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면서 한 인간의 삶이 그처럼 경의와 존경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싶다. 일찍이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 왔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시대마다 남다르게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를 실천하며 후대인이 닮고 싶은 삶을 살다간 사례가 많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는 본받고 싶은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푸념과 하소연을 해왔다. 이런 가운데 누구나 보편적으로 지극한 경의와 존경을 품을 수 있는 어른을 발견하게 된 것은 황량한 이 시대에 오랜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고 기쁘고 감사하고 감동으로 충만하게 된다. 특히 교육자로서 확고한 철학과 무한 베품의 인재육성은 가히 ‘사람농사’의 대풍을 이루었고 이는 “뿌린 대로 거둔‘ 인과응보의 결과였다.
지금 전국에서는 독립 영화관을 중심으로 ‘어른 김장하’ 라는 다큐영화를 재상영하고 있다. 2019년에 처음 진주 MBC에서 제작해 2022년 방영함으로써 깊은 감응을 일으킨 것에 이어 2025년 다시금 의미 있는 삶의 조명과 교육적 서사로 다가서고 있다. 이는 마치 성경의 유대민족들에게 내린 하늘의 ‘만나’와 같이 이 나라 교육계에 커다란 ‘축복’과도 같은 계기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분을 닮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성찰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로써 여생이나마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최근 한겨레신문은 “끝까지 믿어 준 김장하 선생…기부보다 어려운 용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면서 12⋅3 비상계엄 주동자 탄핵 심판 때 인용 판결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김장하 장학생 경력을 사례로 그가 등장했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재개봉하면서 김장하 선생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필자는 혹시라도 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사실을 밝혀 소개하고자 한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며, 돈은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가고 싶은 학생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지역 언론사, 여성, 장애인, 다문화 이주민 등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돕는 형평운동을 펼치며,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뒤에서 묵묵히 도운 어른이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한약업체에 종사하면서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 거둔 이윤이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김장하 선생이 1983년 당시 약 110억 원의 사비를 들여 세운 명신고등학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국가에 헌납하면서 이사장 퇴임사에서 한 말이다. 그가 바라던 대로 이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경제적 도움을 받고 훌륭한 배움을 얻어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이 가능했다. 그 대표 격인 김장하 장학생 학생들이 ‘교육의 힘’을 드러내고 이를 증명하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불교의 ‘기대 없이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줬으면 그만이지 무슨 보상을 바라나”의 일관된 생각을 견지했다. 또한 “돈은 똥과 같아 한 곳에 모이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여러 곳에 퍼지면 거름처럼 된다”는 생각을 유지했다. 이는 마치 경주 부자 최씨의 현대판과 같았다. 이는 오늘날 물질에 집착하며 작은 선행 하나라도 자신을 드러내어 앞날에 이득을 취하려는 얄팍한 삶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바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적 행동강령과 같다고 할까.
김장하 선생은 자기에게 유리하다거나 호의적이라는 안전판 없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자신의 우주를 건 진심과 결단의 문제였다. 그는 ‘싹수’를 본 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과 단체들을 지원했다. 그중에는 사회적 기준으로 이른바 실패자들도 있고 아쉬운 결과도 있겠지만 사회 각 계 각 층에서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하며 일당백의 역할을 수행하는 다수의 엘리트들도 키웠음을 영화는 증거하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내린 믿음의 정의라 할 수 있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직장 부하를 바라보는 상사나 누군가를 내려 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이에게 당부하는 이야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육자로서의 삶에 많은 갈등을 부르는 이 시대에 어른 김장하 선생과 같은 삶은 본받고 싶은 모델로서 충분한 가치와 인재교육의 사표로 간주된다. 이는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선후배 동료시민들에게는 무한한 긍지이자 자부심이라 믿는다.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들에게는 한국판 ‘큰 바위 얼굴’로 손색이 없다 할 수 있다. 오늘도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며 겸손하게 이 사회에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가실 선생께 부디 여생 동안, 참 교육자다운 품위를 변함없이 보전한 채 건강과 행복 그리고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