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앉은뱅이 효자

2005.05.20 16:35:00

입시위주교육이 빚은 병폐와 흡사


 

弘박사와 藝학사
앉은뱅이 효자라는 우리 전래의 우스갯 이야기가 있다. 도덕군자인 아버지가 임종에서 자신이 지켜온 법도를 조금도 어기지 말고 이어받으라고 유언을 했다. 이 아들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아버지가 물려준 이불을 덮으면 다리가 이불 밖으로 뻗어나가곤 했다.
이 효자는 이불을 넓힌다는 것은 아버지의 법도를 어긴다 하여 무릎을 굽혀 얽어매고 잠을 자곤 하였기로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희랍신화에도 틀에 사물을 두들겨 맞추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이야기가 있다. 대도(大盜)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잡아오면 자신의 침대에다 뉘어놓고 꽁꽁 묶는다.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침대 길이만큼 늘이고, 길면 다리를 잘라 침대 길이에 맞추곤 했던 것이다.
어느 기준에 난폭하게 두들겨 맞추려는 어리석은 행위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비유했다. 조선조 중기 어느 한 때, 선비는 원리원칙에 준한 교조적이어야 한다는 학파와 세정 인정에 절충적이어야 한다는 학파가 대립된적이 있었다.
전자를 홍문관 학사들이 주로 주장했기에 홍학(弘學)이라하고 후자를 예문관 학사들이 주로 주장했기에 예학(藝學)이라 했으며, 선비의 인격형성이나 교육에 은연중에 영향을 미쳐온 교육철학이었다 할 수 있다.
후세에 이르러 학문에 구애받아 앉은뱅이 효자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같은 인생을 빗대어 홍학사라 일컬었고, 학자연하고 동가식 서가숙하며 놀기나하고 매문이나 무기력한 학자를 예학사라 비꼬았다.

「壯元」정승 희귀
이같은 분류는 입시위주의 교육 명문교 위주의 사회구조가 판치고있는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들어맞고 있으며, 인간형성에 우려를 던져주는 교육암(敎育癌)이 아닐수 없다.
매사에 똑똑하고 영리하여 조금도 손해볼 일을 하지 않는 정치가나, 이해타산에 바늘 하나 들어갈 만한 허점이 없는 경제인이나, 남의 집 부러진 숟가락 있는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있는 영악한 부인이나, 국어도 잘하고 산수·영어·과학·미술·체육까지도 올백인 학생은 과기대 때문인지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다.
여덟 가운데 하나쯤 어리숙하고 아둔하며, 이따금 얼빠지기도 한 그런 허점이 조금씩 있는 사람이 매력도 있고 세상도 재미있게 하며, 또 성공도 잘하는 법이다.
모든 공부를 빈틈없이 잘해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면 그 모두가 정승이 될 것이지만, 고려(高麗) 4백70여년 동안 장원급제해서 정승이 된 사람은 유량(柳亮)과 맹사성(孟思誠) 단 두 사람 뿐이며, 조선조 5백년 동안에도 정인지(鄭麟趾), 권람(權擥), 최항(崔恒), 홍응(洪應) 겨우 네사람 뿐이다.
장원급제(壯元及第)를 둔 주변의 고정관념이나 기대 때문에 그 좋은 재능이 피지 못한 것이다.
대입 학력고사에서 3백점 이상 득점자를 마치 스포츠나 연예계의 스타처럼 교수들이 돈 보따리로 유혹하며 스카우트를 했다던데 어느 한 인생을 학력점수(學力點數)로 상품화하고 자만심을 높여주는 비교육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3백점하면 장원급제(壯元及第) 처럼 고정관념과 과분한 기대 때문에 그 좋은 재능을 자칫 피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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