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이들의 인생을 소설로 엮는 교육을 해보자

2026.10.20 09:23:55

매년 ​가을이 되면 문득 마음이 작아지고 헛헛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강원도 평창의 봉평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입맛을 돋구는 전통 메밀국수 한 그릇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소금이라도 잔뜩 뿌린 듯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밭 위에 달빛이 쏟아지면 방문객 누구나 숨을 멈추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금’과 ‘솜사탕’ 사이, 그 찬란하고도 애틋한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효석 문화제'는 우리에게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장돌뱅이 허생원의 낡은 메밀국수 한 그릇, 그리고 봉평 장터에서 대화 장터로 넘어가는 밤길, 그 길 위에서 피어나는 인연과 삶의 우여곡절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우리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문학은 이처럼 삶을 예술로 바꾸고, 평범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숭고한 서사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 가을, 메밀꽃 향기 속에서 떠올리는 하나의 질문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가장 깊은 곳을 파헤치게 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스스로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인가?”

 

이효석의 문학 《메밀꽃 필 무렵》은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국어 교육과 인성 교육의 가장 굳건한 기둥의 하나가 되었다. 교과서 속에서 만난 그의 문장은 아이들에게 단지 시험 문제의 지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학적 창작을 넘어 현실 속에서 삶을 대하는 진심과 열정, 그리고 자신만의 서사를 특색있게 구성하고자 하는 감수성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그 몇 가지 정서를 공유해 보자.

 

​첫째, 서정적 문장과 서사적 감수성의 진수를 심어준다. 이효석의 문체는 한국어 표현력의 한계를 극대화했다. 자연과 인간, 풍경과 심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의 서경(抒景)은 학생들에게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과 미학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소중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둘째, 삶의 비극성과 삶을 견디는 숭고함을 가르친다. 장돌뱅이들의 고단한 삶, 평생 단 한 번의 인연을 품고 살아가는 허생원의 외로움은 아이들에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공감의 깊이를 더해준다. 결국 인생이란 화려한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굽이굽이 휘어 있는 산길을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임을 이 소설은 말없이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의 문학 교육은 종종 이효석의 작품을 ‘시험을 위한 정답 맞히기’로 가두기도 했다. 메밀꽃이 왜 '소금‘으로 비유되었는지, 충주집에서 허생원이 동이를 왜 때렸는지를 단답형으로 외우게 했던 교육은, 아이들이 문학 속에서 나’를 발견할 기회를 빼앗곤 했다.

 

그렇다면 오늘, 왜 우리는 다시 진정한 문학 소년·소녀가 될 필요가 있는가?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정답을 빠르게 찾는 인공지능(AI)과 효율성의 시대 한가운데 서 있다. 아이들은 타인이 설계해 놓은 정답지 위에서 타인의 이야기만을 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 아이는 줄어들고, 자신의 삶을 고요히 되돌아보는 아이는 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저 하루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뺑뺑이 속에서 생각 없이 바쁘기만 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삶은 객관식 시험지가 아닌 한 편의 길고 깊은 소설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가을의 봉평 들판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듯,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직조해 보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효석이 허생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슬픔을 아름다운 서사로 승화시켰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기쁨과 슬픔, 상처와 꿈을 스스로의 문장으로 기록하게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짧은 삶을 살아왔어도 자신에 대한 성찰은 맞이하게 될 삶의 노역과 고된 과정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할 지혜를 사전에 갖추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승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학교 교육에서 ​스스로 ‘문학 소년’, ‘문학 소녀’가 되어 펜을 드는 순간, 아이들은 더 이상 세상이 정해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당당한 ‘제1 저자’이자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이효석의 소설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1인 1자서전적 소설’ 쓰기 교육으로 보다 약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교육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가을 선물로 탈바꿈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은 바로 “너희들이 살아온 날들도 한 편의 찬란한 소설이란다”라는 의식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학교와 가정, 그리고 교육 공동체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시도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일명 “1인 1자서전적 소설 쓰기 프로젝트”라 부르자.

 

먼저 아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방황, 친구와의 갈등, 열등감과 실패의 기억 등등 삶에서 겪은 많은 소재를 소설의 구성 요소로 재구성하게 해보자. 자신의 상처를 문학적 소재로 다루는 순간, 어떤 아이는 상처의 ‘피해자’에서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창작자’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허생원이 나귀의 굽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넘어갔듯, 아이들도 자신의 결핍을 끌어안고 삶의 다음 장으로 걸어 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가을빛이 더욱 짙어지는 이 계절, 다시금 봉평의 흰 들판을 떠올려본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가는 일, 그것은 단순히 글짓기 과제를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나온 발자국을 온전히 사랑하고, 다가올 삶의 페이지를 주체적으로 써 내려가겠다는 인생을 향한 가장 숭고한 고백이 될 것이다.

 

청명하고 높아진 하늘을 향해 교실의 창문을 열고 가을바람과 함께 느껴보자. 그리고 아이들 각자의 손에 펜을 들게 하고 말해 보자. “얘들아, 너희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구나. 너희가 걸어온 그 길, 너희가 만난 사람, 너희가 흘린 눈물에 대해 진심을 터놓고 써보지 않을래” ​

 

우리 아이들 모두가 문학 소년, 문학 소녀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각자의 굴곡진 삶의 궤적과 그때그때의 정서적 상태를 적어 내려갈 때, 우리의 교육은 AI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저마다의 사고와 지혜, 그리고 순수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교육’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버킷리스트’의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바로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가을 하늘 밑의 평창 들판처럼, 자신이 찾았던 모든 곳마다 알알이 맺힌 개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할 또 하나의 멋진 소설의 첫 문장을 이끄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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