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작 <눈길>

2006.11.09 10:20:00


느닷없이 날아든 벗의 사망 소식에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밤이 이슥한 시각, 인사불성이 되도록 대취한 어느 젊은 운전자가 몰던 대형트럭이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와 맞은편에서 달리던 그 아이의 승합차를 덮쳐 버렸다는 것이, 풍문으로 전해오는 사건의 전말이다.  
그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아무런 연고조차 없는 먼 이역의 타관(他關)에서. 지독한 가난으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다시피 해 있던 집, 그의 아버지가 팔다리조차 성치 아니한 몸으로 날품을 팔아 겨우겨우 끼니를 해결하던 딱한 형편이었다. 그런 환경 탓에 주위 친지의 도움으로 중학교만 근근이 마치고선 훌훌 바람처럼 객지로 떠난 뒤 여태 소식 한번 없던 그 애가 아니던가. 총명하여 수재라는 소리를 듣던 그 아까운 아이가…….
분명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그에게는 이 가난이 죄가 되었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땐가 육 학년 땐가 기억이 통 아슴푸레하다. 바람살이 유난스레 매웠던 어느 겨울날이었던 듯싶다. 이글거리는 갈탄난로가 교실 안을 후끈 달구고 있었다. 바로 그 난로 때문이었으리라. 의자 등받이에다 벗어 걸쳐둔 담임선생님의 양복 윗도리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오백 원짜리 지폐 몇 장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벌써 삼십 수 년 전의 일이니 당시 금세로서는 제법 되는 금액이었다.
“없어진 돈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들 오늘 집에 갈 생각일랑 말아라.”
선생님은 우리 어린것들 앞에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셨다. 실토하지 않으면 문둥이처럼 손이 오그라들 것이라고 저주 섞인 위협도 가하셨다. 그러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은근히 넘겨짚고 계셨다. 물론 그 지목대상이란 다름 아닌 그였다. 교실 밖에서 선생님이 그를 따로 불러내 다그치는 모습을 나는 유리창 너머로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며 부인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노루꼬리만큼 남아 있던 겨울 해는 이내 저물고 난로의 불기운은 차츰 사위어들었다. 이어서 찾아든 한기,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교실 바닥에 꿇어앉아 두 눈을 감기운채 사시나무처럼 오들오들 떨었던 그 날의 시린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단지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우리는 밤이 이슥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그 날 이후로 그는 완전히 풀이 죽어 지냈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표정에는 짙은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툭툭 가볍게 걸어오는 동무들의 장난질에도 죽은 벌레처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 고립의 울타리를 꽁꽁 둘러쳐 가고 있었다. 그를 향한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의 눈길 한 번이 아쉬워 보였다.
옛 말에 도둑은 뒤로 잡지 앞으로 잡지 말라고 했다. 만일 그의 소행이 아니었다면 여린 가슴에 할퀸 생채기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어쩌면 그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그 아픈 기억을, 죽는 순간까지 가슴 깊이 응어리로 남긴 채 떠나갔는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그는 어린 마음에도 이를 악물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고향을 등진 후로는 단 한 번도 다시 찾지 않았다. 어디서 무슨 대학엘 다니고 있다느니, 좋은 자리에 취직을 해서 큰돈을 모았다느니 하는 풍문만이 간간이 바람결처럼 흘러들 뿐이었다. 그래도 죽고 나서는 어떻게 용케도 연락이 닿을 수 있었던가 보다.
그의 시신을 안치해 둔 전북 이리 시 소재 원광대 부속병원 영안실, 거기엔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상주도 문상객도 눈에 뜨이지 않았고 그 흔한 국화꽃 한 다발조차 놓여 있지 않았다. 어릴 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빛바랜 영정 사진만이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알 듯 모를 듯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맑은 미소는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깊은 우수의 그늘이 드리워진 듯한 표정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 앞에서 몇몇은 소리 죽여 흐느꼈고 몇몇은 돌아서서 눈물을 씻었다. 그리고 모두는 오래 침묵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우리 곁을 떠나갔다. 쓸쓸하고 허망한 죽음이었다. 어린 시절 그처럼 모진 고생을 하고서 자랐으면 늦복이라도 원 없이 타고날 일이지……. 점지된 운명이었던가. 정녕 그렇다면 운명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늦은 시각에 눈이 많이 내렸다. 몇 십 년 만에 처음 보는 큰 눈이다. 이렇게 온 천지가 폭설로 뒤덮이고 보름을 앞둔 달이 휘영청 밝은 날이면, 비명에 가 버린 그 벗이 다시 생각난다.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은 그 어름이 아니었던가 싶다. 우리는 졸업을 기념한답시고 학교에서 근 십여 리나 떨어진 외딴 산골마을로 뒤풀이를 갔었다. 장난질하며 노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의 마음을 까맣게 놓치고 있었다.

산골의 어둠은 서둘러 찾아들었다. 게다가 초저녁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귀로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화 같은 통신수단에 기댈 수도 없던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하는 수 없이 어느 벗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둘은 다음날 어슴새벽에 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온 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던 산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그 원시의 눈길을 그와 나는 서로의 등짝을 의지 삼아 부지런히 걸었다. 교교한 달빛 그리고 은색으로 수놓인 설원 위에 둘이서 남긴 발자국들만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했다. 꽁꽁 곧아 오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겨 놓을 적마다 사박사박 눈 부서지는 소리가 산골의 적막을 깨웠다. 차곡차곡 재워둔 가리에서 빈 짚단을 꺼내 양팔 가득 안은 채 번갈아 불을 붙여 가며, 엄습해 오는 추위와 무서움을 녹였던 그 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가 이승을 떠난 지도 어언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도 이따금 꿈속에서 다시 만날 때가 있다. 언제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수정처럼 해맑은 것을 보면, 이승에서의 그 절박했던 가난의 한은 이제 훌훌 날려 버렸는가 싶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온다.
그 애를 본 날이면 나는 진종일 물질적 궁핍과 사람됨, 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두고두고 가슴 아픈 기억이다. 

전 대구 경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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