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용된 지 이제 3년차인 초등교사입니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임용 첫해에 우울증이 심해져 1년 정도 병휴직을 했고, 그때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약을 바꾸고 대형병원으로 옮기며 노력했는데, 좀처럼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심지어 신약까지 시도했는데도 효과가 없으니 절망스럽습니다. 지금도 죽고 싶다는 생각만 나고 다른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수업 준비조차 손에 잡히지 않고, 교실에 서 있어도 머리가 하얘지는 일이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웃고 일도 해내고 있지만, 집에 돌아오면 완전 뻗어버리고, 가족들 몰래 자해도 많이 했습니다. 그냥 제 자신이 너무 무섭고 싫고, 일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요. 매일 학교 가는 것도 너무 두렵습니다. 업무도 많이 배려해 주셨는데 그것조차 감당이 안 되고 제대로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의원면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상담사 선생님도 의사 선생님도 가족들도 모두 말립니다. 저는 이미 내일 출근하는 것도 두려운데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연자: 김민서(가명) 교사) |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정말 조심스럽고 진중한 마음으로 이 답변을 시작해 봅니다.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정말로 어둡고 깊은 곳에서 이 글을 쓰셨을지요. 지난 시간들도 오늘 하루조차도 선생님께는 얼마나 버겁고 힘드셨을지, 이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이셨을지요. 그럼에도 용기내서 이렇게 글을 쓰고 도움을 요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최근에도 자살 시도를 하셨고 자신이 너무 싫고 무섭다 하셨고요. 결정적인 순간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건 선생님 마음 안에 강렬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분명한 신호입니다. 그 무엇보다 강력한 이 신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님께서 진짜 바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지금의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무력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한 가지만 떠올리게 되지만, 선생님 마음 안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선생님을 붙들어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에서 저는 선생님이 정말 안간힘을 쓰면서 싸워오셨고 버텨오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의 극적인 호전이 없었던 터라 실망하고 좌절감이 크셨으리라 짐작해봅니다. 그럼에도 계속 상담도 다니시고 병원에도 가고 계시죠.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도움도 요청하셨구요. 어떻게든 이 막막하고 진창 같은 상황에서 살아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글 너머로 전해져옵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마치 내 몸 안의 내비게이션이 고장난 채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머리로는 계속 직진해야 한다고 명령을 내리지만 방향이 어긋나고, 가속 페달을 아무리 힘껏 밟아도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우울감이 오래 지속되거나 다양한 약물을 시도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경우, 자책과 절망감은 배가됩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워지고 무기력해지는 건 우울증이라는 이 병의 특성이지 선생님이라는 한 사람의 성격이 문제거나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병원을 옮기고 약을 바꾸고 상담을 받고 있음에도 별다른 호전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많은 분이 ‘나는 고쳐지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갖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병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조차 전부 무너진 듯 느끼게 만드는 인지 왜곡을 수반합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느끼는 “나는 쓸모 없고, 아무리 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우울증이 만들어낸 왜곡된 감정과 생각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선생님처럼 여러 약물치료에도 충분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치료 저항성 우울증(treatment-resistant depression)’이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 주치의와의 신중한 논의를 통해 약물 치료 외의 다른 뇌자극 기반 치료법을 시도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심리치료 및 상담에 대해서도 선생님께 맞는 상담방식이 적용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선생님께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따라 보다 적절한 상담접근법을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약물이 잘 듣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의 현재 상태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느리게 변화할 뿐이죠. 감정이란 것이 선생님께서 치료를 시작하며 기대하셨던 만큼 금방 나아지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우울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지기 보다는 조금 흐릿해지고 가장 힘들었을 때보다는 덜 뚜렷해지는 그런 녀석이니까요.
교사 업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선생님 자신이 무섭고 싫다는 말씀, 그리고 일을 못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업무도 많이 배려해주셨는데 그것조차 감당이 안 되고 제대로 못 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는 말씀에서 저는 선생님께서 가진 힘을 보았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구분하고 명확히 구분해보려는 것은 좋은 신호입니다. 그러나 출근이 두렵고, 업무 배려조차 감당이 안 된다는 말씀은 현재 기능적 에너지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뜻일 수 있으니 회복의 시간을 확보해보는 것이 어떨지요.
의원면직을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은 그만큼 선생님이 절박하다는 뜻이지만 회복의 기반을 마련해두지 않고 내리는 결정은 오히려 선생님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직하시는 것은 자칫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버겁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말씀하셨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옷을 갈아 입고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퇴근하고 식사를 하는 그 일상은 모두 다 대단한 행동입니다. 매 순간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감이 가득찬 삶이 아니어도, 심지어 막막하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너무도 버거운 것이 분명한 그 어려운 상황에 일상을 살아내고 계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무사히 도착하신 것도,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 받은 것도,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도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선생님이 나아지려 노력하는 모든 것 들이 모여 조금씩 괜찮아지기를 바랍니다.
현재가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모든 것을 끝내려 한 것도 선생님이지만, 그 순간 그런 선생님을 멈춘 것도 선생님 자신입니다. 선생님은 분명 이겨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