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AI 시대, 교육의 새로운 나침반

2026.01.06 10:00:00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르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30년 전 제 강의를 들었던 한 선생님께서 저의 강의가 본인의 교직생활을 지탱해 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자는 바로 이런 뿌듯한 순간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0년 전은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한국은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며 대대적인 교사연수 바람이 불었던 때였습니다. 거의 모든 선생님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고 익히며 ICT(정보통신기술) 연수에 매진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이어 정보화마저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력은 바로 그 열정적인 선생님들의 변화 의지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있는 팩트입니다.


<새교육> 칼럼(2025. 3. 5.)에 언급했듯이, 2013년도 OECD 보고서는 한국 대졸 평균 ICT-기반 문제풀이 능력이 세계 꼴찌인데, 한국 학생과 교사의 능력은 세계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즉 1등 교육자가 있었기에 1등 제자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명제가 증명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또다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 시대입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제2의 대대적인 교사연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번 연수는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AI를 바라보는 관점, 즉 패러다임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많은 분이 AI를 그저 컴퓨터나 인터넷의 연장선에 있는, 조금 더 성능 좋은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해 주는 ‘비서’이자 ‘파트너’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AI는 심지어 우리를 대체할 수 있는 ‘포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이들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아인슈타인 급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자 천재들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무거운 책가방 대신 자신의 손안에, 클라우드 속에, 24시간 대기하며 명령을 기다리는 10명의 천재 비서를 데리고 다니는 존재들입니다.

 

IQ가 아니라 AIQ가 중요한 시대
우리는 오랫동안 타고난 생물학적 IQ로 승부를 겨루는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학생들은 AI와 결합하여 IQ 1,200 아니 그 이상의 증폭된 또는 확장된 두뇌력(Amplified or Augmented Intelligence)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IQ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과 사회의 인식은 아직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명문대 대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시험을 치렀다가 부정행위 논란에 휩싸인 일은 씁쓸한 촌극입니다. 학교는 이를 ‘커닝’으로 규정하고 ‘자수하지 않으면 정학’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컴퓨터 상용화 시대에 주판 대신 전자계산기를 사용했다고 벌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AI가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을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정답 찾기가 아니라 해답 얻기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AI가 답을 찾아주고, 정리해 주고, 창작까지 해주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은 몫은 무엇일까요? 이제 교육은 ‘지식 기반’이 아니라 ‘지혜 기반’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AI가 데이터와 정보로 쉽게 도출하는 정답은 가치가 급락하는 중이고, 직관·정감·지혜에서 솟아나는 해답의 가치는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정답은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 정해진 답이고, 해답은 통찰력으로 얻는 깨달음입니다.


“아이고, 수업 외에 잡무도 넘쳐나는데 뭘 또 더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더 가르치란 말이 아니라 다른 걸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는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 지식 중 절반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상당 부분은 수능 수험생 간 변별력을 위해 존재할 뿐, 삶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과열된 경쟁은 모두를 심한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찌들게 하고, 공격성 또는 도피성 행동으로 내몹니다. 이런 형태의 교육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지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학생 간 변별력이 아니라 학생과 AI 사이의 변별력
이제 학교는 수험생 간 변별력이 아니라 인간과 AI 사이의 변별력을 확보해 주는 교육을 이행해야 합니다. 기존의 암기·분석·추론 능력으로 학생이 1등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AI 세계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교과내용의 절반을 싹둑 잘라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절반을 잘라내어야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을 갖추어줄 수 있습니다. 


인간과 AI 사이에 학습방식과 학습 결과물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AI는 딥러닝의 달인들입니다. 무한한 데이터를 습득하고 논리적 조합으로 창작물을 쏟아내는 능력은 인간이 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반면 인간은 메타러닝의 달인입니다. 자습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직관으로 논리를 뛰어넘고, 규칙을 깨며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저는 이 차이를 AI의 ‘체계적 창의성’과 인간의 ‘무모한 창의성’이라고 부릅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학업성취도 기준과 우수함의 기준이 제시돼야 합니다. 첫째가 통찰력입니다. AI가 가진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찾아낼 수 없는, 인간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며 지혜입니다. 둘째는 통솔력입니다.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그 결과물을 검증하며,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AI를 조율하고 인솔하는 능력입니다.

 

이 두 가지 역량을 UNESCO가 2020년도에 ‘미래 리터러시’라고 명하였습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고 예상하는 미래를 창조해 내는 능력입니다.


함께 새해를 상상해 봅시다. 현 교과내용을 절반만 가르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학생들이 입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문제행동도 한결 완화될 것입니다. 남은 시간에는 우리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교육을 맘껏 시도해 볼 수 있으니,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열정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 고속도로 이전에 빅브레인 고속도로
30년 전, 선생님들의 열정이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저력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정부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빅데이터 고속도로를 뚫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학생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입시 지옥을 없애서 인재 흐름이 원활한 ‘빅브레인 고속도로’를 뻥 뚫어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교육자가 또다시 대한민국을 AI 3강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지식의 무게감 대신 통솔력의 몰입감, 암기의 고통 대신 통찰의 기쁨을 선물합시다. 이제 선생님이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멘토가 됩시다. AI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더 넓은 세상을 조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시다.


그것이 30년 뒤, 어느 제자에게 “선생님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을 듣게 될 유일한 길입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이 희망이 되어줍시다.

조벽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 wks123@tobeunicorn.kr, TEL: 1644-1013,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김동석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