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당훈장의 생활

2005.07.04 09:05:00

대체로 가난…쌀둬가마로 겨울나기

상소문에도 등장


옛날 스승은 관학훈장과 사학훈장으로 구분되는데 관학의 경우 교수(敎授) 또는 훈도(訓導)로 불리었다. 품계로 따져보면 큰 고을에서는 6품 벼슬로 군수나 현감보다 2품이 낮았지만 작은 고을에서는 가장 말단인 참봉과 같은 9품이었다. 품계도 낮은데다가 글을 가르치는 고귀한 일에 돈이라는 실리적 타산이 개입돼서는 불순하고 좋지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스승들의 벌이는 형편없었다.


정승 김육(金堉)의 상소문에 보면「모든 훈도가 녹을 받지못하고 있기에 성심껏 가르칠 수가 없다」는 대목이 있는것으로 미루어 품계에 맞는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다.


시골에 산재 돼 있던 서당이 바로 사학이다. 훈장 자신이 자영하는 서당이 있고 가문에서 가문 자제를 위해서 세운 가문 서당이 있으며 뜻있는 사람끼리 일정액을 추렴하여 서당계(書堂契)를 맺고 그 계원 자녀 위주로 가르치는 서당이 있으며 마을의 주민 약속인 항약(鄕約)에 준하여 마을 돈으로 영위하는 서당 등이 있다. 그러했기로 서당 훈장의 수입은 설립원의 재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보편적인 관례를 보면 아이를 맡긴 집에서 추곡 수확철에 쌀 한말, 하곡 수확철에 쌀 보리 한말 그리고 겨울에 장작 한짐이 소위 서당 수업료다. 서당 아이수가 20여명은 되므로 쌀 두어 가마니 갖고 겨울을 나야했으니 빈한하기 짝이 없다.


수시로 책씻이(洗冊)라는 잔치가 자주 있었는데 자녀가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을 떼면 이를 축하하여 시루떡을 쩌 서당에 보내어 아이들로 하여금 나누어 먹게하고 닭 한마리 삼고 술 한병 받아 스승을 위한 상을 따로 차려 보낸다. 책씻이는 일괄적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베푸는 것이기에 비교적 잦은 향응이 되었다. 부수입으로 부모들이 매질하여 가르쳐 달라고 보내준 싸리 회초리 쓰고 남은 것을 모아 싸리 비를 엮어 장에 내다 팔았다. 이 서당 싸리비를 미리 감안하여 많은 분량의 회초리를 꺾어다 주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눈물값」부수입


훈장의 부수입으로 누대(淚代)-곧 눈물값이라는게 있었다. 옛날에는 온마을이 문맹인지라 객지에 나간 아들딸로부터 편지가 오면 이를 읽어 줄 사람은 훈장밖에 없기에 서당을 찾아간다.


훈장이「아버님 어머님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나이까」하고 감정을 넣어 읽으면옹야「옹야 일향 만강하제」하며 울먹이다 울음을 터뜨리곤 한다. 이렇게 편지 읽어주고 편지 써주는 대가로 받는 곡식 몇되를 눈물값이라했던 것이다.


또 이사하고 장담그는 날 택일도 서당 훈장 몫이요 제사에서 지방 써주는 일도 훈장 몫이다. 곧 문화대서방으로서의 훈장 역할도 컸으며 이에 대한 대가도 훈장의 부수입이었다.


대체로 가난했기에 물질보상보다 노력 보상이 많았기에 작은 논농사나 밭농사는 손에 흙 한번 안묻히고 지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계란이나 감자 고추 호박 등 부식거리로도 보답했기로 먹고 남은 것을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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