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교육 현장의 붕괴 징후가 결국 차가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이 발표한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전국 일반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1만8661명 중 고교 1학년생이 무려 1만450명(5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고1 자퇴생 수가 1만 명을 돌파한 것은 우리 교육 역사상 최초이자, 대단히 충격적인 신호탄이다.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교복을 입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수많은 아이가 학교 울타리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이들의 자퇴가 학업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대로 우리 교육은 괜찮은 것인가?
이러한 기현상의 중심에는 교육부가 내신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전면 도입했던 ‘내신 5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입시 현장에서는 상위 10%인 ‘1등급’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이나 의대 진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공포 마케팅이 작동했다. 첫 중간고사에서 삐끗해 2등급(상위 34%)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검정고시와 수능 올인이라는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조기 탈학교’ 현상은 부모의 경제적 지지 기반이 탄탄한 경기 지역 비평준화 명문고나 서울 강남·서초구 등 이른바 ‘특급 학군지’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공교육의 평가 체제가 아이들을 포용하기는커녕,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의 입시 다이어트 수단으로 전락하며 공교육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서 바라볼 때, 고1 시기는 청소년기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타인과의 연대감을 배우는 가장 소중한 사회화의 골든 타임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1 교실은 ‘낙오하면 끝장’이라는 극단적인 승자독식의 전장(戰場)이 되었다. 과거 9등급제 시절에는 후반전에 역전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었지만, 5등급제 체제에서는 초반 한두 번의 실수가 회복 불가능한 주홍글씨가 된다. 결국, 아이들에게 학교는 배움과 우정을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지면 언제든 탈퇴해 버리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나 ‘학원’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다.
2500년 전 인류의 스승 공자(孔子)는 정치의 요체를 묻는 제자에게 백성의 신뢰를 뜻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했다. 오늘날 이 엄중한 경고는 우리 공교육 시스템을 향하고 있다. 평가 제도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학교가 학생을 붙잡아둘 명분과 매력을 잃어버렸다면 그 교육 기관은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댄 조기 자퇴와 검정고시 행렬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고 부의 대물림을 고착화하는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비정상적인 폭주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교육 제도의 판을 바꾸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고1 아이들을 교실로 다시 불러들이고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대입 구조와 평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첫째, 대입 전형에서 ‘정시 검정고시 패널티’ 및 ‘학생부 반영’ 의무화를 숙의할 필요가 있다. 학교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자퇴 후 검정고시를 치르면 내신 감점 없이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입시 공학적 허점 때문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시(수능위주전형) 선발 시 고교 학생부(출결, 교과 이수 현황 등) 반영을 전면 의무화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대와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이 정시에서 학생부를 반영하기 시작한 조치는 유의미한 신호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당한 사유(질병 등)가 없는 고교 중도 포기자가 검정고시를 통해 대입에 지원할 경우, 일정 비율의 감점을 부여하거나 수능 성적을 내신 등급으로 환산하는 등의 페널티 제도를 헌법 테두리 내에서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학교를 지키고 끝까지 노력한 성실한 학생이 입시에서 결코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제도적 신뢰를 주어야 조기 자퇴 행렬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내신 2~3등급을 구제하는 ‘대학별 학생부 종합전형’의 다변화를 설계해야 한다. 현재의 자퇴 열풍은 “1등급이 아니면 인서울은 끝”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대학들은 내신 5등급제 체제 하에서 단순히 1등급이라는 정량적 수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2등급이나 3등급을 받았다 하더라도 학교 안에서 과목을 선택하고 심화 탐구 활동을 벌인 과정을 심층 평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1등급 탈락자가 곧바로 대입 탈락자가 되지 않도록 평가의 외연을 넓혀줄 때, 아이들은 첫 시험의 실패에 좌절하여 자퇴서를 만지작거리는 대신 2학년, 3학년의 수업에 다시 몰입할 동기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학교 내부 평가의 ‘논·서술형 절대평가’ 전환과 고교학점제의 완성을 서둘러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었음에도 내신을 상대평가(5등급)로 산출하는 모순이 지속되는 한, 학생들은 인원 수가 많아 등급 따기 유리한 과목으로만 쏠리고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교 내신 체제를 단계적으로 전 과목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전환하고, 평가 방식을 전면 논·서술형 및 과정 중심 평가로 혁신해야 한다.
단순히 객관식 문제 한두 개 실수로 등급이 갈리는 얄궂은 상대평가의 굴레를 벗겨내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주도적으로 이수하고 그 성취도를 절대적으로 인정받는 구조가 정착될 때, 학교는 비로소 ‘입시 공장’이 아닌 ‘진정한 배움터’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1만 명 이상의 고교 1학년 아이들이 대입 전략상 교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아이들이 자퇴를 결심하며 던지는 질문은 우리 기성세대와 교육 당국을 향한 뼈아픈 고발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이 교실이 제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선행학습과 부모의 재력으로 무장한 채 고1 첫 시험의 결과에 따라 학교를 쇼핑하듯 탈퇴하는 무한 경쟁의 폭주를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 교육 제도의 설계자들이 책상 위에서 만든 5등급제가 현장에서 어떤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직시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소를 잃었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입시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뜯어고치고 공교육의 외양간을 튼튼하게 다시 짓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교육이라는 집 전체가 통째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공교육의 신뢰인 '무신불립'을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 1만 명 이상의 고1 자퇴생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경고이자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