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서른여섯 번째 3월

2025.05.12 09:00:48

일신우일신이라 했다. 올해로 교직에 몸담은 지 36년 만년 교사다. 청운의 칼칼한 꿈을 품고 시작한 교직 생활도 이순에 접어들면서 느긋해지고 순해졌다. 3월이면 지역신문에서는 동기나 후배들의 교감, 교장 승진 축하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의기소침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또 아이들 만날 생각으로 가슴은 뜨겁기만 하다.

 

매일 지각하는 아이

 

지난 3월, 시업식을 앞두고 새 학년을 준비하며 새로 맞이할 아이들 명단을 보며 새로움과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새 학년과 새롭게 시작하니 새로움으로 거듭나야지 하며 구두와 간절기 코트도 장만하였다. 또한 나이 많은 선생님이란 느낌이 들지 않으려고 이발도 한다. ‘외모는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데…’ 이발소 대형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스스로 달랜다.
 

등교일이다. 아이들 오기 1시간 전에 출근하여 온풍기를 돌려 교실을 데우고, 먼지나 앉았을까 싶어 물수건으로 24개의 의자와 책상을 쓰다듬듯이 닦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른 거리는 소리에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올 시간이었다. 출입문 앞에 서서 오는 아이 하나하나 이름을 물어보고 손을 쓰다듬어 준다.
 

이제 모두 다 왔겠지, 싶어 교실을 둘러보니 한 자리가 비어 있다. 그 아이는 이전 학년 선생님도 힘들어했다는 아이였다. 첫날부터 지각인가 싶어 손전화를 하니 받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올해는 이 아이와 한판 씨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자,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온다. 눈인사만 하고 자리를 가리켰다.
 

혼을 내는 것보다 연유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첫 시간을 마치고 조용히 물어보니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늦잠 잤다 한다. 둘째 시간에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여러분과 선생님은 1년 동안 같이 보듬고 걷고 달려야 할 사이예요. 오늘 선생님 가슴에 24장의 하얀 도화지가 들어왔어요. 이 도화지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는 여러분에게 있어요. 선생님도 그려질 그림이 무척 궁금하지만, 내년 2월 종업식날 알려줄 거예요. 자 이렇게 새롭게 만났으니 사랑하며 도우며 배려하며 1년을 같이해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보니 전부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아침에 늦게 온 그 아이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3월 첫 주 동안 그 아이는 매일 지각과 일주일에 한두 번 결석, 매 수업 시간 늦게 들어온다. 상담을 해 보지만 들은 척만 하고 효과가 없다. 대충 들은 이야기는 가정사가 복잡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그 아이의 집은 읍내 중심에서도 떨어진 개울가 오르막길 옆 언덕배기에 제비집처럼 있었다. 인기척을 하며 계시냐고 하여도 대답이 없다.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실내는 너무 어지러웠다.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돌아선다.
 

다음날이었다. "○○야 어제 어디 갔었니?" 묻자 축구하고 놀다가 지역아동센터에 갔다고 한다. 그래 알겠다. 지각은 가능하면 하지 말자. 다독이며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 다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다. 지역아동센터장에게서 들은 내용은 너무 가슴 아팠다.
 

연유는 이랬다. 그 아이의 엄마 아빠는 지금 세상과 격리되어 있다고 한다. 마음에 큰 돌덩이가 얹힌다. 작년까지 같이 있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팔십을 넘긴 할아버지가 손자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났다. 기초학력평가 날인데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전화하니 목감기가 심해서 할아버지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셨다 한다. 할아버지에게 병원 진료를 꼭 받아보라고 부탁했다. 그날 오후 안심이 안 되어 다시 찾아갔다. 마침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이의 행방을 묻자, 오전에 병원 갔다가 주사 맞고 좀 나아지니까 밖에 축구하러 갔다고 했다. 역시 아이였다. 가능하면 제시간에 학교에 올 수 있도록 아침을 거르지 말고 꼭 챙겨 주시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다음날 역시 지각을 했다. 조용히 불러 어제 네 집에 갔더니 없던데 몸은 괜찮은 거야 하니 괜찮단다. 어제 시험을 못 치렀으니 오늘 혼자서 시험을 봐야 한다며 시험지를 나눠줬다. 그렇게 하여 시험을 끝낸 오후였다. "선생님 내일이 제 생일인데요." 그래 축하한다. 말은 했지만, 의도를 분석하느라 바빴다. 다음날 출근길 그 아이의 생일을 어떻게 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마트에 들러 초코파이 한 상자를 샀다.
 

"얘들아, 오늘 ○○이 생일이란다. 그래서 선생님이 만든 케이크를 ○○이 대신 쏘는 거야."
 

초코파이 포장을 모두 벗겨 생일 케이크처럼 쌓아 올렸다. 그리고 맨 위에 초를 꽂고 음악에 맞추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노래가 끝나고 촛불을 끄라고 하자 그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생일 축하를 처음 받아보는 느낌이었다. "○○아 오늘 너의 생일 축하는 여러 친구 앞에서 앞으로 지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야. 꼭 지켜주면 좋겠어." 그리고 ‘지각 대장 존’이라는 동화책을 선물했다.
 

이렇게 간단한 생일 축하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학교 올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가 지각할지 조바심이 생겼다. 다행히 제시간에 왔다. 그리고 한 아이가 와서 "선생님 ○○이가 오늘은 20분이나 빨리 학교 왔어요"했다. 다가가 잘했다며 등을 토닥여주고 꼬옥 안아줬다.

 

초코파이 케이크로 전한 진심

 

○○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월 하순의 주말이다. 산책길에 그 아이의 집을 지나친다. 자꾸만 고개가 돌려진다. 봄바람은 온기를 머금고 귓불을 스친다. 논 언덕배기마다 봄 햇살을 받아 피어난 연보랏빛 봄까치꽃잎이 하늘거린다. 한 송이만 피었다면 외로울 것인데 무리 지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피어난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 생활, ○○이가 바르고 곱게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새롭게 돋아나도록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그게 만년 평교사의 보람이 아닐까?

장현재 경남 남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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