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석유, 천연가스 부존 가능성 제기로 분쟁 시작
중국의 일방적 영유권 주장으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
6개국 걸친 국제분쟁, 무력 충돌은 중·베트남간만 발생
해양자원 공동개발 이해 일치하면 평화적 해결 여지도
20세기 이후 해양 영유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국에서는 장기적인 해양 전략을 통해 자국의 해양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이 전개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육상의 국경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지만, 해양의 영유권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비화되어 상대국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 구실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역사적인 이유로 특히 민감하다. 즉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식민지, 반식민지 상황의 경험으로 상호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 특히 해양 영토분쟁은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고 당사국 사이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상호 불신과 민족 감정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 해양 영유권 분쟁의 특징은 중국과 여타 국가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남중국해의 동사, 중사, 서사, 남사군도와 각 국과의 거리 (자료출처: www.enanhai.com) |
남중국해는 북쪽으로 중국, 대만, 동쪽으로 필리핀,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서쪽으로 베트남에 접해 있다. 남중국해에는 동사(東沙, Pratas), 중사(中沙, Macclesfield Bank), 서사(西沙, Paracels), 남사(南沙, Spratlys)군도 등 4개 군도가 있다. 남중국해의 분쟁은 4개 군도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으나 가장 복잡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남사군도이다. 동사, 중사, 서사군도는 중국의 관할 아래 있지만, 남사군도는 중국과 동남아 여러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으로 아주 민감한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명칭도 동남아시아 각국이 각기 달리 표기하고 있는데, 영문으로는 Spratlys, 중국에서는 남사군도, 베트남에서는 Trong-Sa(長沙)군도로 표기하고 있다. 73만㎢의 남사군도는 남중국해 남단에 위치한 해역으로, 약 100여개의 작은 섬, 모래 섬, 환초, 암초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해상 위에 돌출해 있는 섬의 총 면적은 2.1㎢에 불과하다.
남사군도에 대해서는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및 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그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이 주요한 분쟁 당사국이다. 중국, 대만, 베트남은 남사군도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다른 분쟁 당사국은 일부 수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유엔 해양법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형성된 지형물은 섬이 아니며, 만조 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섬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사군도에서 브루나이를 제외한 모든 분쟁 당사국들이 섬이 아닌 암초와 같은 지형물까지 점령하고, 여기에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 운영하면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사군도 영유권에 대한 각국의 주장을 보면 먼저 중국은 역사적 이유를 들어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한(前漢) 때 남사군도를 발견했고, 송대(宋代)에는 석당(石塘), 장사(長沙) 등의 지명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 기록에 무수히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중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명칭만 기록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영유의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47년 중국은 9개의 불명확한 점선이 표시된 지도를 발행했고, 이 점선 안의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 대만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f)에 의거 일본은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대한 일체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 지배권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거 ‘당연히 중국(대만)에 환원’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으로부터 서사군도를 빼앗아 해남도의 일부로 편입했다. 또 남사군도의 7개 섬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1992년 중국 영해법으로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선언했다. 대만은 중국의 주장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1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베트남은 역사적 증거 및 대륙붕 원칙에 입각하여 남사군도 전체가 자국의 칸호아성 근해지역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17세기 남사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영유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공식 지도에 표기된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면서 1933년부터 1939년 사이 남사군도 가운데 9개 섬에 대해서 실질적인 지배와 점유를 유지하고 1933년 공식기록에서 이들 섬의 영유권을 명시한 것을 근거로 베트남은 남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남사군도의 29개 섬을 점령하고 있으며 1974년 중국에 빼앗긴 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위치상의 근접성과 함께 1956년 필리핀인에 의해 탐사가 이루어진 사실에 입각하여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하고 있다. 1971년 필리핀은 칼라얀이라고 부르는 8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섬들은 남사군도의 일부가 아니며, 어느 나라에도 소속된 적이 없으며, 영유권이 주장된 적도 없다고 밝혔다. 1972년 필리핀은 이 섬들을 팔라완주로 편입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대륙붕 원칙에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의 대륙붕 지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5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본토에서 운반한 흙으로 1개 환초를 매립하고 이곳에 호텔을 지었다.
브루나이는 분쟁 당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어떤 섬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일부인 자국에 인접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84년 브루나이는 루이자 산호초 지역을 포함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는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없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이 주장하는 해양 경계선이 인도네시아 나투나 가스전이 포함되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까지 연장되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남사군도 영서초(永署礁) 만조 때는 0.6m만 수면 위에 드러나는 암초. 중국은 여기에 인공 섬을 만들고 헬리콥터 착륙장과 해양기상 관측 기지를 건설, 40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300m 길이의 부두시설까지 갖추었다. (자료출처: www.nansha.org.cn) |
1970년대 이전에는 남사군도의 영유권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으나 이 지역에 석유, 천연가스의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중국이 1974년 1월 남베트남 관할 하에 있던 서사군도의 일부 섬을 점령하여 서사군도의 전 지역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남사군도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중국은 남사군도로 적극 진출하여 1988년 3월 남사군도 적과초(赤瓜礁, Johnson Reef)에서 중국-베트남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분쟁이 발생했다. 이 사건 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어선 조업 및 석유 시추활동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외교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일대를 지배해 왔었다고 하는 자부심이 있다. 이러한 자부심과 결합되어 중국은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이 중화주의의 실현에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 전략은 단순히 해상 방어의 차원을 넘어서 해상 자원의 이용과 개발을 통해 동아시아 해상의 지배권을 차지하는데 있다. 남사군도 분쟁에서 중국은 실효적 지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설물을 설치하여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영유권 주장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즉 조어도 문제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조어도를 강탈했다고 비판하면서,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로 자신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근대 이전 조공국이었던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해 종주국의 권리까지 내세워 남사군도의 일부를 강점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이중적 태도는 중화주의적 패권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중국의 교육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교과서에는 남중국해 전체를 중국 영토의 경계선 안에 포함시켜 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 사회교과서(歷史與社會, 7年級, 上冊)에는 중국 영토의 최남단을 남사군도 증모암사(曾母暗沙, James Shoal)로 기술하여 이것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어도 영유권에 대한 애매한 서술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다. 나아가 교사용 지침서에는 영토 교육을 통해 중국은 거대한 국가이고 영토는 신성불가침한 것임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국가주권 의식을 심어주라고 기술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처음에는 중국과 베트남 등 개별 국가 사이의 영토분쟁으로 진행되었으나 1992년 중국이 남사군도 전체를 자국의 영토로 귀속시키는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국제법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은 아세안 각국에서 중국의 패권주의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었다. 또한 베트남이 1995년 아세안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고, 아세안이 이 지역 분쟁의 중재자로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면서 국제정치상의 공식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국의 주요 무역항로인 말라카 해협-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사군도는 한국에도 전략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이 분쟁이 국익뿐만 아니라 중국, 아세안과의 국제관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쟁의 해결방향은 우리에게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6개국에 걸친 복잡한 국제 분쟁이지만 실제적인 무력 충돌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만 발생했고, 향후 분쟁이 재연될 경우 주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 3개국의 분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분쟁 당사국들은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와 평화적 해결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남사군도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자 아세안에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사군도 공동개발안을 제시했다. 최근 남중국해 분쟁의 이해 당사국들은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을 포함하여 일부 유럽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자원의 다국적 공동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대한 돌파구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계속 논쟁이 되어왔던 인도, 베트남과의 국경문제에서 중국은 상당한 양보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남사군도 문제에서도 중국은 공동 개발을 목표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남사군도는 현실적으로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하기 어렵다. 그리고 남사군도 분쟁은 영토 그 자체보다는 해양자원의 개발과 이용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해양자원의 공동개발이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여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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