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무릎꿇은 영의정

2005.04.08 09:17:00

훈장님께 볏섬지원 보내고 혼쭐나

틀리게 내린 비


미국의 한 지방 기상대에 깐깐한 예보관이 있었다. 내일은 쾌청하다는 예보를 하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억수같이 비가 퍼붓고있었다. 잇달은 항의에 이 예보관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밤의 천기도로는 비는 절대 내리지않는다. 그런데도 내린 비가 틀리게 내렸다”고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우겼다.
좀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나 이 틀리게 내린 비는 배심 재판에까지 제소되어 철학교수들이 판단할 문제로 기각되었다. 그후 “틀리게 내린 비”하면 소신을 갖고 현실에 굴하지 않은 고집과 기개를 뜻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고사가 있다. 옛날 서당 훈장은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편지도 써주고 제사날 축문도 써주고 이사하는 날 장담그는 날받이도 해주어야하는 문화센터였다.


어느 날 훈장은 어머니 제사에 축문을 써주었다. 한데 업드려 읽다보니 장모 제사에 읽는 축문을 잘못 써준 것이다. 새로 써달라고 하자 이 훈장 휭 돌아 않으며 하는 말이 “야 이 사람아 자네 장모가 틀리게 죽었지 내가 틀릴 리가 있나”했다. 훈장의 부당한 고집을 꼬집는 우스개 이야기이긴하나 자신의 직책에 그만한 고집과 소신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틀리게 죽은 장모”하면 권세 금력 폭력 등 현실에 굴하지않고 불이익을 고사하고 깐깐하게 버티어내는 기개를 빗대는 말이 되었다.


선조때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은 혼조삼신(昏朝三臣)이라하여 임진왜란이 몰아온 국난을 구제해낸 재치있고 덕이 많은 한국사상 손꼽는 정치가다. 그의 영의정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정청에 앉아있는데 전갈이 들기를 어느 누더기옷 입은 누추한 노인 한분이 문전에서 이덕형 대감을 만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누추한 백성이면 대감에게 물어보기도전에 내쫓아버리는것이 관례지만 이덕형 대감만은 그러하지못하도록 분부가 삼엄했었다. 어디 사는 누군가를 확인하더니 대감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놀랐다.

이덕형과 스승


이덕형은 신발도 신지않고 달려갔다기도 하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갔다기도 한다. 황급하게 달려갈때 신발을 거꾸로 신고 간다고 한다. 정청의 합문밖까지 달려나아가 이 누추한 노인을 정중히 모셔 안에 들게하였다.


앉으려하지 않는 것을 굳이 상석에 앉혀놓고 정승의 복장인 관대와 조복을 벗고 흰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정중하게 업드려 절을 하는데 허리를 들지않았다.


이 누더기 두루마기의 촌로는 다름아닌 이덕형의 소시적에 배운 서당의 훈장님이셨다. 이를 본 주변의 아전들은 입을 벌려 다물지 못하고 선비들은 감복하여 얼굴을 오래 들지못했다한다. 이 스승이 떠날때 이덕형은 옛 은공에 보답하는 뜻으로 볏섬을 지워 딸려보내자 황급하게 되돌아온 이 누더기 노인은 호령을 하여 영의정을 무릎 꿇려 앉히고는 호령을 했다. “내가 가르치지않은 일을 하고있으니 앞으로 나를 스승으로 부르지 말라”하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끼니를 못잇는 누더기 스승에의 정표인데도 사도에 이토록 완강했던 우리들의 선조였다. 틀리게 죽은 장모정신의 아름다운 구현을 여기에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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