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목련꽃의 '기다림'과 '치유'의 교육학

2026.04.13 14:01:22

필자는 매년 4월이 되면 과거 근무했던 학교들의 교정에 흐드러지게 활짝 피던 목련이 떠오른다. 이 꽃은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7080세대에게 테너 엄정행의 가곡 ‘목련화’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오는 민태원의 수려한 수필 ‘청춘 예찬’과 같은 바로 그 청춘을 연상하는 정서적 감응을 유발한다. 이 글에서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목련의 서사와 예술적 감응, 그리고 '기다림'과 '치유'의 교육학적 성찰을 담아 보고자 한다.

 

올해도 ​하얀 함박눈이 가지 위에 내려앉은 듯, 거주지 인근 학교의 4월 교정에서 목련의 독무대를 보고 있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의 기개는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력을 가장 먼저 선포하는 부활의 메시지와 같다. 7080세대에게 4월은 앞서 언급한 엄정행 교수의 우렁차면서도 서정적인 가곡 '목련화'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어찌 그리도 고음의 감동적인 목소리의 울림이 청춘의 가슴 속을 파고 들던지...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라는 구절을 반사적으로 읊조리며, 어느새 점심시간 교정의 목련 나무 아래 서 있던 청춘의 시간으로 회귀한다.

 

​경희대 성악과 명예교수인 테너 엄정행의 '목련화'는 1974년 탄생했다. 조영식 시, 김동진 작곡의 이 곡은 당시 대중가요에 밀려나던 가곡을 다시 국민의 삶 속으로 가져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엄정행 교수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TV와 라디오를 종횡무진하며 가곡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곧 '지성'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그뿐이랴. 음악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가곡 '목련화'의 장엄한 선율은 개인의 슬픔을 숭고한 미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추운 겨울 이겨내고 하얗게 피어난~" 가사는 고난을 견디는 모든 세대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순결한 하얀 목련과 아름다운 자색의 목련은 양대 목련의 상징으로 서로 자태를 뽐내듯 탐스럽게 꽃을 만개해 낸다.

 

​목련은 흔히 '임금을 향한 충절'의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간 설화 속 목련은 '그리움'의 결정체다. 북쪽 바다 신을 사랑했던 공주가 죽어 피어난 꽃이기에, 목련의 꽃봉오리는 늘 북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다는 '북향화(北向花)'의 전설이 그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그리움'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교육학자 넬 너딩스(Nel Noddings)는 그의 저서 『행복과 교육(Happiness and Education)』에서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과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는 핵심 동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최근의 목련은 아픈 상처와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교정에 피어 있다. 세월호의 아픔이 있는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에는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애도의 뜻으로 보낸 잭슨 목련(Jackson Magnolia)이 식재돼 있다고 한다. 잭슨 목련은 1828년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백악관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을 위로하고 봄이면 어김없이 다시 피어나는 ‘부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목련을 보며 우리가 떠올리는 '그리운 사람'은 단순한 타인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나 자신이며, 우리가 닮고 싶어 했던 스승이자 친구다. 이러한 회상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강력한 '셀프 힐링'이자, 메마른 인성에 수분을 공급해 주는 치유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는 “사월의 노래”와 함께 들으면 더욱 기막힌 정서를 자극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두 서사가 어우러지는 정서는 어찌 뭉클하지 않겠는가?

 

​목련은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겨울 내내 털옷(꽃눈)을 입고 추위를 견딘다. 그리고 단 일주일의 화려한 개화를 위해 1년을 기다린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너무 성급하고 조바심만 자극한다. 하지만 목련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가르친다. 이 꽃은 아이들의 잠재력이 꽃피울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겨울 꽃눈' 같은 인내의 부모와 스승의 역할을 요구한다.

 

목련의 낙화(落花)는 처연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떨어진 꽃잎은 거름이 되어 내년의 더 큰 개화를 준비한다. 실패와 좌절을 '끝'이 아닌 '다음 성장을 위한 양분'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4월의 중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보자. 엄정행의 '목련화'를 다시 찾아 들어보자.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뻗어 나가는 고음은 억눌린 감정의 통로를 열어줄 것이다.

 

또한 목련의 흰 빛깔은 심리학적으로 '정화'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단 몇 분간만이라도 가만히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전두엽은 휴식을 취하며 일상의 다음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목련을 보면서 그리운 이에게 짧은 안부 편지나 문자라도 띄워보자. 그것이 하늘에 닿든, 혹은 닿지 못하는 글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내면의 상처를 봉합하는 강력한 치유제가 될 것이다.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 가곡 '목련화'의 마지막 노랫말처럼, 교육과 삶의 본질은 결국 '값있게 살아가는 삶의 개척'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는 데 있다. 목련꽃을 보며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젊은 베르테르와 세월호의 슬픔과 함께, 전화위복이 되어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세월은 흘러 청춘의 외양은 변했어도, 우리 가슴 속에 심어둔 목련꽃은 여전히 고결한 향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퇴근길, 혹은 산책길에 눈 앞에 펼쳐지는 목련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보자. "너도 참 애썼구나, 나도 잘 견디고 있단다"라고 말이다. 다시금 가곡 ‘목련화’의 노래가 그리워진다. 역사적으로 출발은 한 대학교의 개교 기념을 하기 위해 교정에서 있었지만 그 울림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해 결코 작지 않은 노래 ‘목련화’가 되었고, 지금도 우리의 봄 속에서 다시금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밤에 피는 목련꽃은 등불처럼 더욱 아름답다. 날로 피폐해지는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도 4월의 봄날에 목련꽃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것이 바로 이 4월의 찬란한 봄, 우리가 받아야 할 가장 따뜻한 교육이자 최고의 치유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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