직접 섭외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전체 학교의 공통적 사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제 수업은 교사의 전문성을 토대로 학교 자율성이 높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경제교육은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외부 프로그램을 결합해 실제 경제와 사회를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 개념을 실제 삶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례로 핀란드의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Yrityskylä(위리튀스퀼래)
먼저 핀란드어로 ‘기업 마을’이라는 의미의 Yrityskylä(위리튀스퀼래)이다. JA Finland가 운영하는 학습 모듈로 교사연수와 Yrityskylä 수업 및 체험학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Yrityskylä는 은행·기업·병원·공공기관 등 실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기관들의 축소판이다.
주로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6학년과 9학년 학생들이 참여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의 업무를 하루 동안 수행하며 급여를 받아, 소비와 저축을 하고 세금도 납부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직원과 시민으로 활동하면서 교실에서 배운 경제 개념이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JA Finland에 따르면 핀란드 전체 6학년과 9학년 학생의 약 85%가 Yrityskylä에 참여하고 있다.
● TET(Työelämään tutustuminen)
또 TET(Työelämään tutustuminen)는 학생들이 실제 직장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TET는 기초교육 과정의 일부로, 학생들은 학습과 진로선택을 위해 참여한다. 주로 7~9학년 학생들이 참여한다. 체험 기간은 7학년은 1일, 8학년은 3~5일, 9학년은 1~2주 정도로 학교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체험은 카페 직원, 초등학교 보조교사,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에서 이루어진다. 학생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간단한 지원 절차나 면접을 거쳐 체험 기회를 확보하며, 이후 학생과 기업, 학교가 체험 계약을 체결한다.
학생들은 관심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현실에 접목해 볼 수 있다. 또한 자기 적성과 직업을 이해하고 사회적 책임감과 협업 능력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핀란드 교육평가센터에 따르면 2019년에 TET에 참여한 학생의 80%가 노동시장에 대한 지식이 향상되었다고 답했고, 42%는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핀란드의 경제교육은 학습자 중심 수업과 현장 기반 경험을 특징으로 한다. 교사의 높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학생이 배울 내용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중시한다. 직업 체험과 진로탐색이 경제교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지역사회·기업·지방정부가 함께 교육환경을 조성해 실질적인 체험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싱가포르, 돈의 감각을 익힌다
한편 싱가포르는 국민이 생애 전반에 걸쳐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금융교육 체계를 구축해 왔다. 정책 설계 단계부터 학교 현장 적용까지 여러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를 갖춘 것이 특징이며, 그 중심에는 국가 경제교육 전략인 ‘머니센스(MoneySense)’가 있다.
머니센스는 2003년에 출범한 싱가포르의 국가 금융교육 프로젝트이자 국민에게 제공되는 경제교육 추진 로드맵이다. 교육부·인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가 민간의 전문가들과 함께 설계했다. 머니센스의 추진 목적은 싱가포르 국민이 자신의 금융생활을 잘 관리하고, 더 나은 금융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
머니센스는 명칭이 ‘돈에 대한 감각’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돈 관리’, ‘보험’, ‘투자’, ‘은퇴 설계’ 등 일상에서 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머니센스 체계에서 이루어지는 싱가포르의 금융교육은 기본적인 자금 관리, 재무 설계, 투자 지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싱가포르는 철저히 실생활 중심의 실용적인 금융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는 현실의 교육 제도가 금융교육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학교의 상황을 고려한 학교 금융교육 체계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학교교육과정은 한정된 시수에 이미 여러 과목이 서로 경쟁하듯 편성되어 있어 금융교육을 별도의 과목으로 편성해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여러 과목에 금융 이해력을 제고할 수 있는 학습내용을 통합하여 학습자의 나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교육한다.
학교급별로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개인적·정서적·사회적 발달을 지원하는 수업과 시민의식과목·수학과목에 경제교육이 녹아 있다. 중등학교에서는 식품 및 소비자교육, 수학·사회과목에서 금융교육이 이루어진다. 학교 금융교육은 대학교 진학 예비 과정과 직업 기술 교육기관인 폴리테크닉과 기술교육원에서도 이어진다.
머니센스가 강조하는 핵심은 복잡한 경제 이론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학생들이 실제 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용돈과 지출 관리, 저축과 예산 세우기, 보험의 역할, 투자 판단, 은퇴 준비 등 생활과 밀접한 주제가 교육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자산으로 경제와 금융 공부를 받아들이게 된다.
직업과 연계한 핀란드의 경제교육, 일상의 돈 관리에 초점을 둔 싱가포르의 금융교육 사례를 통해 학생들이 현재를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미래를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의 주안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이 마주하는 경제생활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일상에서 더욱 자신감 있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충분한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마음 놓고 시도하고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