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회까지 세대 넘은 제자들이 마련
불량학생 감싸 안아온 40년 평교사 삶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평교사로 40년 교직생활을 마감한 노(老) 교사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전국 각지의 제자 50여 명이 ‘선생님을 떠나보내기 서운하다’며 뜻을 모아 정년퇴임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23일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제자들에게 감사패를 받은 전심희(62) 경북 금오공고 교사는 큰절을 올리는 제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일일이 일으키며 손을 맞잡았다. 전 교사는 “잘 자라준 것만도 좋은데, 나를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제자들이 고맙다”며 “만감이 교차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금오공고에서 35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온 그는 모든 졸업생들이 아는 ‘금오공고’의 스승이었다. 이날 정년퇴임식에도 9회 졸업생부터 올해 졸업한 38회까지 세대를 넘어선 제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윤용일(18) 군은 “취업에 실패했을 때 선생님이 괜찮다며 따뜻한 조언과 위로를 해주셨다”며 “아쉬운 마음에 교단을 떠나시는 선생님을 뵈러 퇴임식에 왔다”고 말했다. 이상은 변호사(9회 졸업생)도 “부모와 떨어져 전원이 기숙사 생활했던 금오공고에서 선생님은 부모님, 때로는 형님처럼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이끌어주셨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만 닮아라’라고 하실 만큼 반듯한 생활을 솔선수범하신 선생님의 가르침 덕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승진의 기회도 있었지만 ‘점수’에 연연하는 교직 생활은 하기 싫었다는 그는 “평교사로 남은 덕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곁에 있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흐뭇해했다. 전 교사의 평생 자산인 제자 자랑도 이어졌다. 9회 입학시험에 낙방한 것이 한(恨)이 돼 결국 아들을 금오공고에 보낸 윤성대-윤용일 부자, 품행불량으로 퇴학당할 뻔했지만 ‘내가 책임지겠다’고 전 교사가 감싸 안아 지금은 문경시청 공무원이 된 김동운 씨, 학교가 지옥 같다며 도망 다니기 일쑤였던 김석화 씨(기술자) 등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한 명 한 명 제자들을 소개하는 전 교사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제자 송상갑 씨(9회 졸업생)는 “오늘 퇴임식은 35년간 한 결 같이 모교를 지켜 오신 선생님을 위해 제자들이 마음을 모아 마련한 것”이라며 “당시엔 엄하고 무서웠지만 철없었던 사춘기 시절을 바로 잡아준 선생님이 나이가 들수록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평교사의 퇴임식에는 처음 초청 받았다는 안양옥 교총회장은 “제자들의 마음이 담겨 더 값진 자리”라며 “묵묵히 금오공고를 지켜온 전 선생님과 제자들 간의 아름다운 관계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축하했다.
“내 마음은 항상 금오공고에 있고, 고향은 여전히 금오공고에 있다”며 학교를 떠나는 서운함을 내비친 전 교사는 “마부가 명마를 만드는 심정으로 40년을 불철주야 뛰어왔는데 엄한 지도에도 잘 따라준 내 아들 같은 제자들,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잘하는 아이는 그냥 지켜만 봐도 잘해 나가지요. 조금 삐거덕대는 아이들의 능력을 이끌어내 발휘하게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구름이 걷히면 청산이듯, 학생들을 내 품에 끌어안으면 우리의 소중한 인재로 자라난다는 것이 40년 교사를 하며 터득한 진리랍니다.”
▨2010년 마이스터고로 거듭난 금오공고는 독특한 역사를 가진 학교다. 1970년 7월26일 ‘제4차 한일각료회의’에서 양국 정부가 협력해 최첨단 기술학교를 만들기로 합의,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했다. ‘정성(精誠)·정밀(精密)·정직(正直)’의 ‘3정’이 담긴 교훈도 박 대통령이 정했다. 한․일 양국이 설립한 만큼 일본에서 실과․기술교사들이 파견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인재를 선발해 국비 장학생으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던 금오공고는 그간 각종 기능경기대회․경진대회를 휩쓸며 우리나라 기술인을 양성해왔다.