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 시간 만에 합의된 교육자치법 개정안

2010.01.11 14:38:30

언론으로부터 대표적인 불량 상임위원회로 지목받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교과위’)가 결국 불량 법률안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교과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30일 의결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무려 18건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쟁을 일삼던 교과위가 시간에 쫓긴 나머지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둔 것이다.

개정안은 일정한 교육(행정)경력을 요구하던 교육의원 및 교육감의 자격요건을 폐지하고, 과거 2년 동안 비정당인이어야 한다는 교육감의 자격요건을 6개월로 완화하고, 교육의원을 비례대표로 선출하되 후보는 정당이 전문성을 고려하여 추천하도록 돼 있다. 개정안대로 확정된다면 교육을 전혀 모르는 인사도 교육감과 교육의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육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사가 유리해져 교육의 정치예속이 초래될 것이다.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확인해본 결과, 회의의 대부분은 투표용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비례대표 교육의원의 퇴직 조항을 포함시킬 것인가, 비례대표 교육의원 정수를 어떤 법에 규정할 것인가 등을 논의했다. 정작 중요한 교육감 및 교육의원의 자격요건과 선출방법에 대한 사항은 세 시간 동안 정회하면서 여야의원 간에 밀실 야합을 통해 결정됐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법안을 세 시간 만에 합의해낼 수 있는지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의 교섭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소위 위원들의 발언내용을 분석해보면, 헌법재판소가 ‘과거 2년간 비정당인’ 규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교육의원 및 교육감의 자격요건으로 일정한 교육(행정)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듯하다. 회의과정에서 헌법 제31조제4항에 대한 내용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자격요건을 삭제하는 유일한 이유는 “국회의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이런 자격 하나도 없어도 되는데 어떻게 해서 그 하위 단계인 시·도의 교육의원 후보는 이렇게 복잡하냐”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회의에 참석한 교과부 실·국장도 자격요건이 필요한 타당한 근거를 대지 못하면서 교원단체가 반대할 것이라는 우려만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정법률안이 통과되어 시행될 경우 교육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회의록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정치인들이 교육의원과 교육감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 있을 뿐이다.

모 위원의 발언처럼 “교육 전문성이 교육행정경력과 교육경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교육경력 요건을 삭제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는 다른 요건을 추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지방의원이나 시·도지사를 지망했다가 공천에 탈락한 인사를 교육의원이나 교육감으로 진출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판시처럼 “교육감 선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4년마다 실시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바, 교육감이 되려는 자는 선거 실시 예정일로부터 약 2년 전에 정당원 자격을 포기함으로써 당해 선거의 후보자가 될 수 있으므로” 2년간 비정당인 요건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선거에 나가려다가 공천에 탈락하여 갑작스럽게 교육감에 출마하고자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정치인의,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개정안임을 알 수 있다. 소위 위원들은 40분 동안이나 토론해도 비례대표 교육의원 정수를 어떤 법률에 규정하는 것이 좋은지 명쾌하게 합의할 수 없었던 이유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비례대표 교육의원제도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한 지방교육자치제도와 모순되기 때문이 아닐까?

불행 중 다행은 “(교원단체의 반대는) 중요한 게 아니고”라던 모 위원의 주장을 뒤엎고, 교육계의 반대를 수용해 다음 임시국회로 교과위 상정을 미뤘다는 점이다. 남은 기간 동안 열린 자세로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헌법을 연구하되, 정치와 특정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교육과 국가 장래를 생각하여 원점에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재검토해주기를 기대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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