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개발원(KEDI) 강영혜 교육제도연구실장이 12일 발표한 ‘특수목적고의 현주소와 개선방안’은 특목고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입시기관으로 전락했다며 특목고라는 제도 자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목고에 대한 종합대책을 정부가 추진 중인 가운데 특목고, 특히 외고의 교육효과가 거의 없다고 연구결과를 내놓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국어로 외고 학업성취도 비교’ 객관성 논란
교총 “하향평준화는 국민교육권 외면” 비판
“특목고 교육 효과 없다”=강 실장은 “외고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선별집단 의식을 공유한 입시 명문고”라며 “수월성 교육(우수학생 대상 교육)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외고와 일반고 학생의 국어 성적을 비교해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결과 강 실장은 “과학고와 외고 모두 국어성적 원 점수에서 일반고를 상당히 앞섰지만, 학생수준과 학교수준 등의 변수를 제외하면 외고와 일반고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 실장은 “특목고 중에서도 외고가 학교효과 대신 선발효과의 특징을 더 많이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외고의 설립 목적인 어학영재의 성격이 불분명한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외고를 외국어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외국어 전문 교육과정을 제공, 어문계 진로 준비를 돕는 ‘특성화고’로 지위변경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어 성적만으로 외고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토론회를 지켜 본 강성화 경기 고양외고 교장은 “외고에서는 일반고보다 국어 수업 시수가 낮아 동등한 비교를 할 수 없다”며 “외국어가 아닌 국어로 비교하는 것은 객관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강 실장은 국어를 변수로 삼은 이유에 대해 “외고의 설립목적이 영어 능력 우수자가 아니라 어학영재 육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어성적을 분석단위로 하더라고 외고의 학교효과를 밝히려는 연구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외고는 사교육의 주범”=강 실장은 “외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60.3%, 특히 수도권에서는 83.4%에 달해 특목고 준비 사교육은 공교육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고들이 중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선 선발시험으로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며 강 실장은 “과열 입시경쟁을 완화하려면 특목고 지원 자격에서 내신 성적 기준을 낮추고 자체 선발시험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실장은 특목고 개선책으로 ▲ 초중등교육법에서 현행 특목고 조항을 없애고 특성화학교로 변경하는 등 법적위상 정비 ▲ 외고는 주기적 평가를 통해 재지정 혹은 지정 해제 ▲ 학업성적보다 향후 동일계 진학 희망자 위주로 특목고 입시 개선 ▲ 대입 동일계 전형 확대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특목고만 사교육 진원지로 규정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한 외고 교장은 “외고생의 사교육비 지출 현황은 일반고 상위권 학생과 비교해야 한다”며 “사회경제적 격차를 부각하기 위해 읍면지역 일반고까지 비교 대상에 넣는 것은 올바른 비교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토론도 같은 주장 되풀이”=이날 토론회에는 윤인재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장 등 8명의 토론자가 참석했으나 대부분 특목고를 비판하는 인사로 구성돼 토론회가 균형을 잃었다. 윤 과장은 “특목고는 과도한 사교육을 조장하는 큰 요인이자 일반고를 이류 학교로 차별화시켜 고교 평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연구 발표를 토대로 10월 말까지 특목고 종합대책안을 마련,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토론에서는 외고의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나올 줄 알았다”며 “외고는 무조건 뜯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몰아가기만 해 아쉬웠다”며 토론장을 나섰다.
한국교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정권 말기에 특목고를 교육 문제의 온상으로 지목해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며 “특목고에 대한 수요의 원인을 분석하고 일반고의 교육 환경을 높이려는 노력 대신 특목고를 끌어내려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교육권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