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혁신위원회에서 원론적이나마 수석교사제를 도입하여 교내장학 및 멘토교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니 다행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구체적인 시행시기 및 시행방법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교육계 일부에서 수석교사제를 반대하면서, “교직사회가 계급화된다!” “수석교사로 승진 못하는 교사들이 상실감에 빠진다!” “예산 낭비다!”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수석교사제는 현재 관리직 지향의 교사자격체제를 개선하여 교단교사를 우대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이다. 현재 「2급정교사 → 1급정교사 → 교감 → 교장」으로 이어져 있는 우리의 교사자격체제는 교사들로 하여금 ‘좀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직위’로의 승진제도가 아니라, ‘가르치는 일을 벗어나 관리직’으로 진출을 유도하는 승진제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장․교감으로의 승진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어 승진을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교장․교감으로 승진하면 유능한 교원이고, 평교사로 있으면 무능한 교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석교사제를 도입한다고 교직사회가 계급화되거나, 교사들이 상실감에 빠진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대학 교수의 직위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등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서, 이를 계급화되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부교수와 조교수가 상실감에 빠지지도 않는다.
수석교사제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벌써 25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5년에는 당시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에서 정식으로 정책화가 논의되었다. 그러나 ‘예산부족 문제’를 주된 이유로 시행이 지연되게 되었다.
2000년도에 들어서 ‘교직발전종합방안’ 구체화 과정에서 다시 수석교사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이번에는 ‘예산부족 문제’ 이전에 전교조의 반대로 정책화되지 못하고 재검토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교육투자에 소극적인 예산관련 부처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직사회에 내부 분열이 일어났으니, 궁색하게 ‘예산부족 문제’를 거론할 것도 없고, 수석교사제 도입에 대한 정책의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교직사회의 의견통일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게 된 상황이니 말이다.
이제 25년간의 소모적인 논의를 끝내고, 수석교사제를 도입해 한다. 그 동안 수석교사제에 대해 교총과 교육부의 단체교섭 합의, 교육부의 추진 계획, 각 정당의 공약, 교육개발원과 OECD 평가단의 정책 제안, 전경련의 제안 등 공감대가 확산되어 왔다. 수차례 한국교총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교사, 전문가, 학부모 모두가 수석교사제 도입에 대해 찬성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수석교사제 도입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수석교사제 도입을 위한 예산투자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 엄청난 기대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현재와 같이 교사에서 교감․교장으로 가는 길 외에 또 다른 길을 열어 놓아, 교사들이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가르치는 일’ 자체에서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교사들의 사기를 높여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 및 능력을 고려하여 ‘여러 줄 세우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교사들에게도 현재의 ‘교감․교장을 향한 한 줄 세우기’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둘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성실하게 교육활동에 헌신해온 교단교사들에 대하여 긍지와 의욕을 높이고, 교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지위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타 분야에서는 해당 업무에 관한 경륜과 권위를 인정하여 대법관, 대기자, 수석감리사, 기능장 등의 제도가 있다. 이와 같은 제도는 교직에서도 필요하다. 수석교사제의 도입은 교사들에게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며, 나아가 교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셋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교사의 본질적인 업무인 ‘가르치는 일’에 관한 전문성을 심화․촉진할 수 있다. 현재 교사들은 교직경력 3년경과시 1급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은 이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교감․교장으로의 승진을 위한 자격연수 기회는 있으나, ‘가르치는 일’을 중심으로 교단교사로서의 교직 전문성 신장을 위한 체계적 자격연수 기회는 없다. 한 나라의 교육력은 교직전문성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반드시 개선이 있어야 한다.
넷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단위학교 경영체제를 관리․발전시키는 역할의 ‘학교경영직(management)‘과 전문적 교수학습공동체를 형성․발전시키는 역할의 ‘교수직(instruction)’ 간에 상호보완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하며, 학교내 교육력을 높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면 “학교장의 지도력이 약화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학교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장이 학교의 경영 측면과 교수학습 측면 모두에서 완벽한 지도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지도성 독점’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며, ‘지도성 공유(shared- leadership)’, ‘팀 지도성(team-leadership)’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수석교사제 도입에 대해 교장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학교교육을 위하여 힘을 보탤 수 있는 조력자의 출현으로 보고 지혜롭고 포용력있는 지도성 발휘를 기대한다.
다섯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신규교사나 저경력 교사들이 교직 전문성을 인정받은 수석교사로부터 교직 적응과 전문성 신장에 관한 지도․조언을 받을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될 수 있다. 수석교사가 멘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수석교사는 수업장학 참여, 수업기술․방법․자료 개발, 교육과정 개발, 현장연구와 교내연수 지도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교직사회가 교사들간에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敎學相長의 학습공동체’로 발전하는데 수석교사제의 효과가 클 것이다.
여섯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므로써 국가 교육경쟁력을 높이고 국제적 교육발전 추세에 부응할 수 있다. 이미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교직 전문성 신장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수석교사제를 도입․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수석교사와 우수교사, 영국의 상급기술교사와 우수교사, 호주의 최우수교사, 중국의 고급교사, 일본의 우수교원 등 다양한 명칭의 수석교사제가 있다. 용어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교단교사의 전문성과 수월성을 고양하고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수석교사제의 도입을 통하여 교육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요즘 “교장자격증제를 폐지한다”, “교장공모제를 확대한다”, “교장임용 경력연수를 대폭 낮춘다”,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하라” 등 많은 정책 방안과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방안이나 주장은 제기하는 측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의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직풍토가 이지적인 특성보다 감성적인 특성이 강한 점을 고려할 때, 득보다 실이 많다. 기본적으로 ‘교장의 학교경영 전문성 약화’, ‘교장의 교직원들에 대한 리더쉽 약화’, ‘교장의 수업지도성 쇠퇴’, ‘교직사회의 혼란’ 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수석교사제는 불가하다! 교장선출보직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교단교사 우대풍토 조성을 원한다면, 조속히 수석교사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가 혹시라도 도입된다면, 예상되는 교장의 수업지도성 약화를 보완해줄 수 있는 장치로서 더욱 수석교사제가 도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