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속 가능한’ 경제교육을 위하여
과거에 비해 오늘날 아이들이 마주하는 경제 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용돈 관리나 저축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 학생들은 간편결제, 게임 아이템 구입, 구독 서비스 이용, 유튜브 광고 시청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세계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이러한 경제·금융교육이 생존과 직결된 필수 문해력이라는 공감대는 커졌지만, 정작 교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여전히 모호하다.
특히 공교육 현장의 빡빡한 교육과정 속에서 경제교육을 위한 별도의 시·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거창한 새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경제·금융교육이 포함된 해당 교과에 충실하되 타 교과와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유연한 접근을 택해야 한다.
핵심은 교과서 속의 추상적인 개념을 아이들의 구체적인 삶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교과서 속 경제 원리가 우리 몸을 지탱하는 튼튼한 ‘뼈대’라면, 교실 속 체험과 교과 융합 활동은 그 위를 감싸고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근육’이다. 뼈대와 근육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경제교육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필자는 이를 위해 공교육 내 경제교육의 방향을 ‘학급 운영(생활)’과 ‘수업(교육과정)’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학교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교실, ‘국가’가 되어 세계와 만나다
학급은 교사의 재량이 가장 넓게 발휘되는 공간이자 학생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의 무대이다. 이 공간을 하나의 작은 경제 시스템으로 설계하면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고도 밀도 높은 경제교육이 가능하다.
공교육 속 경제교육의 연구와 실천에 힘쓰고 있는 교사모임 ‘경제·금융교육연구회’에서는 2015년 SEC(Small Economy in the Classroom) 모델을 기반으로 한 ‘금융교실 프로젝트’를 개발하였고, 현재 여러 학급에서 이를 학급 운영 방법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초등학생들에게 학교 밖 사회와 가장 유사한 환경에서 직접 경제활동을 해 볼 수 있는 ‘실전형 경제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돈을 매개로 활발히 소통하고 경제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가게 된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교실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 학급이 연합하여 ‘국가 간 무역’을 시도하고 있다. 매일 보는 학급 친구가 아닌 얼굴도 모르는 다른 지역 학급의 소비자들에게 내 물건을 파는 것인데, 교실 안에서의 거래가 ‘친목’에 가까웠다면 교실 밖을 향한 무역은 진짜 ‘비즈니스’가 된다. 아이들은 낯선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짜고, 각자의 아이템을 홍보하며, 시장이 확장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무적인 배움은 시장의 객관적 평가를 마주했을 때 일어났다. 같은 슬라임을 팔더라도 어떤 기업은 완판을 기록하고 어떤 기업은 재고만 남겼다. 아이들은 매출이라는 성적표 앞에서 ‘왜 우리 물건이 안 팔렸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웃 나라는 포장이 예뻐”, “가격이 더 합리적이야”와 같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내 창업 아이템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여 나를 발전시키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경제적 민주시민성’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학급 운영 속 경제 체험은 이처럼 막연한 이론을 구체적인 삶의 지혜와 성찰로 치환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나선형 교육과정 심화와 교과 융합의 시너지
학급 운영을 통한 경제 체험은 강렬하지만, 현실적인 한계 또한 분명하다. 담임교사의 재량에 따라 운영 편차가 크고, 학급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에 따라 ‘금융교실 프로젝트’의 모습이 달라지다 보니, 체계적인 교육내용을 담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빡빡한 학사 일정 속에서 별도의 경제교육 시간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교육이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가장 단단한 뼈대인 ‘교육과정(수업)’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나선형 교육과정 심화’와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먼저 경제교육의 나선형 교육과정 마련이다. 경제 수업은 브루너(Bruner)의 이론처럼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춰 행동에서 상징으로 나아가야 한다. 초등학교 단계는 ‘몸으로 익히는 경제’가 핵심이다. 교실에서 과자 가게를 열어 직접 장사를 해 보는 활동처럼 머리가 아닌 손끝으로 배우는 체험이 생존의 기초 체력이 된다. 반면 중·고등학교 단계는 ‘추상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경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환율 그래프를 해석하거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 벤처를 기획해 보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단계다.
다음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경제는 특정 교과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러 교과의 성취기준을 경제라는 테마로 엮을 때 배움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사회에서는 시장과 가격, 자원의 희소성 등 핵심 개념을 다루고, 실과(기술·가정)에서는 용돈 관리와 진로 설계를 연결한다.
수학의 가격 비교와 이자 계산을 통해 실생활 수리 감각을 익히고, 광고와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으며 정보를 검증하는 것을 국어교과에서 다룬다. 나아가 도덕에서 공정한 거래와 기부를 다룬다면 학생들은 경제를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윤리적 행위로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사회·국어·수학·미술교과의 여러 성취기준을 묶어 시장 조사부터 홍보물 제작, 판매 전략 발표까지 이어지는 통합 단원을 구성하면 경제는 암기해야 할 시험 과목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이것이 학급 운영의 한계를 넘어 경제교육을 교실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자율시간, 시간의 한계를 넘는 해법
문제는 ‘시간’과 ‘속도’다. 앞서 언급한 프로젝트형 수업은 교육적 효과가 크지만,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교과 시간에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한 경제교육 실천이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간편결제, 스트리밍 구독, 크리에이터 후원 등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 현상은 교과서에 반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대한 해법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학교 자율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교사가 필요로 하는 주제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교사 중심 교육과정의 여백이다. 이 시간을 활용하면 교과서가 담지 못한 학생들의 진짜 삶을 다룰 수 있다. 예컨대 ‘나의 소비 발자국 찾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한 달간의 소비 내역을 분석해 보는 것이다. 단순히 용돈 기입장을 쓰는 것을 넘어,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인플루언서의 광고가 나의 충동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경제적 주체성을 기르게 된다.
교실 밖으로 시야를 넓힐 수도 있다. 지역 상권 조사,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여행 상품 등을 기획·개발하여 경제를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지역사회의 이야기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탐구와 기획 활동은 지역 상권과 자원을 새롭게 조명하게 함으로써, 학교 경제교육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학교 자율시간이 경제교육 자체를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은 분명하나 현장 교사들이 직접 내용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최근 시·도교육청의 학교 자율시간 예시자료나 교과서 출판사의 교수·학습 플랫폼에 접속해 보면, 검증된 수업자료와 프로젝트 모델이 이미 탑재되어 있다. 교사가 할 일은 개발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큐레이션(Curation)’이다. 학교 자율시간은 경제교육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의 단단한 줄기로 안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로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성장 퍼스널 트레이닝’
경제교육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을 온전한 경제적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일종의 퍼스널 트레이닝 과정이다. 교실 경제, 나선형으로 설계된 교육과정, 학교 자율시간 프로젝트는 모두 아이들이 경제를 ‘이론’이 아니라 ‘삶의 기술’로 연습해 보는 성장 프로그램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반복 훈련이 필요하듯 합리적인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도 교실 안에서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분명 실패한다. 친구와의 거래에서 손해를 보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학급 화폐를 잃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공교육은 아이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한 실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안전한 실패의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는 내적 불씨를 키워 간다.
결국 학교에서의 경제·금융교육은 교실 안에서의 작은 거래 경험을 넘어, 학생들이 평생 마주하게 될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준비시키는 일이다. 교실 경제와 정규교과수업 그리고 학교 자율시간을 촘촘히 엮어 갈 때, 아이들은 ‘돈을 잘 쓰는 법’뿐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경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일상 속에는 이미 경제가 스며 있다. 아이들이 서둘러 답을 내기보다 끝까지 고민해 보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다시 일어서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교실에서부터 경제교육의 장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2026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사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