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면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막장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특히 2030 세대의 정치적 우클릭 현상을 두고 깨어있는 기성세대의 한숨과 우려가 깊다. 실제로 한 언론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20대의 75%, 30대의 70%가 우익 성향의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은 거대 여당의 강력한 입법 조치를 기득권의 독재나 권력 남용으로만 본다”라거나, “과거 혹독했던 독재 시절과 무법천지, 심지어 계엄의 공포를 겪어보지 못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폄훼한다”며 혀를 차기도 한다.
이렇듯 갈수록 2030 세대들이 좌파 정부를 향해 구시대의 구호인 ‘빨갱이’, ‘멸공’이라는 투박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이 왕년의 7080 극우 보수층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는 날카로운 탄식도 들린다. 젊은이들의 서툰 정치의식을 바라보며 매를 들고 싶은 깨어있는 기성세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강제로 고개를 돌리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응시하는 곳을 돌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2030 세대의 이 기울어진 정치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한 획기적인 ‘정치 교육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정치 교육은 오랫동안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니라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 있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처럼, 청년들에게 “좌파냐 우파냐”, “개혁이냐 안정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해 온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최루탄 가스 마시며 민주주의를 쟁취했어!”, “라떼는 말이야, 밤낮없이 일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어!” 기성세대가 각자의 찬란한 ‘라떼 이야기’를 주입할 때, 스마트폰 화면 속 알고리즘은 2030 세대의 귓가에 속삭인다. “네 말이 맞아. 저들은 독재자고 빨갱이야.” 결국 청년들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깊은 사유 없이, 눈앞의 자극적인 숏폼 영상과 일부 극우 커뮤니티의 논리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자신만의 단단한 ‘확증 편향의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의식의 장벽을 허무는 비법은 첫째, 학교 교육에서 ‘정치적 다양성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부먹’과 찍어 먹는 ‘찍먹’만 있는 게 아니라, 주방에서 소스와 고기를 함께 볶아 나오는 ‘볶먹’의 미학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진보의 정책 내에도 보수적 가치가 녹아 있을 수 있고, 보수의 가치 안에도 진보적 대안이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융합형 토론 교육이 시급한 이유다.
현재의 2030 세대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스크럼을 짜던 새벽의 시대를 살지 않았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민주주의는 이미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평소에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사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너희는 독재와 계엄의 무서움을 모른다”고 다그치는 것은, 평생 에어컨 바람만 쐰 아이에게 “보릿고개의 추위를 기억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이해하지 못하는 과거의 서사를 주입하기보다,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일상의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결핍’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체험형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모의 의회’나 ‘시민 참여 예산제’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독단적인 권력이나 다수의 횡포에 의해 단칼에 묵살당하는 경험, 반대로 치열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대를 설득해 내는 짜릿한 승리의 경험을 맛보게 해야 한다. 이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내 의견이 무시당할 때의 억울함과 이를 바로잡는 절차 속에서 몸으로 깨닫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본 청년은, 특정 정당의 선동이나 단편적인 ‘멸공’ 프레임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필터’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2030의 우익화와 정치적 극단화를 부추기는 가장 큰 주범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AI 알고리즘’이다. 보수 성향의 영상을 한 번 클릭하면 유튜브는 밤새도록 보수 채널만 추천하고, 진보 영상을 보면 진보 채널만 띄운다. 이는 생각의 편식을 유도하는 디지털 배달 서비스인 셈이다.
셋째, 편중된 정치의식을 타파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디지털 전환’이다. 이제 교육은 아이들에게 어떤 뉴스가 옳은지 정답을 골라주는 판사 노릇을 그만두어야 한다. 대신 AI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고, “왜 내 화면에는 이런 뉴스만 뜰까?”라는 의심을 품게 하는 ‘깨어있는 관찰자(분석가)’로 길러내야 한다. 핀란드 교육은 이를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부터 철저하게 실시하는 것으로 지상파 방송은 보도한 바가 있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특정 정치 이슈를 두고 진보와 보수 매체의 기사를 AI로 동시 분석해 보거나, 서로 반대 성향의 커뮤니티 글을 읽고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서평을 쓰는 수업은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내가 철석같이 믿었던 이념과 반공 프레임이 사실은 정교하게 설계된 미디어 샌드위치의 한 조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청소년들의 시야는 비로소 진영을 넘어 넓고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적 취향은 변할 수 있지만, 맹목적인 추종과 왜곡은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 2030 세대의 거친 우클릭 행보를 ‘철없는 철부지의 반항’이나 ‘구시대 보수의 부활’로만 바라보며 손가락질하기에는, 그들이 짊어진 미래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이제 기성세대와 교육계는 청년들을 향해 비난의 삿대질을 거두고, 따뜻한 배려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청년들이여, 빨갱이(좌빨)와 독재라는 낡은 단어장에 갇히기엔 여러분의 청춘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눈앞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서 반사이득만을 노리는 기성 정치인들의 정치 놀음의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현상에서 벗어나고, 알고리즘이 쳐놓은 생각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길 바란다. 진보와 보수라는 좁은 프레임을 부수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그라운드에서 여러분만의 멋진 정치와 삶의 철학을 정립해 보길 바란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거친 정치를 넘어, 서로의 다름을 유쾌하게 인정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치열하게 논쟁하는 청년 민주시민들,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이 마주할 가장 찬란하고 완전한 민주주의의 미래라 할 수 있다. 교실과 광장에서 이념의 벽이 무너지고 건강한 상식이 살아 숨 쉬는 그날을 향해, 우리 교육이 힘찬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