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발표된 2026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피해 응답률은 2.9%로 조사 이래 가장 높았다. 이는 2020년의 세 배가 넘는 수치이며, 초등학생은 무려 5.7%에 달했다. 전년도에 비해 신체 폭력과 집단 따돌림 비중도 늘었다. 반면 가해 응답은 줄었다. 가해 이유 1위는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였다. 맞은 아이는 폭력으로 기억하고, 때린 아이는 장난으로 기억한다는 뜻이다.
‘합의’라는 단어에 숨겨진 그늘
온라인 미디어에서 비롯된 ‘야차룰’은 보호장구나 규칙 없이 맨몸으로 맞붙는 길거리 격투 방식을 뜻한다. 학생들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거나 구두 합의를 맺은 뒤 공터나 주차장 등에서 주먹을 휘두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를 지켜보는 무리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SNS에 올려 조롱거리로 만들거나, 패자에게 굴욕감을 주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로 동의하고 한 대결인데 왜 학교폭력인가요?”라고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착각이자 위험한 합리화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야차룰은 결코 ‘합의된 대결’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또래 집단의 암묵적인 위계와 권력관계, 그리고 대결에 응하지 않으면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보이지 않는 강요’가 깔려 있다. 거절할 권리가 실질적으로 박탈된 상태에서의 동의는 합의가 아니라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와 야차룰 현상을 통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폭력의 놀이화’ 현상이다. 청소년들은 미디어가 자극적으로 연출한 폭력적 장면을 모방하며, 일종의 서열 게임이나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는다. 죄책감은 ‘합의’라는 위장막 뒤로 숨고, 구경꾼들은 ‘방관자’가 아닌 ‘관중’이라는 편리한 지위를 취한다. 그러나 현행 법률과 판례는 싸움을 부추기거나 자리를 지키며 망을 보고, 영상을 촬영해 유포하는 사람도 명백한 ‘공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계를 세우는 3가지 지도
야차룰을 비롯한 신종 폭력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첫째, ‘합의의 환상’을 깨뜨리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예외 없이 학교폭력이라는 원칙을 학급 조·종례 시간 등을 통해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 장난의 기준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자. 둘 다 웃고 있는가, “그만”이라고 하면 바로 멈추는가, 서로의 역할이 바뀌어도 괜찮은가. 하나라도 '아니오'라면 그것은 장난이 아니다.
둘째, 방관자에 대한 경고와 지도가 병행돼야 한다. 싸움을 촬영하고 부추기는 행위 역시 가해 행동이 될 수 있음을 교육하고, 위험 징후를 감지했을 때 즉각 신고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찍지 않기, 퍼뜨리지 않기, 자리를 떠나 어른에게 알리기, 피해 친구 곁에 서 주기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익히게 하자. 또래 눈치가 보이는 아이를 위해 익명으로 알릴 수 있는 창구도 함께 마련하면 좋다.
셋째, 가정과의 긴밀한 연계다. 야차룰은 학교 밖 사각지대에서 방과 후나 야간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신체에 든 멍 자국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SNS나 단체 대화방에서 격투기 영상이나 싸움 약속이 오가는지 학부모가 민감하게 살필 수 있도록 안내가 병행돼야 한다.
폭력은 언제나 취약한 틈을 파고들어 교묘하게 형태를 바꾼다. 자극적인 영상과 야차룰이라는 변종 문화가 아이들의 교실을 위협하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로 가장한 폭력을 합리화하며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강요’가 ‘합의’라는 이름으로 오남용되지 않도록 경계를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 바로 이번 실태조사의 엄중한 결과를 받아 든 교육 현장이 교실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이다.

김경애
서울신월초 교사
현 서울교육청
학폭예방 컨설팅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