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아버지 김낙수는 아들 수겸이가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스타트업을 선택하려 하자 격렬히 반대한다. “너도 나처럼 대기업 다녀라. 안정적이고 좋잖아.” 하지만 아들의 대답은 단호하다.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이 아버지를 행복하게 했나요?”
이 장면은 두 세대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아버지 세대에게 성공이란 ‘대기업 부장’, ‘서울 자가’, ‘안정적 가정’이라는 객관적 조건의 달성이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 공식을 따르는 것,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들 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만족을,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추구한다.
우리 교육은 지금까지 수많은 ‘김 부장’을 만들어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조건을 갖추는 것. 그것이 성공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 성공 공식이 정작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는 ‘수겸이’가 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교육. 그것이 바로 기업가정신교육이다.
왜 지금 기업가정신교육인가'
흔히 경제교육 하면 시장경제의 원리’, ‘수요와 공급’, ‘금융상품의 이해’와 같은 내용을 생각한다. 물론 이런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경제교육은 교과서 속 개념을 암기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실제 경제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 바로 기업가정신교육이 있다.
대기업과 그룹사들을 자문하며 기업들이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대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성공하는 기업의 비결이 단순히 좋은 전략이나 풍부한 자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불확실성 앞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다.
왜 기업가정신인가? 단순히 학생들을 모두 창업가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업가정신은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제한된 자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태도다. 이는 창업가뿐 아니라 직장인·전문가, 심지어 가정을 꾸리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역량이다. 급변하는 AI 시대, 구독경제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AI 시대에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인공지능이 데이터 분석, 패턴 인식, 심지어 예술 창작까지 해 내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인간다운 가치’를 창출하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업가정신교육은 단순히 창업 스킬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다.
더욱 근본적으로 기업가정신교육은 학생들이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적 가치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청년자기다움학교를 운영하며 300명이 넘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대학입시나 취업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국·영·수 중심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찾는 법은 가르쳤지만, 자신만의 질문을 만드는 법은 가르치지 못했다.
기업가정신교육의 세 가지 핵심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의 기업가정신교육이 필요할까? 세 가지 단계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 나다움의 발견
모든 기업가정신은 자기 이해에서 출발한다. ‘나는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가’, ‘나는 어떤 문제에 분노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은 창업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이다.
진정한 기업가정신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며,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소개서 작성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자기탐구의 시작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역량이다.
얼마 전에 한 제자가 찾아왔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1년 만에 퇴사했다는 것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였지만, 저는 불행했습니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은? 작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연봉은 대기업의 3분의 1이지만, 그는 말한다. “이제야 나답게 살고 있어요.” 김 부장이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직장이나 재산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문제해결 역량의 배양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것을 추상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학생들의 일상 속 작은 불편함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학교 급식실은 왜 항상 줄이 길까?’, ‘친구들은 왜 수업시간에 졸까?’, ‘우리 동네에는 왜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을까?’ 이런 문제들을 발견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하며,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기업가정신교육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이 진짜 불편하다고 느끼는 문제’를 다루게 하는 것이다. 타인이 정해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한 문제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몰입이 일어나고, 해결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를 다루는 것’ 이것이 진짜 기업가정신의 시작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과정’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우리는 수많은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봤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공통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이었다. 이런 태도는 어릴 때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통해 길러진다.
● 협업과 소통의 경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기업가정신의 중요한 교훈이다. 학생들은 팀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강점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역할을 분담하며, 함께 목표를 이루는 경험이 필요하다. 몬드라고 대학에서는 이것을 ‘팀프러너십(Teampreneurship)’이라 부른다.
팀프러너십은 단순한 팀워크가 아니다. 각자의 ‘나다움’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70년 넘게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온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집단의 협력이 조화를 이룰 때,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우리 학생들도 어릴 때부터 이런 협력적 기업가정신을 체득해야 한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방법이다. 기업가정신은 강의실에서 강의로만 가르칠 수 없다.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성찰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다. 학생들에게 작은 프로젝트를 부여하라. ‘우리 학교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우리 동네의 문제 해결하기’, ‘친구들의 불편함 덜어주기’ 같은 주제로 팀을 구성하고, 3~4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하라.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시장 조사, 아이디어 구체화, 프로토타입 제작, 피드백 수렴, 개선의 전 과정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 급식실 대기 시간 줄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은 먼저 문제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원인을 분석한다. 해결책을 고안한다. 작은 규모로 실험한다. 피드백을 받고 개선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경제학의 효율성 개념, 경영학의 프로세스 개선, 그리고 실전 문제해결 능력을 동시에 배운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다른 방법은 없을까?’, ‘실패했다면 무엇을 배웠니?’ 성찰 없는 경험은 단순한 활동에 그친다. 경험을 의미 있는 배움으로 전환하는 것은 질문과 성찰이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실제 창업가나 소상공인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지역의 사회적 기업을 방문하는 것, 작은 프로젝트라도 실제로 실행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실 밖 세상과 연결될 때 기업가정신교육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청년자기다움학교를 운영하며 가장 큰 변화를 만든 것은 ‘현장’이었다. 스타트업을 직접 방문하고, 창업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실제 비즈니스 현장을 체험할 때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교과서의 추상적 개념이 살아있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동네 빵집 사장님을 초청해 ‘어떻게 메뉴를 개발하는지’, ‘손님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이 된다.
‘나다움’이 만드는 선한 영향력
아나운서 이금희는 18년간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3만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다움을 찾은 사람들’이라는 것. 이는 수많은 기업을 자문하며 발견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공통점은 능력이나 자본이 아니라 ‘나다움’의 유무였다.
경제교육이 단순히 경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경제 주체로서 주체적 삶을 살아갈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기업가정신교육은 그 핵심이다.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경제교육.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교육. 그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경제교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