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뷰] 호르몬의 과학

2025.04.07 10:00:00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을 청할 때까지, 수많은 감정 변화를 느끼곤 하죠. 감정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요? 흔히 ‘뇌’를 감정을 인지하는 나침반이라고 합니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쁨과 행복을 맛보기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전히 감정과 뇌 부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합니다. 현대 과학의 마지막 정복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뇌 연구. 이번 호에서는 호르몬에 대한 뇌과학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Q1. 호르몬 하면 뭔가 내 몸이나 기분을 조절하는 느낌이 드는데, 호르몬은 실제로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거죠?
맞습니다. 실제로 UCLA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는데, 남학생들에게 옥시토신이라는 유대감과 애착 형성에 관계된 호르몬을 비강 스프레이로 투여했더니, 놀랍게도 위약(僞藥)을 투여한 그룹보다 평균적으로 80% 더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에서도 위약 그룹보다 56% 더 많은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호르몬은 우리의 의지나 기분은 물론 성향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호르몬은 절대적인 존재 같지만, 사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많아요! 보통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이 상황을 싸워서 헤쳐 나갈지, 도망가서 피할지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싸움-도망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라고 하는데, 두 반응 모두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이 분비되면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심장이 빠르게 뜁니다. 즉 최대한 잘 싸우거나 잘 도망가기 위해 에너지를 최적화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호르몬이 나와도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신체가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싸움과 도망 중에서 싸움을 선택하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과 관련된 뇌 부위인 전전두엽과 긍정적 감정과 동기부여를 만들어주는 복측피개영역(VTA)이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도망을 선택하면 공포와 관련된 편도체가 더욱 활성화됩니다. 이처럼 호르몬은 반드시 우리 인체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가 수동적으로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컨트롤할 수도 있다는 실험적 증거도 많습니다.

복측피개영역 
복측피개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은 뇌의 중뇌에 위치한 작은 영역으로 도파민신경세포체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입니다. 복측피개영역(VTA)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때, VAT는 도파민을 분비하여 쾌락과 보상을 느끼게 합니다. 도파민은 쾌락·보상·동기부여·학습·기억 등 다양한 기능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VAT는 이러한 도파민 신경망의 중심역할을 하는 보상회로시스템의 핵심 구성요소이며, 우리가 더 많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Q2.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호르몬이 아마 도파민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도파민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호르몬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도파민은 주로 언제 분비되나요?
도파민은 흔히 ‘쾌감’ 또는 ‘행복 호르몬’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정확히는 행동을 반복하도록 유도하는 동기부여 호르몬입니다. 도파민의 분비 원리를 우리 조상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주요 상황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었습니다. 이는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우리 조상들은 같은 사냥터에 머무르면 동물(먹이)들도 패턴을 파악하고 도망가기 때문에, 늘 새로운 곳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Q3. 그럼 도파민은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호르몬 같은데, 왜 요즘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요즘엔 도파민이 분비되는 세 가지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도박입니다. 문제는 도박에서는 도파민을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우리 조상들은 힘든 노력을 통해, 즉 사냥을 통해서 지연된 보상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클릭 한 번으로도 쉽게 보상을 얻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경험하며, 상상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게다가 틱톡·쇼츠·릴스 같이 짧은 영상 콘텐츠도 같은 원리를 이용합니다. 매번 30초마다 새로운 예측 불가능한 영상이 등장하고, 드래그 한 번으로 계속 바뀌기 때문에 쉽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결국 도파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동을 멀리할수록, 우리는 도파민의 노예가 아니라 도파민을 컨트롤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Q4. 그렇다면 ‘호르몬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요?
호주 모나쉬대학의 사회신경과학연구소에서 몇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총 게임을 할 때,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을 쏠 때와 꼭 죽여야 하는 적군을 향해 총을 쏠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fMRI로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아무런 죄가 없는 시민에게 총을 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부분이 강하게 활성화되었지만, ‘꼭 죽여야 하는 적군을 쏠 때’는 뇌의 그 어떤 부분도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 뇌는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인식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3만 명을 8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망률이 43%나 높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몸에 나쁘다’고 인식한 사람들의 사망률만 높았고, ‘스트레스가 나쁘지 않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오히려 사망률이 낮았습니다. 즉 우리는 호르몬의 노예가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면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선호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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